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제주,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 흘리는 세상을

삼달다방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토크콘서트 덕에 제주에 왔다

by 꿀벌 김화숙


종이연/ 류형선 작사작곡


외로운 사람들이 지금은 보여

그늘진 사람들이 모두 다 보여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 흘리는 세상을 만들게

내 품에 머물렀던 기억을 모아

별처럼 촘촘했던 추억을 모아

별이 뜨고 지는 길목에

밤마다 모여서 노래할게

....




416합창단 공연 일정 하루 일찍 숙덕이 제주에 왔다. 삼달 다방에서 416합창단 두 번째 앨범 북토크, 산지 등대와 세월호 기억관에서 버스킹 하는 일정이다. 바쁜 일상에 오아시스 같은 짧은 여행이다. 이번에 부를 노래 중 종이연 가사처럼 낯선 여행이다.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 흘리는 세상을 만들게." 어지간한 일에 눈물 안 흘리는 사람을 강하다 했던가? 그런데 416합창단은 아주 작은 일에도 눈물 흘리는 세상을 만들자고 노래한다. 그런 여행이다.



서울 날씨와 달리 제주엔 비가 주룩주룩 오고 있었다. 공항에서 시내버스 타고 숙소에 내려 짐 맡기곤 우산 쓰고 걸었다. 얼마 안 걸어 몸이 젖어왔다. 어찌하든 비를 덜 맞으려 우산으로 막고 조심하며 걸었지만 소용없었다. 비오는 제주 바닷물은 쪽빛이 아니라 짙은 회색이었다. 바람불고 비오는 해변길을 어찌 안 젖고 걸을 수 있을까. 그쯤 돼서야 마음이 젖어왔다. 그래 함께 젖자. 피할 수 없는 비, 즐기자. 옴팡 젖어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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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리오 뮤지엄 뜰에 비를 맞고 선 영등할망과 설문대할망을 본다. 영등할망은 제주도의 날씨를 주관하는 여신이라 말할 수 있다. 영등 달인 음력 2월 1일에 한림읍 귀덕리로 입도해서 2월 15일 우도를 통해 제주를 떠난다. 소라와 전복 미역 등 해산물을 잘 자라게 하고 비와 눈 날씨를 주관한다. 영등달에 해녀와 어부들이 중심이 되어 영등굿을 치른다.


설문대할망은 육지의 마고할미 같은 존재다. 치마에 흙을 담아 쏟아부어 만든 게 한라산이고 380개 오름이라니 제주도의 창조 여신이다. 설문대할망은 키가 크고 체격이 아주 좋은 게 인상적이다. 500명의 아들을 둔 설문대 할망은 오랜 가뭄에 굶주리는 아들을 살리고자 한라산보다 스물다섯 배나 컸다는 그 몸을 죽 솥에 던졌다고 한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아들들의 피 맺힌 절규가 영실분화구 바위, 오백장군이 됐다는 설화. 가부장 신들과 달리 여성 신은 이토록 자기 희생적이다.


아무리 걷기 좋아하는 숙덕이지만 비 오는 날 젖은 몸으로 끝없이 걸을 순 없었다. 우선 바닷바람이 점점 세서 멈춰야 했다. 창 넓은 카페에 앉아 비멍이나 할 수밖에 없겠다. 멋진 카페를 찾아 맨발로 빗속을 걷다가 아라리오 무지엄으로 빨려들어갔다. 이곳 한 군데만 보는 것으로 입장료가 성인 15,000원, 그만한 가치가 있으려니 믿고 보기로 했다. 오랜만의 예술 작품 감상이니까. 비에 젖은 발을 닦고 다시 신발을 신고 찬찬히 보았다. 5층부터 지하 1층, 그리고 지하 1층까지.


언어가 아닌 작품으로 말을 하는 작가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림, 조각, 설치 미술, 영상, 소재도 방법도 내겐 낯설지 않은 게 없었다. 미술관엘 너무 오랜만에 왔다. 가장 진한 인상을 남긴 건 지하실에 전시된 페미니스트 작가 말리니 말라니의 영상 아트였다. 문학과 역사를 매개로 페미니즘, 폭력, 불평등과 같은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벽에 쏘아서 영상과 텍스트로 보여주는 애니메이션이랄까. 여성이 겪는 폭력과 부조리를 생각하게 하고 질문하게 하는 일종의 연극적 공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젖은 신발을 말리고 쉬다 보니 비가 그쳤다. 7층인데다 창이 서쪽이라 제주 바다로 지는 해를 볼 수 있었다. 늘 보아온 해건만 낯설다. 하루도 같은 해가 없었다는 걸 다시 인정하며 창으로 해멍을 한참 했다. 내일 아침엔 다시 말간 새 얼굴로 떠오르겠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떠오를 것이다. 오늘 하루 바닥까지 젖었던 내 몸도 내일 아침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다시 뽀송뽀송한 하루를 살겠지.


숙소 근처 식당에서 제주도식 정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제주도 여행이니 제주도 산 막걸리 한 병 안 마시면 섭하지. 한 병으로 나눠 마시고 들어와 각자 노트북 앞에 앉아 자기 할 일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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