내 몸 사랑 자연치유 겨울 여행

분주한 활동가의 계절을 보내고 조용한 작가의 계절을 기다리며

by 꿀벌 김화숙

며칠 만에 책상 앞에 앉은 고요한 아침이 조금 낯설다.


햇살이 부셔드는 환한 내 책상. 노트북을 켜며 가만히 창밖을 보고 방안을 둘러 본다. 발바닥까지 어느새 햇볕이 들고 간질간질 말을 건다. 이 좋은 자리를 좀 비워둔 계절이었지? 이제 좀 진득이 앉을 시간이지?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건만 조금 자신에게 캥기고 돌아보는 아침이다.


10월 말 독립출판 책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12개의 시선』를 내며 긴 글쓰기 프로젝트를 마쳤다. 12명이 함께 읽고 토론하고 글 쓰고 합평하고, 글을 모아 묶고 편집회의하고. 장거리 경주였던 만큼 보람도 컸다. 그 반작용일까, 11월엔 쫓기는 일 없이 외부 일정을 소화하고 맘대로 나돌아다녔다. 매일 일정하게 글 쓰는 작가로 살기엔 난 아직 갈 길이 먼 초보임에 틀림없다. 많이 돌아다니고 놀았으니 다시 집중할 계절이 온 게다.


내 마음의 소리를 따라 3년 만에 '자연치유 겨울여행'을 결정하길 잘했다. 12월 1월 외부 활동을 접고 글쓰기와 자연치유 실천에 집중하려는 계획이다. 단체들 연말 행사며 회의야 나 없어도 굴러갈 것이다. 416합창단에 잠시 미안한 맘도 넘어선다. 다가오는 기획공연 후엔 녹음 작업이며 연습과 공연에 좀 빠지게 된다.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 12개의 시선』 책에 글벗들이 추천한 큐알을 따라 음악을 들었다.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니 말을 걸고 싶고 스토리를 듣고 싶었다. 함께 글을 쓴 벗들이 새삼 멋지고 자랑스러워 울컥하지 않을 수 없다. 글벗 짱아창아의 노래 '후라이의 꿈'과 급짱범수의 '나는 꿈을 꾼다'에서 가사를 조금 옮겨 보았다.


지난 한해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는 꼭지명으로 연재한 <새 가정>에 12월 분으로 보낸 글이다.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로 연결되어 쓴 첫 종이 매체 연재였다. 1년을 약속하고 썼지만 막상 마지막 글을 보내자니 여간 아쉬운 게 아니었다. 마감의 치열함 따위, 글쓰는 기쁨과 비하랴. 그 즐거움의 기억에 기대어 나는 새 책을 브런치 연재북으로 시작하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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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닌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나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나 차라리 꽉 눌러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자는

계란 프라이 프라이 같이 나른하게

-악동뮤지션의 노래 '후라이의 꿈' 중



꿈을 꾼다

잠시 힘겨운 날도 있겠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내일을 향해

나는 꿈을 꾼다


혹시 너무 힘이 들면

잠시 쉬어가도 괜찮아

천천히 함께 갈 수 있다면

이미 충분하니

-서영은의 노래 '꿈을 꾼다' 중





내 몸 사랑 자연치유 겨울 여행



사랑하는 내 몸에게!

활기차게 설치다 보니 또 한 해가 저무네. 너와 함께 날마다 새로운 하루로 참 잘 살았어, 그치? 이전에 달고 살던 감기몸살을 한 번도 안 걸리는 10번째 해를 살았구나. 이건 순전히 암 수술 후 다시 사는 내 멋진 몸 덕분이야. 창조주가 설계해 놓은 자연치유력이 살아난, 최고의 명의인 내 몸아! 날이 갈수록 튼튼하고 아름다운 내 몸아! 사랑스럽고 고마운 내 몸아!

158센티에 9년째 유지하는 48킬로, 나날이 더 희어가는 반백의 단발머리, 화장기 없는 안경쟁이 아줌마. 아침 단식으로 1일 2식 자연식채식하는 몸. 만보기로 하루 평균 12,000보 정도 기록하는 몸. 너무 많다는 사람도 있던데, 내 몸은 좋아하는 거 같지? 가끔 산에도 가고 뛰기도 하지만 61세 이 몸과 맘이 최애하는 운동은 역시 걷기지. 이 글 마무리하면 쌩! 걸으러 나가자잉!

쓰고 보니 참 작고 가벼운 몸 소개로구나. 그래서 늘 인사를 듣고 사나 봐.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익숙하면서도 매번 낯설게 들리는 인사 알지? 없어 보인다는 인사 다시 들어볼래?
“아이고 살이 너무 없는 거 아닌가요?”
“더 마르신 거 같아요!”
“좀 많이 먹고 살 좀 쪄야겠어.”….

멋진 내 몸아! 우리랑 통 맞지 않는 걱정을 들어주기 참 힘들지?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와 함께 이렇게 변해버렸어, 그치? 내 몸과 내가 새롭게 만난 후, 내 몸의 소리를 따라 넘나 잘 살고 있는데 말이지. 군더더기를 버리고 비워내고 나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몸살이가 얼마나 신나는지. 이 놀라운 몸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해 준 <새 가정>과 독자들이 얼마나 고마운지! 정말 행복한 글쓰기였어.

막 ‘내 몸 사랑 자연치유 여행’을 결정하고 등록했어. 2020년 11-12월에 했던 ‘39일간의 특별한 겨울 여행’ 이후 3년 만의 여행이지. 이번엔 40일로 채웠어. 12월 3일부터 영덕 자연생활 교육원에 열흘 묵으며 자연식채식하고 산을 타고 글을 쓸 거야. 13일부턴 서천 산야초 단식원에서 효소 단식을 15일간 해. 28일부터 집에서 보호식 15일 하면, 1월 11일에 여정이 끝나.

내 몸아, 부끄러움 덕분이었어. 11월 첫 일요일에 우리 큰아들이 해외 근무 2년을 떠나는 인사를 교회에서 했더랬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고 길 떠나는 30대 아들을 응원하며 그 나이 때의 나를 돌아보았어. 내 몸과 삶의 결정을 남에게 맡기고 살던 나 말이야. 내 의지에 반해 몸과 맘을 구기는데도 믿음, 순종, 헌신 꽃노래로 도끼자루가 썩던 시절 말이야. 아, 그런데 뭐니. 내 몸을 사랑한다, 내가 접수한다, 큰소리치지만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 고려하느라 내 선택을 미루길 잘 하더구나. 너 보기 부끄러워서 와락 결정했어.


지난 봄에 한 황당한 경험도 한몫한 거 알지? 모 종편 방송작가라는 사람한테 섭외 전화를 받은 적 있었지. 비슷한 내용으로 메일도 오고 전화도 오고 그랬던 거야. 드디어 세상이 내 책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구나, 자연치유에 관심갖는구나 했건만, 알고 보니 꽝이더라? 하나같이 내 이야기나 자연치유는 들러리고, 협찬받은 제품을 홍보하는 사례자 아르바이트를 원하고 있었어.

“저희가 방송이다 보니 협찬처에서 협찬을 받고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방송에 출연하신다면, 중점적으로 자연치유를 다루면서 같은 질환을 갖고 계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들을 전달하게 될 텐데. 간암 극복 자연치유 방법을 소개하면서 협찬품도 방송에 나올 수밖에 없어서요. 꼭 이 제품을 드시고 좋아졌다는 홍보가 아니라, 도움이 된다는 정도로요….”

그때 그 장황한 설명을 잊을 수 없어. 건강 프로그램이라며, 명의의 이름으로, 거짓말 잔치를 하자는 제안이었어. 제품 사진을 보내주는데, 믿기지 않아서 내가 거듭 확인 질문을 했지.
“그러니까, 이걸 제가 먹어서 나은 것처럼 촬영하자는 뜻인가요?”
망설임 없이 “네”라고 답하더구나. 덧붙여 제품 섭취 장면이 나오는 비슷한 영상도 보내주었어. 음식에 섞어서, 또는 따로 먹는 영상을 보는데, 나는 말할 수 없이 슬픔을 느꼈어.

“저는 암 수술 후에 자연식 채식하고 단식하고 운동한 거밖에 없어요. 건강 보조식품도 약도 전혀 안 먹었다니까요. 제 책에도 그렇게 썼는데, 혹시 책을 보고 이런 섭외 하시나요?”

내 말은 허공의 메아리더구나. 내가 쓴 책도 그들의 관심 밖이었어. 자연치유든 병원치료든 간암을 극복한 사람, 그것도 40~60대 아줌마 사례자로 아르바이트할 사람이 필요할 뿐이었어. 협찬받은 제품을 좋다며 먹는 모습을 찍고 명의의 멘트를 입히면 건강 프로그램이 되더구나. 지금도 ‘명의의 000’이라는 종편 프로그램으로 버젓이 소비되고 있어.

정직한 내 몸아, ‘이것 먹고 건강해졌다’라는 사탕발림을 안 듣는 내 몸아! 돈을 의지하지 않는 내 몸아! 소문난 건강 보조식품도 내로라하는 명의도 약도 몰라서 고마워.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그거 하나로, 자기주도적인 치유의 길을 걷는 내 몸. 세상에 명의는 없다는 걸 아는 내 몸. 100명의 명의가 사는 내 몸만한 명의가 어디 있겠니?

그래, 겨울 여행으로 우리는 다시 뜨겁게 함께하는 거야. 자연치유를 실천하며 읽고 쓰며 우리에게 집중하는 거야. 자연식물식으로 적정하게 먹고, 단식으로 몸을 비우고, 맑은 공기를 호흡하는 거야. 아참, 자연생활교육원에서 몸 이야기로 독자들과 만날 계획도 잡혔어. 멋진 내 몸아, 잘 놀아보자. 고마워! 사랑해!


명의/어향숙(1967~ )

요즘 사람들 병은 모두 속병인겨
말을 못 해서 생기는 병이지
사람들 말만 잘 들어줘도
명의 소리 듣는데 그걸 못 혀
아무 소리 하지 말고
자기 말만 들으래
내가 의사 양반 주치의인가?
홍씨 할머니
처방전 들고 약국 들어서며
혼잣말처럼 하신 말씀
내 귀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새 가정'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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