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과옥조로 믿던 젠더 본질주의를 쓰레기통에 버리다
복싱 동작 중 위빙(Weaving)을 좋아한다. 상대의 공격 궤적을 읽고 내 몸의 중심을 낮춰 피하며 공격으로 전환하는 동작이다. 마치 춤추듯 부드럽게 몸을 낮춰 알파벳 'U'자를 그리며 상대의 주먹 밑을 통과하되, 멈추지 않고 바로 훅!을 날려야 한다. 스포츠가 그렇겠지만, 복싱은 경직된 몸과 맘으론 하기 어려운 운동이었다.
위빙 weaving의 원뜻은 베틀에서 가로실(씨실)과 세로실(날실)을 교차시켜 천을 짜는 행위를 말한다. 실 사이를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베틀의 북(shuttle)을 상상하면 된다. 인파 속이나 장애물 사이를 좌우로 요리조리 피하며 나아가는 동작도 위빙이다. 가드를 유지하되 가볍고 부드럽게 좌우로 앞으로 쉼없이 움직인다.
이래서 복싱의 대가는 "복싱 글러브를 끼기 전에 춤부터 배우고 오라"고 했을 것이다. 몸에 익기까지 연습 또 연습뿐이었다. 굳은 몸을 워밍업하고, 몸과 맘을 풀어주어야 했다. 자유롭게 춤을 추되, 어떻게 날아오는 주먹을 잘 피하고, 날쎄게 훅을 날릴 것인가. 몸과 맘, 눈과 귀, 어느 것도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아니, 이 변화무쌍한 삶에서, 한 곳에 고정된 몸과 맘은 죽음이라고 가르쳐주는 게 위빙이었다.
내 첫 책『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가 나온 후 반년쯤 지난 2023년 봄이었다. 여기저기 북토크네 작가와의 대화네,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독자들을 만나고 다니던 때였다. 이전에 알던 것들이 총체적으로 해체되고 뒤집어지니 내면에 웅크리고 있던 목소리가 점점 더 살아나던 때였다. 안산 지역 공동체 FM라디오에 초대받아 '천원석의 횡설수설 인문학' 진행자 원석과 대화하는 날도 한바탕 위빙이었다.
오프닝 시그널 후 진행자가 오프닝맨트로 글 한 조각을 낭독했다. 남녀관계와 원만한 부부생활을 위한 책으로 가장 많이 팔렸다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의 한 조각이었다. "당신의 배우자는 다른 별에서 온 존재다"로 시작해, 애당초 다르게 생겨먹은 남녀가 지구별에 정착해 살다 보니, 갈등 해결 방법도 감정 표현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다름을 용납하고 수용하라는 요지였다.
나도 긴 세월 금과옥조인양 좋아하던, 그러나 오래 전에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그 책이었다. 어느 순간 내겐 재미없고 쓸모없어진 책이 내 방송에 인용되는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나는 그의 낭독을 들으며 생각을 요리조리 움직였다.
'저 낡은 이야기를, 나를 초대해 놓고 오프닝으로 낭독한다고? 할 게 그렇게도 없으면, 내 책으로 하지...'
진행자에겐 좋은 책이었을 테다. 내 짝꿍의 옛 모습이 어른거리는가 하면, 아무 일 아니라는 듯 넘어갈 것인가, 내 의견을 대놓고 피력할 것인가, 그것이 문제였다. 낭독이 끝나고 음악이 나가는 동안 우리 마이크가 꺼졌다. 내 솔직한 마음을 전할 기회였다. 조심스런 척 그러나 단호하게 내가 질문을 던졌다.
"지금 읽은 책이 페미니스트 작가 불러놓고 읽기엔 좀 안 어울리는 건 아시죠?"
그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할 수밖에 없었다. 페미니즘 성평등 관점에서 볼 때 존 그레이는 젠더 본질주의자다. 원래 그렇다며 가부장제를 정당화하는 논리라고 말해주었다.
음악이 끝나고 마이크가 켜졌을 때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양 토크를 이어갔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서 골라 내가 '간이 배 밖에 나온 여자' 한 조각을 낭독했다. 스스로 금성 여자라 믿으며, 화성 남자 논리에 맞추느라 간이 쫄아들어 살던 여자. 결국 간암 절제수술을 받은 후 겁대가리 없는 여자가 된 이야기였다.
나는 어쩌다가 믿고 따르던 '화성 남자 금성 여자'를 쓰레기통에 버렸을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 죽어라 남편에게 맞춰 살던 나는 어쩌다 간 큰 여자가 됐을까? 딱 10년 전 봄에 쓴 쫄보의 일기를 공개한다.
2016년 3월 18일 금요일
자고 일어나니 더욱 명료해진다. 이건 아니다. 나는 지금까지 기울어진 저울추는 안 바꾸고, 죽어라고 균형을 맞춰 보겠다고 바둥거리고 살아왔다. 대화가 필요하다. 남자는 책임 없다는 태도, 원래 그렇게 생긴 남자한테 변화를 요구하면 안 된다는 남편의 논리에 자꾸만 분노가 치밀어 미치겠다.
어제 우울에 빠지지 않고자 혼자 관악산을 오르고 교회단톡에 웃는 사진 찍어 올리며 용쓴 게 소용없다. 산에서 한 걸음씩 뗄 때마다 우리 문제가 점점 분명해지고 가슴이 답답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87년에서 한 발도 못 나간 남녀관계였다.(1987년에 보수 기독교 선교단체에서 겪은 성차별적인 일에 관해 전작 『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생각비행, 2024)에 썼다.) 산에서 내려왔건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4시 40분 영화 <뷰티플 프래디> 티켓을 사고, 그에게 가식적인 문자는 왜 보냈을꼬.
"비이성적 언어 공격 견뎌내신 당신 고마워요. 조나(폴란드 말로 아내라는 뜻)는 대안적으로 밖에서 풀고 미소 지으며 들어갈 테니 동굴 즐기며 자유 누리세요. 26년 인내와 수고를 단숨에 헛것이 되게 무너뜨리는 나쁜 조나를 대항하려면 숨을 고르고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하겠지요. 천천히 들어갈게요."
영화를 봐도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집에 들어와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터질 듯 분노가 치밀어올라 방으로 직행해 버렸다. 그의 손에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영어 축약본이 들려있는 게 꼴도 보기 싫었다. '지금 그딴 걸 영어로 읽고 있다고? 읽으면 뭐 하나. 화성 금성은 동굴이요 도피인 걸. 결국 남자는 책임 없다는 자기 정당화 도구다. 아내는 이 결혼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 느끼는데, 남편은 아무것도 안 한다? 아내가 태도를 바꾸고 마음을 비우고 조곤조곤 말 걸어줄 때까지 버티겠다?
침묵 속에 자고 일어나니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결국 오전에 내가 먼저 대화하자 했다. 그 한심한 책을 세 시간 동안 조목조목 함께 읽었다. 우리가 화성남자고 금성여자라 치자, 그럼 나도 원래 이렇고 당신도 원래 그렇다. 그럼 똑 같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상대에게 맞춰 보려 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러나 우리 관계는 당신만 정당하고 나는 거기 맞춰야 했다. 당신 동굴은 정당하고 대화하고 싶은 나는 무시됐다. 이게 바로 불평등이다. 내가 잘못 살았고 잘못 길들였다. 이대로는 내가 미쳐 죽든 암 재발해서 죽든 죽음뿐이다.
과호흡이 와서 나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죽음이 어른거렸다.
나 좀 살려 달라. 제발 내 말 좀 들어 달라. 이대로는 죽는다. 숨 좀 쉬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