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들내외와 안사돈과 우리집밥 점심을 먹으며
260102 금 맑다흐리다
"숙현, 화숙이라고 불러 봐."
계단을 내려가며 내가 안사돈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친구로, 평어쓰며 이름부르고 지내자 했더랬으니까.
미국에서 들어온 큰아들 내외와 안사돈이 같이 온 것만으로도 기쁨이었다.
내가 차린 비건식 점심 먹고 차마시고 이제 헤어지려는 참이었다.
사돈 어깨에 팔을 두른 채 4층에서 1층까지 내려갔다.
놀러왔던 친구를 배웅하는 편안한 마음이었다.
오늘은 존댓말로 수다떨었지만 막판에 평어를 환기시키는 나.
"화숙"이라 들은 것도 같고 못 들은 것도 같다.
대신 사돈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오면서 민이가 그랬어요. 엄마, 안산 가면 평어쓰자 할 텐데 엄마 할 수 있겠어? 맘 준비됐어?"
그리곤 덧붙인다.
"민이도 쉽진 않을 거예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한테 커서 우리보다 존댓말을 더 잘했어요."
나는 말한다. 미국에선 존댓말 없이 잘만 살잖아요. 하면 쉬운데.
결혼식장에서 보고 거의 2년만에 다시 만난 민이 엄마와 훈이 엄마.
내가 슬그머니 민이 핑계를 대 본다.
"민이가 평어 하면 엄마가 더 자연스럽게 하시겠지. 습관 들이면 쉬운데. 윤희는 첨부터 너무 잘한다니까."
민이랑 상호 평어쓰고 싶어서 윤희를 끌어왔다. 막내 아들의 여자친구를.
그런다고 금방 하겠냐만, 내 관심은 그거였다.
두 며느리랑 온 가족이 모일 때, 큰며느리만 존댓말 쓰는 상황을 안 만들고 싶다는 것.
안사돈이 말한다.
"그래, 엄마한테 하듯이 하면 되겠네. 해 봐."
나는 차 있는 데까지 가서 세 사람을 차례로 포옹하고 민이한테 말한다.
"엄마 잘 있어, 해 봐."
"엄마 잘 있어."라고 들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큰아들은 늘 하던 소리를 또 한다.
"시간을 둡시다. 서두르지 말고. 익숙해지면 할 테니까."
그래, 내가 욕심일지도 모른다.
며느리와도 사돈과도 서로 평어쓰는 친구하고 싶다는 꿈.
이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말이다.
오죽하면 옛 사람들이 말했겠는가.
"사돈집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
사돈에 대한 상상력은 그 정도였던 거다.
남성중심 문화에서 어쩔수없이 불편한 관계였을 테니까.
꿈꾸는 미래를 앞당겨 살아보고 싶다.
관습과 위계 너머 모두 평등한 인간관계.
나이도 성별도 지위도 안 따지는 평등한 세상.
며느리와 시엄마 사돈관계 모두 친구되는 세상.
존비법 없이 서로 평어 써보자는 게 어때서.
언어가 달라지면 관계가 새로워지거든.
지켜보며 한걸음씩 가보자. 재미있게.
너무 위풍당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