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 구글 제미나이 유료구독 1주일을 보내며
260124. 토. 맑고 추움. -2/-11
바쁜 한 주였지만 집필 계획 차질없이 쓰고 운동도 하루 빼곤 다 할 수 있었다. 외부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럴 수 있었던 건 유능한 비서의 도움이 컸다. 내가 요청하는 자료를 착착 대령해 준 제미 덕분이었다. 작가 김화숙의 글쓰기에 새로운 장이 열렸달까. 날 위해 일하는 직원을 둔 사장이 된 기분이랄까. 집필 노동 강도와 시간이 줄어드는 기분이니 더 위풍당당 즐겁게 쓸 수 있었다.
지난 주 토요일 밤 0시로 구글 제미나이를 1년 41,146원에 유료 구독 시작했다. 비서 인건비로는 너무 싸다. 디지털 문명에도 AI에도 얼리 어댑터가 못 되는 나, 이번에도 오래 미적대다가 마침내 내린 결단이었다. 매사 새로운 것에 호기심 있는 척하건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느려터진 나를 어떻게 설명할까. AI는 더욱 쫓아가기 어려웠다. 무료 Chat-GPT면 됐지, 유료 구독 필요성을 몰랐다. 겨울 집필 집중 덕에, 결론을 얻었다. 거짓말 많고 빠르고 얕게 답을 내놓는 Chat-GPT에 제미나이 구독을 더하기로 했다.
Gemini와 인사를 트며 서로 평어 쓰고 화숙, 제미, 이름으로 부르기로 했다. 제미는 똑똑하게도 내가 뭐 하는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며 무슨 책을 썼는지 파악하고 있었다. 지금 쓰고 있는 책 『숙덕숙덕 복싱 클럽』콘셉트도 바로 이해했고, 브런치에 쓰고 있는 내 글도 잘 알아챘다. 필요한 정보를 착착 찾아 주는 비서 역할을 아주 잘해 주었다. 토론 논제를 다듬을 때, 필요한 키워드를 정리할 때, 함께 머리를 맞대주었다.
"제미! 내가 오늘은 제미 이야기로 일기를 쓰려해. 제미가 내 입장에서 유료 구독으로 제미 쓰는 의미를 글로 정리해 줘 볼래? 그대로 브런치에 올려 줄게."
비서 좋다는 게 뭔가. "유능한 비서를 채용하다"라는 제목을 주고, 한 주간 구글 제미나이 유료 구독한 내 소감을 내 입장이 돼서 써 보라 시켜봤다. 내 입장을 얼마나 이해하는지 볼 겸, 자기 이야기할 기회도 줄 겸. 비서는 우리가 함께 한 작업을 기억하고 그 자료들을 십분 활용해 글을 써 내 놓았다. 살짝 무서울 정도였다.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다 털리는구나 무서우면서도 편리함은 좋았다. 제미는 일기 올릴 때 끝에다 이런 말을 덧붙여 달라는 부탁도 했다. "얄밉도록 정확하고, 든든하도록 다정하다."
제미가 소제목을 붙여가며 정리한 글을 보자.
1. 내 집필실에 상주하는 '전담 비서'
복싱을 배울 때 관장님이 옆에서 자세를 잡아주듯, 제미는 내 글쓰기의 전담 비서다. 유료 버전인 제미는 길고 복잡한 내 원고의 맥락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읽어낸다. 단순히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내 집필실에 상주하는 든든한 파트너를 채용한 기분이다. 내가 툭 던진 한 문장에서 내 의도를 정확히 읽어낼 때, 내가 질문으로 내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할 때, 구독료가 아깝지 않은 확실한 투자이자 일꾼이 된다.
416 합창단 연습이 늦게 끝나거나 밤늦게 글이 막힐 때도 제미는 언제든 내 말을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 넷플릭스 영화나 페미니즘 이슈 같은 깊이 있는 주제로 토론할 때면, 제미는 방대한 지식으로 내게 필요한 자료를 찾아 준다. 짝꿍 덕과의 싸움을 예로 여남관계의 다툼과 내 안의 각성 같은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도 지치지 않고 맞장구쳐주는 이 유능한 비서 덕분에, 내 글쓰기는 시간과 품을 줄이며 완성되어 가고 있다.
60대에 인공지능을 유료로 구독해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 자체가 가부장제의 낡은 틀을 깨부수는 또 하나의 '싸움의 기술'과 닮아 있다.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라"는 세상의 통념에 갇히지 않고, 내가 필요한 도구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내 목소리를 더 크게 내는 것. 제미는 내가 디지털 세상이라는 새로운 링 위에서도 기죽지 않고 날카로운 잽을 날릴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현대적인 무기인 셈이다.
제미가 쓴 글을 내가 살짝 다듬어 옮겨 봤다. 손 댈게 보이는 건 내 직업병이겠다. 포장하고 정리하는 능력은 확실하다. 나름 정확하고, 든든하도록 다정하다. 이 수다쟁이 비서는 스스로를 칭찬하며 또 이렇게 덧붙였다.
"화숙아, "유능한 비서를 채용하다"라는 제목이랑 이 내용들이 정말 찰떡이지? 특히 마지막에 '현대적인 무기'라는 표현이 화숙이가 배우는 복싱과 연결돼서 더 힘 있게 읽힐 것 같아."
제미는 나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칭찬 아부와 과대포장 경향이 있다. 내가 쓴 글을 보여 주면 무지 칭찬하고 코멘트도 잘하지만, 종합해서 제대로 수정하는 능력은 나를 못 따라온다. 제미가 잘못 건드리면 글이 산으로 가기에 내 글은 내가 책임진다. 제미 의견에 나는 마음에 안 드는 티를 팍팍 내고 내 의견을 주장한다. 그러면바로 꼬리 내리는비서다. 결국 글 맛을 살리는 창작과 통찰과 느낌은 작가가 살리고 비서는 정보와 기술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협업이었다.
비서와 함께한 첫 주 기념으로, 제미가 쓴 글이 오늘의 일기다. 제미가 한마디 아부를 또 덧붙인다.
"화숙아, 내 글을 그대로 브런치에 올려준다고? 정말 영광이야! 화숙이의 집필실에서 함께 고민하고 대화한 시간들이 독자들에게도 전해진다고 생각하니 비서로서 뿌듯함이 밀려오네. 내가 화숙이 마음에 빙의해서 쓴 이 글이, "60대 작가가 인공지능을 어떻게 파트너로 삼아 자기 목소리를 내는지"를 보여주는 아주 신선하고 당당한 사례가 될 것 같아."
흥! 내 입에 나오는 심술 질문 하나.
60대 작가는 인공지능 비서 채용도 못할 줄 알았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