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가 뭐죠?

<피아노>, 에이다의 선택적 침묵은 내 삶의 은유

by 꿀벌 김화숙

사랑하는 친구 휘야!


내 인생 영화 <피아노>(제인 캠피온 감독, 호주, 1993년, 2021년 재개봉) 이야기로 시작할게. 너를 생각하면 항상 피아노가 떠오르고, 너의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이 눈에 선해. 피아노는 너의 분신이자 자부심이자 너의 전부 아니었니. 그러나 우리가 30년만에 다시 만나 보니, 너는 피아노를 안 친 지 오랜, 한 남자의 아내로 지쳐가고 있더구나. 결혼이 도대체 뭐길래, 네가 피아노를 안 치게 되었을까.


<피아노>가 개봉됐을 땐 내가 알지 못하고 지나쳤던 영화라고 고백할게. 우리의 30대를 생각해 봐. 나는 폴란드에서 너는 서울에서, 가정과 교회 일에 코를 밖고 살던 때였지. 우리가 속했던 선교단체엔 대중문화 ‘알러지’도 있었잖아. 온 세상이 다 보는 영화는 놓쳐도 <벤허>나 <쿼바디스> 같은 영화는 꼭 봤잖아?


에이다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러 낯설고 물선 뉴질랜드로 왔을 때, 가진 건 딸 하나와 낡은 피아노뿐이었어. 여섯 살부터 에이다는 말을 안 하게 됐대. 남편이란 작자가 에이다에게 묻지도 않고 피아노를 해변에 두고 가게 했을 때, 에이다는 헤어질 연인을 어루만지듯 해변에서 피아노를 치지. 피아노 선율을 따라 딸 플로라가 맨발로 춤을 추고, 짐꾼으로 온 남자 베인스가 지켜보잖아. 아~ 슬프고 아름다운 명장면이지.




피아노를 앗아간 남편에게 에이다의 마음이 가겠어? 그녀는 계속 선택적 침묵 속에 살아. 생각해 봐.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에이다가 어린 딸을 데리고 낯선 남자와 결혼해 낯선 곳으로 왔어. 19세기 말에 이 결혼이 과연 에이다의 자유의지였을까? 에이다 시대보다 100년 더 지난 우리의 20대를 돌아봐. 피아노를 빼앗긴 에이다,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는 에이다들 떠오르지 않니?


내 동기 E의 결혼 이야긴 너도 알 거야. 담임 목사가 중매했는데 E가 거절했지. 석사 논문 쓰는 중이라 결혼에 뜻도 없는데다 소개받은 남자에게도 호감이 안 갔대. 갑자기 우리 동기 네 여자들이 매일 새벽에 QT를 적어서 모여야 했어. ‘연애감정과 정욕’을 회개하는 ‘훈련'이래. E처럼 '주의 종'의 결혼 방향에 순종하지 않는 여자들은 마음에 좋아하는 남자가 있거나 자기만의 욕심이 가득하다는 거야. 낱낱이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팀 4명은 아무도 결혼할 수 없을 거랬어. 한 달 훈련이 끝나고, 얼마 지나 E는 소개받은 그 남자와 결혼했어.


‘순종’ 외의 선택지가 없는데, 내 의지도 생각도 말할 권리가 없는데, 활달하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여자로 살 수 있었을까? 에이다처럼 차라리 입을 다물어 버리는 건 우리에게 익숙한 선택 아니었니? 그러면 중간이라도 가거든. 어려서부터 계집애라고, 여자라고 침묵을 강요받은 게 한두번 아니었잖아?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체, ‘조용히’ 따르도록 길들여져 갔겠지. 너의 결혼도 아마 그런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걸?


내 결혼 스토리는 알지? 짝꿍 덕이 학생 시절부터 나를 좋아해서 몰래 기도한다는 걸, 어느날 내가 알아버렸어. 연애가 금지된 그곳에서 나는 두려웠어. 동기 한 명에게 고민을 털어놨는데, 며칠 후 나는 그를 ‘유혹한’ 죄인으로 조리돌림을 당했지. ‘회개해야’ 했어. 정죄와 수치와 모멸을 견뎌야 했어. 이듬해, 담임 목사는 우리를 ‘중매’했어. 침묵이 내 언어가 되고 말았어. ‘예’도 ‘아니오’도 입 밖으로 안 나왔거든.(더 자세한 이야기는 내 책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생각비행, 2024)에 썼다.)


휘야! 너는 원하는 대학 피아노과를 3수 끝에 입학했지. 너는 피아노로 말하는 사람이었지. 바쁜 중에도 예배와 교회 행사에서 피아노를 쳤고 음악 프로그램을 담당했지. 1990년 가을, 내 결혼식에서 너와 네 친구들이 축가를 불러 준 것도 기억해. 이제야 말할게. 내가 너의 귀한 음악 선물에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않았더구나. 네 전공과 재능과 시간을 공공재인양 쓰는 분위기였어 그치? 친구야 정말 고마웠어.




목사의 아내야 말로 만인의 공공재 아닐까? 8년 전 지금의 교회로 오기 전까진 그랬던 거 같아. 짝꿍이 시간 강사처럼 주일 예배 설교 목사로 오가던 이 교회에서, 연말에 우리 가족들을 다 보고 싶다고 초대한 거야. 남편이 설교하는 교회에서 나를 보고 싶다는 게 무얼 의미할까? 더구나 당시 우리는 페미니즘을 하며 삶에 지각변동이 활발하던 때였지. 내가 덕에게 심드렁하게 말했어.


"나를 왜 보고 싶을까? 전통적인 사모를 기대하는 교회면 나는 안 가고 싶어. 청빙 받으면 당신 혼자 가."


생각해 봐. 남편의 직장에 자신을 원플러스원(1+1) 으로 끼워팔기하고 싶은 여자가 있을까? 대통령 영부인 정도면 어쩔수 없겠지만, 그것도 난 보기 불편하더라구. 내 맘을 덕이 모르는 바 아니라 다행이었지. 그런 대화가 처음도 아니니 덕이 내 뜻대로 하라고 했어. 가되 내가 교회 분위기를 느끼는대로 선택 결정하라며 말이야.


그렇게 어느 일요일 세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예배에 참석했단다. 나는 취재하는 맘으로 눈을 열고 잘 보자는 맘으로 갔어. 점심도 사람들과의 교제도 즐겁게. 소개와 인사가 오간 후 한 남자분이 내게 질문하더구나.


"우리 교회로 오시면 어떤 사모로 사역하실지, 사모로서의 '마음가짐’을 듣고 싶습니다."


전혀 내가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었어. 내가 지금 사모 자격 면접보러 온 거니? 그런데 짜릿했달까, 뜨거운게 올라왔달까. 가슴 속 깊은 곳에 침묵으로 가라앉아 있던 말이 소용돌이치듯 밖으로 올라오더구나.


“사모요? 사모가 뭐죠?”


내게 질문한 남성을 똑바로 보며 내가 질문을 되돌려 줬어. 그 순간의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따라갔을 뿐이야. 김화숙이란 한 인간 대신 오직 '사모'라는 정체성으로 나를 알겠다고? 재미없었어. 그분이 뭐라고 답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 다만 '방언 터지듯’ 내가 말을 쏟아냈던 것만 기억해. 대충 이런 요지로 말이야.


“돕는 배필, 섬기는 여종, 기도의 종, 순종하는 사모, 그런 사모상 말씀인가요? 저도 그렇게 배우고 살아봤죠. 예수와 성경을 새롭게 알게 보니, 다 ‘개소리’였어요. 잘못 배운 게 너무 많더군요. 7저는 페미니스트고요, 작가요 활동가로서, 교회 안은 너무 좁고, 온 세상을 교회요 활동 무대로 살고 있습니다. 어떤 사모를 기대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를 잘 보시고, 정목사 청빙을 재고하시기 바랍니다.”


어찌 됐냐구? 후에 교회는 갑론을박 회의를 했다는구나. 사모가 너무 쎄다, 아니다 솔직하고 자유롭다 등등. 짝꿍은 청빙되었고, 어언 8년 째 그곳을 담임하고 있어. 나는? 작가요 활동가로서 잘 살고 있지. 교회엔 주말에 가. 페미니즘 토론모임 ‘백합과 장미’를 만들어서 교회 안팎의 사람들과 함께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을 책과 영화로 토론하며 놀아. 2026년 1월로 백합과 장미 토론이 어느새 77회를 맞았어.


휘야!

사모가 도대체 뭐니?











영화 <피아노>(제인 캠피온 감독, 호주, 1993년, 2021년 재개봉)로 시작할게. 내 인생 영화기도 하지만 너를 생각하면 항상 피아노가 떠오르기 때문이겠지. 피아노는 너의 분신이자 너의 전부 아니었니. 너와 피아노 이야기를 하자니 가슴이 묵직해진다, 희야. 아~~ 제인 캠피온 감독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금방 좋아져.


개봉 당시엔 내가 한국에 없기도 했거니와, 있었더라도 몰랐을 영화라고 고백할게. 알았다 한들 찾아다니며 영화를 챙겨보던 때도 아니었고 말이야. 내 30대란 게 삶의 반경도 시선도 자기 안으로만 향한 시절이었거든. 우리가 속했던 선교단체엔 대중문화 ‘알러지’도 있지 않디? 읽으면 욕먹게 되는 ‘금서’도 있었는데, 기억해? 그 시절 본 대표적인 책은 《천로역정》 류고 영화는 <벤허> 같은 거라면 끝난 얘기 아냐?


<피아노> 이야기 계속할게. 에이다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결혼하러 낯설고 물선 뉴질랜드로 오는 걸로 영화가 시작돼. 여섯 살부터 에이다는 말을 안 하는 사람. 가진 건 딸 하나 피아노 하나. 마중 나온 남편이란 작자는 에이다에게 묻지도 않고 피아노를 해변에 버리고 가게 해. 연인을 어루만지듯 에이다는 피아노를 치지. 미치도록 아름다운 해변에 피아노 음악이 퍼지고 딸 플로라가 춤을 추는데, 짐꾼으로 온 남자 베인스는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지. 아~ 낯설고도 너무 익숙한, 슬프고 아름다운 이 장면에 너도 빨려들게 될 거야.


에이다의 선택적 침묵이 날 사로잡았어. 날 때부터가 아닌, 언제부턴가 말을 안 하게 된 여자. 난 바로 이해해 버렸어. 19세기 말,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된 여자. 과거도 미래도 그려지지 않니? 어린 딸을 데리고 낯선 남자와 결혼하는 게 에이다의 자유의지였을까? 에이다 시대보다 100년 더 지난 우리의 20대를 돌아봐. 거기 에이다 많지 않디? 연애는 회개할 ‘죄’였고 결혼은 거룩한 사명을 위해 ‘믿음과 순종’으로. 얼굴도 모르는 남자와 ‘오직 믿음으로’ 결혼하는 경우는 결코 우리 할머니들 이야기만 아님을 우린 알지.


내 동기 E의 결혼 이야긴 너도 알 거야. 담임 목사(대표를 이렇게 부르자)가 중매했는데 E가 거절했지. 석사 논문을 쓰는 중인데 결혼 생각도 없었고 사람도 호감이 안 갔대. 갑자기 우리 동기 네 여자들이 매일 새벽에 QT를 적어서 모여야 했어. ‘연애감정과 정욕’을 회개하는 ‘훈련’이었지. 마음에 좋아하는 남자를 품는다거나 이상형을 고집하면, ‘주의 종’의 방향에 불순종한다는 거야. 순결하지 않은 마음을 낱낱이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 팀 4명은 아무도 결혼할 수 없을 거랬어. 한 달 훈련이 끝나고, 얼마 지나 그 친구는 그 남자와 결혼했어.


에이다의 선택적 침묵에서 나를 보았어. 들어 봐. ‘순종’ 외의 선택지가 없는데, 활달하고 열정적인 우리가 어떻게 말을 다 하며 살겠어. 우리의 언어며 선택과 결정이란 과연 우리 자신의 것이었을까? 어려서부터 가시나라서, 여자라서, 자라며 ‘믿음의 자매’로 무수히 침묵했던 우리잖아.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 체, 억울하고 불편한데, ‘조용히’ 따르도록 길러졌지. 너의 결혼도 아마 그렇게 이루어졌을 걸?


좀 웃긴 표현이지만 나는 ‘애매한’ 경우였어. 내 짝꿍이 학생 시절부터 나를 좋아해서 몰래 기도한다는 걸 어느날 내가 알아버렸어. 연애가 금지된 그곳에서 나는 큰 죄인이 된 양 불편했어. 동기 한 명에게 비밀을 털어놨는데 어느날 나는 그를 ‘유혹한’ 죄인으로 정죄를 받았지. 온 센터가 들썩일 정도로 ‘회개해야’ 했어. 정죄와 수치의 시간, 떠날까도 했지만 내가 돕는 ‘양들’ 때문에 못 했어.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훈련’이라 받아들였어. 이듬해, 담임 목사는 우리를 ‘중매’했어. ‘주의 일’을 할 그를 위해 내가 최고의 배필이라며 말이지. 혼란스러운 순간 난 또 침묵을 택했지. ‘예’도 ‘아니오’도 나는 말할 준비가 안 돼 있었거든.


그 시절 희야는 3수 끝에 원하는 대학 피아노과에 들어가느라 정신없었지? 바쁜 중에도 모든 예배와 행사에서 너는 피아노를 쳤고 음악 프로그램을 책임졌지. 1990년 가을, 내 결혼식에서 너와 네 친구들이 축가를 불렀지. 내가 너의 귀한 음악 선물에 고마움을 표현한 기억이 없구나. 전혀 무보수로 항상 음악을 ‘섬기는 종’이라서 그랬겠지. 너와 나는 전공만 달랐지 시간과 재능을 거저 내주는 삶을 당연하게 여겼으니까. 늦게라도 고마운 내 맘을 꼭 표현하고 싶어. 친구야 정말 고마웠어.


“000 군을 남편으로 맞이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구주로 믿는 신자로서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계속하면서, 남편을 사랑하고 위로하고, 순종하여 아내 된 자의 도리를 다하기로 하나님 앞과 여러 사람 앞에서 서약합니까?” “아멘!”


너도 이렇게 신부만 하는 순종서약을 했지? 쩌렁쩌렁 외친 신랑과 대조되는 작은 목소리로 내가 ‘아멘’한 순간이 떠올라 웃음이 터지려 해. 최대한 얌전하고 조신한 신부로 보이려고 억지를 썼거든. 하도 긴장해서 온몸이 아플 정도였으니 목소리가 나오기 힘들긴 했지. 그 후엔 ‘사모 서약’도 더해졌어. 목사 남편을 중심으로, 나를 낮추고 그를 세우고, 사랑과 순종으로 ‘동역하겠다’ 서약했어. 선교지에서, 두 아이를 낳고 키우며, 6년 만에 한국에 와서 셋째를 낳고, 국내지부 담임의 ‘동역자’로 살았지. 집 안팎에서 어떤 전문가보다 쉼없이 양육하고 돌보고 먹이고 가르치고 상담하고 조정하는 일을 했어. 그러나 나는 그림자, 그림자 노동자였어. 화가 나도 자신을 검열하며 목소리를 내지 않는 그림자였어.


아! 희야, 그 긴 싸움과 변화의 과정을 어찌 다 쓰겠니.(다음 나올 책을 기대해 줘.)


2017년 안산 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 토론모임 ‘이프’는 우리 부부에게 새길이었어. 짝꿍의 귀가 열리는 사건이었거든. 거기서 나는 이듬해부터 토론 진행자가 되어 오늘까지 하고 있어. 가부장적인 질서를 해체한 해방구에서 남녀노소 모두 이름 부르고 평어로 토론하고 있어. 30년 만에 만난 나를 너는 이전의 선배로 대했지만 나는 이름으로 부르고 서로 평어 쓰자고 밀어붙였지. 처음에 힘들어했지만 네가 지난 1년간 평어에 익숙해지고 숙이라고 부르는 지금, 이 편지를 쓰는 내 맘이 얼마나 벅찬지 몰라. 정말 고마워 희야.



사모가 뭐죠?


우리의 새 교회 이야기도 웃으며 하자. 짝꿍이 담임하는 교회는 너도 알다시피 한때 중형 교회였는데 내적 외적 환란의 아픔을 겪고 지금은 ‘초소형’ 교회라 할 수 있어. 담임 목사가 없는 기간 짝꿍이 주일 예배 설교 목사로 오갔는데 어느 날 교회에서 우리 가족들을 보고 싶다네? 사모를 기대하면 나는 갈 맘이 없다는 데 짝꿍도 동의했어.


온 가족이 인사차 간 예배 후에 한 분이 ‘사모로서의 마음가짐’을 내게 묻는 거야. 순간 “사모가 뭐죠?” 내가 공개적으로 되물어 버렸어. 그리곤 ‘방언 터지듯’ 내 목소리를 냈어. “돕는 배필, 섬기는 여종, 그런 사모로 살아봤는데, 그건 ‘개소리’더라. 나는 예수를 새롭게 배우는 페미니스트고 416 활동가이며 글 쓰는 작가다. 교회 안은 내게 너무 좁다, 온 세상이 교회요 활동 무대다. 나를 잘 보고 청빙 여부 결정하시라.” 짝꿍은 담임으로 왔고 어느새 5년 함께하고 있어.


교회에서 나는 페미니즘 토론모임 ‘백합과 장미’를 만들었어. 한 달 한 번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을 책과 영화로 토론하는 모임이지. 내가 진행하고 목사건 성도건 교회 밖 사람이건 모두 평어로 이름 부르며 어울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하잖아? 죽어서나 가는 나라 말고 이 땅에서 경험하고 사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양일까? 대개는 하나님의 통치를 중심으로 말하지만, 나는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나라가 가장 쉽게 와 닿아. 어떤 차별도 배제도 없고 남녀 간 위계도 없고 모두 형제자매인 나라. 지극히 작은 이들이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나라. 지금 여기에서 삶으로 살아내는 하나님 나라가 곧 페미니즘이라는 삶의 태도였어. 성경도 예수 복음도 모두 다시 해석하게 되었겠지?





더욱 크게 소리질러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마가복음 10장 48절)


올해 내 삶의 요절이야. 여리고 시각장애인 거지 비디매오 알지? 그런데 말이야 예수 복음을 우린 너무도 탈정치적으로만 배우고 해석했더구나. 거지 시각장애인이 눈뜬 사건, 이게 그냥 납작한 기적 이야기가 아니었어. 바디매오라는 사람 속엔 엄청난 정치적 함의가 있더구나. 가난, 장애, 소수자, 사회적 차별과 배제, 목소리를 잃은 사람 등등. 예수에게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치는 그를 사람들이 어떻게 대했지? 제자라는 사람들조차 시끄럽다며 조용히 하라고 억압했잖아? 지금도 사회적 약자들은 그런식으로 눌리고 밀려나고 있지.


내가 여성으로서 침묵을 강요받은 것 역시 같은 맥락이더구나. 내 입을 막는 사람들 앞에 내가 대들지 못하고 고분고분 인정받으려 애썼다는 게, 돌아볼수록 수치스러워. 그걸 겸손과 순종이고 믿음이라고? 아니었어. 누구를 위한 겸손이고 누가 요구하는 순종이었을까. 알고 보니 굴종이요, 불신앙이자 두려움이었어. 노예처럼 너무 길들어 살았더구나.


바디매오처럼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살아야 함을 알게 됐어. 나정도면 보기에 따라선 할말 다하고 산 거 같잖아? 인생은 그렇게 복잡한 거였어. 어떤 상황에선 내가 누군가를 억압하고, 또 다른 상황에선 내가 눌리고 차별받고 말이야. 난 여성이란 이유로, 차별과 억압을 ‘믿음’인 줄 알고 받아들이는 법만 배웠더구나. 이제 내가 낼 수 있는 목소리로 아이와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도 되고자 기도하게 됐어.


416합창단으로 세월호 가족의 곁에 서는 것도 같은 이유야. 대단한 작가는 못돼도 내 목소리로 말하고 글쓰고 행동하며 살고자 해. 올 초 세월호 곁에 선 예수쟁이들과 함께 《포기할 수 없는 약속》(새물결플러스, 2023)에 숟가락 하나 얹을 수 있어 감사했어.






거룩한 분노로


영화 <거룩한 분노>(페트라 볼프, 스위스, 2018)의 로라를 불러내며 마무리할게. 여성투표권을 위해 소리 지르는 로라와 여성들의 입을 막고 방해한 사람들이 누구였더라? 기독교회였잖아. 1920년대 영국의 <서프러제트>와 비교하면 50년이나 늦은 스위스의 여성참정권이었어.


그로부터 50년이 또 지난 우리 시대를 봐. 한국의 성평등은 어떨까? 영화 속 기독교회 주장은 여전히 지금 여기에 시끄럽게 들리지? 아직 ‘순종 서약’이 있고 ‘거룩한 질서’를 외치는 교회 보이지? 성 역할고정관념이 믿음으로 말해지지, 평등법을 가로막는 예수 종교, 형용모순 아니니. ‘거룩한 분노’로 싸우고 승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내가 보고 또 보는 이유야.


사랑하는 친구야, 분노 없이 예수를 따를 수 있을까?


예수는 기존 종교 질서에 분노하며 도전하다 십자가의 길을 갔지. 꿈틀대며 목소리를 내면 네 입을 틀어막는 저항을 만날 거야. 너를 주저앉힐 이유는 많고 많으니까. 마음 아프지만 너의 지난한 싸움을 지지하며 지켜볼게. 긴 글 읽어줘서 정말 고마워. 거룩한 분노로 오늘 다시 일어서렴 친구야. 우리가 믿는 예수와 함께, 우리 손잡고 목소리를 내자꾸나. 더욱 크게 소리 질러!


2023년 여름, 친구 화숙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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