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돌들이 말할 때까지

읽고 쓰고 싶은 예술가, 세월호로 별이된 단원고 2학년 4반 김윤수에게

by 꿀벌 김화숙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 가도 산천은 안다

....


하늘나라 작가 윤수야!


푸르고 푸른 5월이 가고 이제 여름이 오는구나. 5월에 많이 부른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네 이름을 부른다. 5월 광주에 416합창단과 함께 다녀온 여운인가 봐. 5.18광주 민중항쟁 44주년 전야제에서, 민주묘역에서,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가 울려퍼졌단다. 끝도 없이 금남로를 가득 채우고 걷던 민중의 물결, 포옹하던 뜨거운 가슴, 움켜진 주먹. 함께라서 춤추고 노래하며 기억하는 5월 광주는 여름처럼 뜨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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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이 대목이 올해 새롭게 내 마음에 들어왔어. 산천초목이 점점 푸르러가는 건 산천이 떨쳐 일어나 말하는 모습으로 보이는 거 있지. 다 알고 있는 눈동자가 깨어나 또 보는구나. 저 빛나는 눈동자, 저 푸르른 빛이 44년전에 광주를 지켜보았고 10년 전에 세월호를 지켜보았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있는 산천이 산자들에게 뜨겁게 외치고 있었구나.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영화 <돌들이 말할 때까지>를 봐서 더 그런 봐. 4.3 관련 다큐란 것만 알고 개봉 영화관에서 봤어. 4.3에서 생존한 노인 여성들의 지옥 같은 감옥 생활 증언이었어. 여성들만의 목소리로 4.3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처음인데 증언 사이사이에 나오는 자연풍경이 아주 특별하게 보였어. 마치 지옥에서의 휴식인양 제주도의 산천을 음악과 함께 계속 보여주는 거야. 파도치는 바다와 바위, 눈 쌓인 산, 비 맞는 나무, 오름, 산길, 눈밭에 돌, 눈보라치는 하늘, 계곡, 그리고 눈 덮인 돌, 돌… 어느 순간부터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보았어. 소리없는 자연이, 저 산천이 지켜보았구나, 다 알고 있구나, 그리고 증언하는구나, 느낄 수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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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좋아하고 영화 좋아하는 작가 윤수야!


도스토옙스키가 그랬다지. "한 사람의 존재를 결정하는 건 그 사람이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다." 사람들이 침묵하면 돌들이 말한다는 식의 은유가 성경에도 여러 번 나오는 걸 보면, 사람은 말하는 존재 맞아. 말로 하는 것보단 읽은 책으로 쓴 글로 존재를 보여주는 게 사람이라면 요즘은 영화도 포함시켜야 맞겠지? 우린 영화도 즐기는 사람들이니까 말이야.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한 너는 책을 읽어 주지 않으면 잠들지 못하는 아이였지.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늘 책을 읽는 아이였고. 네가 본 책과 영화로 말하고 싶어 더욱 그립구나 윤수야.


외모 이야기는 안 하려 했는데, 늘씬한 몸에 준수한 네 얼굴을 보는데 배우 김혜수가 생각나는 거 있지. 잘 생긴 배우가 독서광인 게 너랑 비슷해서 말이야. 한 인터뷰에서 "책은 나의 자생력의 원천"이라 하더구나. 김혜수는 늘 여러 책을 동시에 읽는 게 습관이래. 자리 잡고 읽는 책, 잘 때 읽는 책, 이동 중에 보는 책이 각각 다르고 말이야. 독서 좀 하는 사람인 거 알겠지? 힘들 때, 에너지가 다 소진됐을 때, 책 읽은 힘이 우릴 스스로 일어서게 하지. 윤수야, 너도 틀림없이 그런 어른으로 좋은 글 쓰고 있을 텐데.... 아! 윤수야~ 작가의 꿈 지켜주지 못해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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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뿐인 네 동생 순수는 잘 지내는지 궁금하구나. 너는 동생을 참 아끼는 형이잖아.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잘 돌봐주는 형, 용돈을 아껴 동생한테 주는 형, 동생한테 맞을지언정 동생을 때리는 법 없는 형이었지. 순수는 겁이라곤 없어서 바이킹이나 수직 낙하 놀이 기구도 잘만 타는데 너는 고소공포증까지 있으니 높은 데 못 올라가고 타는 건 엄두도 못 냈지. 잔인한 만화나 공포 영화를 못 보는 너, 무서워서 목검을 안고 자는 것까지 난 감정이입했어. 물이 무서워 수영장 가장자리에서만 노는구나. 형제간에도 이렇게 서로 다른 걸 봐, 이게 사람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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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행복 윤수야!


엄마와 아빠는 각각 어찌 지내시니? 수학여행 앞두고 네가 엄마에게 한 낯선 행동이 참 인상적이었어. 뭐랄까, 네 안의 자유로운 예술가 기질이랄까, 먼 길 나서는 영혼의 몸짓이랄까. 너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니? 평소와 달리 제법 오랫동안 손톱 발톱도 안 깎고 머리카락도 귀와 목을 덮을 정도로 기르고 있었잖아. 아빠한테 고분고분한 편이던 네가 머리 깎으란 아빠 말을 결코 안 들었지. 그런데 수학여행 전날이던가? 엄마가 오셨을 때 손발을 내밀며 깎아달라고 했지. 파마도 해달래서 했고 말이야. 그날 엄마는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아주 행복해하셨지. 엄마의 안식처는 너라고, 엄마 인생에 너를 낳은 날이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하셨어. 그게 끝이 아니더구나. 넌 이모에게 셔츠와 시계를 사달라고 해서 받는가 하면, 교회 선생님께 일부러 찾아가 감사 인사도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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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보하고 싶은 예술가 윤수야!


노란 지저스 팔찌는 교회에서 받은 거고 긴 십자가 금속 목걸이는 네가 샀다며? 인터넷 덕분에 노란 지저스 팔찌도 십자가 목걸이도 나도 확인해 볼 수 있었어. 파마머리에 팔찌 낀 팔을 흔들며 긴 목걸이를 출렁이며 활보하는 네 모습을 상상하니, 음.... 딱 밥 딜런 같아. 음유시인을 닮은 윤수구나. 네가 했던 장신구들 말이야 나도 참 좋아하는 아이템이야. 지금 나도 거의 20년 만에 파마머리지 뭐니. 회색 파마머리를 바람에 날리며 팔찌한 팔을 휘휘 흔들며 걸을 때, 음, 몸도 마음도 자유롭게 날아갈 거 같아. 이런 느낌 알지?


지금 내가 몸에 지니는 유일한 장신구가 팔찌야. 대신 여러 개를 하고 있어. 내 왼 손목에 있는 팔찌 다섯 개는 모두 자기 스토리가 있어. 노란색 리멤버20140416 팔찌, 보라색 리멤버20221029 팔찌, 세월호 공방 엄마 작품인 작은 노란색 금속 리본이 달린 가죽끈 팔찌, 여러 개 끈을 꼬아 만든 공정무역 팔찌, 그리고 비즈공예 하는 친구가 선물해 준 사랑과 믿음의 팔찌. 다섯 개씩이나 끼고 다니는 맘은 뭘까? 고대 사람들은 힘 있는 존재에게 매인 몸이란 뜻으로 팔찌를 했대. 내 맘도 그런 거 같아. 소중한 존재들에게 내 손목이 잡혔다, 연결된 느낌.


그러니까 윤수야, 나 지금 사랑 고백하는 거야.

나는 윤수에게, 별이 된 너희들에게 손목이 잡힌 사람이야.

내 작은 목소리고 미약한 힘이지만 연결되어 걷는 거야.

너무너무 보고 싶다 윤수야.



(세월호로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4반 김윤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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