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함께 인천의 어느 아파트에 한 주간 자취 동거를 하게 됐다. 그제 일요일 저녁 안산에서 차로 딸과 함께 짐싸들고 왔다. 로스쿨 졸업반인 우리 딸이 오늘부터 제 13회 변호사시험을 보는데 시험장이 인하대로 배정돼 에어비엔비로 부랴부랴 시험기간에 묵을 숙소를 빌려야 했다. 학교까지는 여유있게 걸어서 30분 거리. 나는 오랜만에 한 주간 밥해주고 도시락 싸주는 엄마생활 중. 낮엔 집중해 글을 쓰는 복을 누리고 있다.
자세한 사연은 후술하겠지만 결코 딸 자랑하려는 글이 아님을 먼저 밝혀야겠다.
서울 소재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딸이 인천까지 시험장소가 밀린 이야기부터 하면 되겠다. 딸의 학교 동료들은 학교 기숙사 또는 학교 근처 집을 얻어서 공부한다지만 가난한 목사의 딸은 국가장학금으로 공부했다. 원룸 얻을 경제력이 안 되니 아빠 교회에 낑겨서 3년간 감사하며 왕복 두 시간 통학했다. 시험 고사장 신청할 때, 먼 자기 학교를 포기하고 조금이라도 집 가까운 대학을 썼단다. 순위에서 밀렸는지 상상밖의 인하대로 떨어져 버렸단다.
아파트에 살아본 적 없는 내가 혼자 디지털화된 신식 아파트에 살 일은 없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카드를 들고 다니는 것부터 집안의 모든 제어장치를 언제 다 익힌단 말인가. 첫 밤을 자고 시험 하루 전인 어제는 길을 익히고 주변을 익히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 7시 숙소를 나가 학교까지 30분 걷고 주변에 내가 낮에 머물 지인의 교회도 확인해 두었다. 모녀는 영하 18도에도 아침 걷기를 해본 쫌 걷는 사람들. 영하 10도 정도의 어제 아침 정도는 우리에게 껌이었다.
1954년에 설립된 인하대가 1965년에 채택했다는 '진(眞)이라는 한 글자 교훈이 인상적이다. 대학은 학문의 전당이며, 진리의 상아탑이라잖아. 좀 들여다 보니 진정(眞正), 진심(眞心), 진의(眞意), 진리(眞理), 진실(眞實)을 말하고 있었다. 진심과 진의를 품고 진리를 탐구하여 진실한 역군이 되자는 의미를 의미란다.
인하대학교의 가장 눈에 띄는 상징은 역시 ‘비룡(飛龍)’탑이겠다. 30주년인 1984년 4월에 개막했다는 이 탑을 나는 이제야 처음 보는 셈이다. 청룡의 해 갑진년 벽두에 ‘비룡’을 보니 '영웅이 때를 얻어 권세를 누린다는 ‘비룡승운(飛龍乘雲)’을 좋아들하는 게 놀랍지 않다. 비룡탑을 지나 '하이데거의 숲'을 걸어 보았다. 대학은 남자들만 득시글거리는 사회가 아니잖나. 여성의 눈으로 하이데거를 생각한다. 한나 아렌트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다. 왜 한나 아렌트는 호명할 생각을 못 했을까, 쓰잘데 없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다.
법학전문대학원 건물 앞까지 가 보았다. 굳게 잠긴 출입문에 공지가 붙어 있었다. 법무부에서 2024년도 제13회 변호사시험 기간 중 로스쿨관 전체 출입을 제한(출입불가)한다는 내용이었다. 기간은 1. 8.(월)~13.(토). 변호사시험 응시자만 8:20부터 1층 중앙현관에서 응시표 확인 후 입장이란다.
로스쿨 교수진의 성비가 궁금해 확인해 보았다. 전임교수 31명 중 여자 8명, 초빙· 겸임· 임상 교수 15명 중 3명이 여자, 석좌· 명예 교수는 8명 중 1명이 여자였다. 보직교수 10명 중 여자는 단 2명. 남녀 반반 비율로 선발된 로스쿨에서 이렇게나 기울어진 남탕 교수진이라니. 그래서 공과대학에 붙은 '여대학원생 공학연구팀제 과기부 장관상'이라는 현수막에 열거된 여자 이름들에서 나는 눈을 도무지 뗄 수가 없었다.
학교 설립 역사와 설립자 이승만을 생각하노라니 마음이 살짝 복잡해졌다. 학교가 자리한 인천과 당시 하와이 교포들의 십시일반 도움을 기념해서 ‘인(仁)’과 ‘하(荷)’를 따서 학교 이름이 되었다. 아름다운 이야기겠다. 이국땅에서 피땀흘려 노동하며 번 돈으로 조국의 해방과 인재양성을 지원했던 하와이 동포들. 그들의 헌신과 수고를 이용하고 자기 욕심을 채운 사람이 이승만 아니던가. 고맙게도 찬란한 아침해가 내 마음을 밝혀 주었다.
도서관 1층에 학교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학교 설립에 필요한 재원이 하와이 교포의 2세 교육을 위하여 이승만이 설립 운영하던 한인기독학원(Korea Christian Institute)을 처분한 대금과, 하와이 교포들의 정성어린 성금, 그리고 국내 유지의 성금 및 국고 보조 등이었다는 요지로 기술돼 있었다.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관점으로 기록돼 왔으니까. 민중의 피땀은 그 권력자를 빛나게 하는 수단 정도였으니까.
걷고 장보고 돌아와 카드를 찍으며 들어왔다. 아파트에 살면 이런 기분이구나. 아침은 효소 한잔으로 하는 우리는 점심이 하루의 첫끼. 시험 전날의 여유를 만끽하며 자연식 순식물식으로 느긋하게 먹었다. 6박 7일간 내가 준비할 식단은 요런식. 딸을 위한 도시락은 죽과 부드러운 채식, 집에서 먹는 저녁 한끼 역시 영양 가득하되 소화 잘되는 깔끔한 채식이 준비될 것이다. 나? 자연치유 실천가요 기후미식가 아니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