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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벌 김화숙 Dec 18. 2020

내 몸속에는 100명의 의사가 산다

히포크라테스를 읽고 나는 외쳤다. "내 몸이 나를 치료하는 의사다!"


내 몸속에는 100명의 의사가 산다

                                                                    


내 삶을 변화시킨 문장이라 해도 과하지 않겠다.


내 삶을 변화시킨 문장이라 해도 과하지 않겠다. 히포크라테스 이름으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이지 싶다. 그러나 암수술 이전에 나는 몰랐다. 의대생 친구가 '히포크라테스 선서'할 때 들어본 이름이라는 정도였다. 자연 치유하려고 책을 뒤지다 보니 히포크라테스를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의학 또는 자연치유, 아니 건강 주제면 반복해서 마주치게 되는 이름이었다.  


생몰연대가 기원전 4~5세기 정도로 뚜렷하지 않았다. 그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는 주로 의학의 아버지. 또는 자연의학의 아버지. 당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와의 연관성을 표방하면서 의술을 펼친 아스클레피오스 학파 가문의 사람이었다. 그 학파에 속하지 않은 가문에서 의술을 배우러 오면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하게 했다. 그 정도로 정리됐다.


도서관에 히포크라테스를 찾아보라. 책이 많아서 다시 놀랄 것이다. 지금도 의과대학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있겠지. 히포크라테스 선서 본문 중 이런 대목이 내게 인상적이었다.


특히 '노예든 자유민이든 신분을 가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자이든 여자이든 동등하게' 대했다. 대부분의 성자라 알려진 사람들이 그렇듯 본인이 쓴 책은 없다고 봐야 한다. 그에게 배우고 그에게 영향받은 사람들이 정리한 게 전해지고 전해진 거다. 그의 이름을 딴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니, 인문주의자, 민주주의자에 의성이라 하겠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환자의 신체를 능욕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


또 다른 책 <히포크라테스>를 비롯해 알려진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을 중심으로 풀어간 책도 많았다. 

 

우리 몸속에는 100명의 의사가 산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자신이 된다.”

최고의 운동은 걷기이고 최고의 약은 웃음이다.”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

우리 안에 있는 자연적인 힘이야말로 모든 병을 고치는 진정한 치료제이다.”



내 몸속에는 100명의 의사가 산다


내게 가장 강한 여운을 남기는 히포크라테스의 문장이다. 현대의학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히포크라테스를 읽으니 더 잘 보였다. 나는 의사 누구한테서도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듣지 못해도 그런 정신으로 나를 대하는구나, 그런 느낌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나를 철저히 의료의 객체로만 대했다. 병원도, 의사도, 약도, 어떤 의료장비도 아닌 내 몸이 나를 치료하는 의사라는 말이렸다. 


다른 말로 자연, 몸이 가진 힘, 몸 스스로, 자연의 힘, 자연치유력, 면역력, 자연 회복력이라고도 하겠다. 

'내 몸속에는 100명의 의사가 산다"






히포크라테스를 읽을수록 내 간 절제 수술한 '명의'의 말이 자꾸 떠올랐다. (나는 이토록 뒤끝 작렬 끈질기다.)


"그게 왜 궁금합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내가 내 몸에 대해 질문했을 때 그가 버럭 화내며 했던 이 말. 나를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결심하게 만든 말이었다. 그땐 홧김의 충동인 줄 알았다. 그러나 돌아볼수록 내 분노와 결심은 근거가 있었다. 그동안 살며 켜켜이 쌓인 내 울분의 폭발이기도 했다. 당당한 주체로 살지 못하게 움츠리고 수그리라고 강요받으며 구겨졌던 내 몸과 마음. 내 인생을 함부로 쥐락펴락하며 부렸던 권력들을 그 의사에게서 본 거였다. 상처 나고 병든 내 몸과 마음이 한꺼번에 소리치며 저항한 것이었다. 내 몸이 살려달라고 소리친 거였다.


그 주체가 바로 내 몸이었던 거다. 결코 근거 없는 분노가 아니었던 거다. 내 몸은 스스로 충분히 치유능력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였다. 충분히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이 세상 유일무이의 존재였다. 내 몸이 아프다고 이토록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데도 아직 내 몸을 그 누군가가 알아서 해? 그 무엇도 내 몸에게 묻지 않고 알아서 할 권리는 없는 거였다. 내 몸을 그렇게 하찮게 취급하는 걸 내 몸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거뿐이었다. 


내 안의 100명의 의사들이 있는데, 그들이 무시받는데 화내고 들고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 아니겠는가. 히포크라테스의 후예들이 내게 보내는 박수와 응원과 칭찬이 들리는 거 같았다.


오~~ 멋져! 잘했어! 화숙이 잘하고 있는 거야! 그게 자연치유의 출발이고 치료의 주체로 사는 길이야!



내 몸이 병을 치료하는 의사이다


히포크라테스의 응원을 받으며 나는 소리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여러 말이 필요하랴. 히포크라테스 선서로 의사가 된 사람들은 부디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환자가 환자 몸을 가장 잘 아는 의사요 주체라는 점을. 먼저 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게 의사가 할 일 임을. 의사는 환자의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몸의 반응을 살피고 지시를 잘 따라야 하는 보조자라는 진리를 말이다.  



히포크라테스의 발견, 이건 내게 예수의 재발견과 비슷한 전율이기도 했다. 


제도권 기독교와 예수 정신, 역사 속에 늘 그랬고 지금도, 충돌하는 두 정신세계다. 그동안 배워 온 교회의 모든 게 예수 정신을 놓친 껍데기가 많았구나, 깨달았을 때의 그 막막한 절망감과 배신감. 그러나 다시 예수를 배우는 것 말고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마찬가지다. 제도권 의료 현실에 실망할 때 히포크라테스를 읽을 일이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고 어디서 꼬였는지 다시 길을 찾을 일이다.  


제도권 현대의학과 히포크라테스 정신.

말하고 보니 그러나, 교회 이상으로 여기도 참 멀리 가고 있는 두 세계로다. 내가 너무 심하게 보는 걸까?


열심히 읽고 발췌해 둔 <히포크라테스의 발견>(반덕진, 휴머니스트, 2005) 발췌 몇 개만 올려 본다.  






아폴론의 후손으로 코스 섬에서 태어나 건강의 여신의 무기로 수많은 질병을 극복하고 우연이 아닌 의술로 명성을 얻은 테살리아인 히포크라테스여기 잠들다

히포크라테스 묘비명

 

투약이나 수술보다 환자의 자연 회복력을 우선시하는 히포크라테스는 질병보다 환자를자연의 보조자인 의사보다 자연의 주체인 환자를 진료의 중심에 놓고 환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되도록 진료하라"라는 윤리적 이상을 제시했다. (p. 22)

 

그는 병을 앓고 있는 환자는 물론 그를 둘러싼 자연환경 및 인문환경과의 상호작용까지 고려하면서 이것들을 동시에 고려하지 않고서는 인간 존재의 참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고 본 인문 의학자였다. (p. 24)

 

히포크라테스는 투약절개소작의 3대 치료법보다 인간 내부의 생래적인 치유 능력을 직시하고 내 몸이 병을 치료하는 의사이다라며 음식운동목욕수면과 같은 양생을 우선시하고 투약이나 수술은 최후의 방법으로 생각했다. (p.26)

 

사람의 체질은 계절에 따라 잘 적응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여름에어떤 사람은 겨울에 잘 적응하기도 하고 적응하지 못하기도 한다어떤 사람은 지역에 따라생의 주기에 따라삶의 방식에 따라질병의 다양한 속성에 따라 적응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한다. (p. 314)

 

자연이 병을 치료하는 의사이다(p. 315) 

  

의술은 질병과 환자와 의사라는 세 가지 요소를 가진다. 의사는 의술의 봉사자이다환자는 질병과의 싸움에서 의사와 협력해야 한다. (p. 322)

 

당신은 질병을 치료함에 있어 두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환자에게 도움을 주든지아니면 적어도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p. 327)

 

먼저 의학에 대해 정의해보면 대체로 의학은 환자의 고통을 치료하고 환자의 증상을 완화시키며질병이 너무 위중하여 의학이 도움을 주지 못하는 환자에 대해서는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다. (p. 329)

 

철학자인 의사는 신과 같다지혜(철학)와 의학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사실 의학은 지혜에 필요한 모든 자질들을 내포하고 있다의학은 공정성겸손함신중함건전한 사고판단력평온함단호함순수함정중한 언어…… 미신의 탈피탁월한 신성을 가지고 있다. (p. 338)

 

어떤 환자들은 그들이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의사의 선의에 의해 건강이 저절로 회복되기도 한다. (p.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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