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 시험 보고 있는 사랑하는 내 딸에게
사랑하는 딸아!
우리가 기다리던 그 한 주간을 드디어 살고 있구나.
네가 3년간, 아니 5년간 준비해 온 '제13회 변호사 시험' 주간이 어느새 반환점을 돌았어. 어제와 그제 이틀 시험을 건강하게 잘 마쳐서 감사해. 목요일 하루 휴식하니 좋구나. 너와 함께 인천 승학산 둘레길을 13,000보 걷고 느긋하게 점심 먹을 수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녀가 단둘이 1주일간 이렇게 찐하게 동거하는 복을 살면서 몇 번이나 누릴 수 있겠니. 너와 함께 잠들고 같이 깨어나고 같이 먹고 수다 떠는 하루하루가 감사해. 한 주간 너와 함께 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열번 백번 감사해. 3060모녀특별여행 아니겠어?
만 30세까지 너는 정말 너 자신을 탐구하며 자신의 꿈을 찾는 사람이었구나. 대학을 졸업하고 시작한 9급 공무원 생활, 네 길이 아니다 깨닫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 부모의 경제력과 눈앞의 현실만 생각했다면 너는 다른 꿈을 꾸기 어려웠을 거야. 그러나 너는 너의 인생을 다시 쓰기로 했지. 너의 용기와 결단과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공무원 2년 차 신년 벽두에 모녀가 미국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영화 <RBG>로 만난 날을 어찌 잊을까. 인생은 이렇듯 뜻밖의 조우로 전혀 낯선 새길이 열리곤 하지. 영화가 끝났을 때 우리가 서로의 젖은 눈을 마주 보던 순간이 생생해. 우리는 뜨겁게 손을 마주 잡았고 가슴뛰며 포옹했고 고개를 끄덕였지.
그래, 맞아. 네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거야. 가 본 적 없어서 확실한 게 없어도 갈 수 있어. 높고 멀리 보는 희망, 더 큰 꿈을 꾸는 거야. 네 마음의 소리를 따라 도전해. 용기가 너를 이끌 거야. 너를 믿고 네 목소리를 따라 너의 인생을 쓰는 거야. 세상이 말해준 너에 대한 이야기는 잊어버려. 네 이야기는 네가 쓰는 거야..... 그랬더랬지.
그날로부터 2년이 지났을 때 너는 공무원을 사표 냈고 로스쿨 학생이 되었지. 그로부터 또 3년이 흘러 오늘이 왔구나. 어렵고 어려운 공부를 포기하지 않은 너로 인해 감사해. 쥐꼬리 공무원 월급 3년 치를 알뜰히 모아서 손 안 벌리는 공부생활을 해서 고마워. 사교육 공화국에서 학원도 인강도 없이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해온 너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수다와 운동, 잘 먹고 잘 자며 최강 페미케미 작렬 다 감사해.
아~~ 딸아, 비싼 로스쿨 등록금만 생각하면 감사 또 감사해. 6학기 전액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할 수 있을지 넌 전혀 모르고 도전했잖아. 모은 돈 따위 두어 학기 등록금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고 말이야. 가진 것 없는 엄마는 네가 알아서 길을 찾을 거라 믿고 응원만 했지. 국가장학금 수혜자가 되었을 때 너는 역대급 어록을 남겼지.
“지금까지 엄빠 돈 없는 걸 고맙다 생각한 적 한 번도 없었는데, 이번엔 아냐. 없는 김에 확실히 가난해서 고마워!”
우린 그때 정말 실컷 웃었구나. 이전엔 너희 3남매한테 밑도 끝도 없이 미안하길 잘하던 엄마였지. 그러나 네가 로스쿨 도전한 것 자체가 엄마 인생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 아니겠어? 국가가 인정한 가난뱅이라고? 아니!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엄마 주머니는 비어 있었지만, 세상엔 너희를 위한 돈이 있다고 믿었더랬어. 지난 3년간 우리는 국가가 인정한 장학생이었고 말이야. 정말 감사하구나 딸아.
인천에서의 한 주가 이 나라 청년의 현실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기도 해. 네가 여기까지 온 건 분명 감사요 기쁨이지만, 이걸 모든 사람이 다 가지는 건 아니란 현실 말이야. 로스쿨을 왜 돈 스쿨이라 하겠니. 돈 없는 현실 때문에 꿈 꿀 기회를 잃은 사람들. 몸이 안 되고 환경이 안 따라주고 재난과 사고를 당한 사람들을 잊지 말자꾸나. 우리 개인의 성취는 결코 자기능력만의 결과 아닌 거 알지? 학교 근처 원룸 얻을 경제력이 있었다면 네가 인천까지 시험 보러 올 일은 없었겠지. 꿈은 높고 크게, 현실의 발은 낮고 깊게. 알지?
진인사 대천명, 어느새 중간 휴식 하루가 저물어가는구나. 너는 최선을 다해왔고 다 할 거니까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고 쉬는 거야. 시험 끝난 딸하고 엄마도 오랜만에 같이 놀 생각으로 엉덩이가 먼저 들썩거리네. 집중력 최고로 남은 이틀 글 쓸게. 장하고 자랑스러운 딸아, 날마다 높고 멀리 꿈꾸기를 즐기려무나.
꿈꿈은 멀리 높이 꾸되, 발은 현실을 단단하게 딛고 가야겠지. 우리의 발은 더 낮고 더 깊은 삶의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작고 아픈 손들을 함께 잡고 가야겠지.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삶은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길을 보여줄 거야. 뜻밖의 조우를 두려워하지 말자꾸나. 낮고 깊은 시선으로, 삶을 써 나가려무나.
아침에 네가 엄마한테 들려준 패닉! 앳 더 디스코의 'High Hopes' 진짜 놀라운 노래더라. 고마워! 네 목소리로 내 가슴을 울리더구나. 너를 응원하며 가사 조금 옮기며 마무리한다. 멋지다 딸! 사랑해!
High Hopes/패닉! 더 디스코
살기 위해 높고 높은 목표를 가져야 했어
제대로 벌지 못할 때에도 별을 향해 갔지
돈 한 푼 없어도 항상 비전이 있었어
높고 높은 목표를 항상 세웠지
살기 위해 높고 높은 목표를 세워야 했어
어떻게 해야 할진 몰랐지만 늘 그런 느낌이 있었어
백만 명 중 그 단 하나가 내가 될 거라고
높고 높은 목표를 항상 세웠지
어머니께서 이르시길
예언을 실현시켜라
위대한 무언가가 되어라
업적을 이룩하러 떠나라
운명을 증명하라
그땐 그랬어
우린 전부를 원했어, 전부를 원했어
어머니께서 이르시길
네 전기(傳記)는 태워버려라
역사를 새로 써라
네 야망을 빛내라
박물관의 승자들처럼, 매일같이
우린 전부를 원했어, 전부를 원했어
어머니는 포기하지 말라 하셨지, 일이 조금 복잡해도
얽매인 채, 사랑도 없이 기다리는 널 보고 싶지 않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