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욕 안하는 고운 말이 능사는 아니다
넷플릭스 교양 프로 <욕의 품격 History of swear words>에 꽂힌 적이 있었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 '욕'과 '품격'의 조합이라니, 제목부터 코미디 스러웠다. 영어 대표 욕 단어를 한 편에 하나씩 탐구하는 6편 시리즈니까 원제 그대로 '욕의 역사'였다. 우리말 번역이 '품격'이 된 내막이 궁금해서 나는 단숨에 정주행해 버렸다. 그리곤 꼭 봐야할 교양프로라며 주변에 추천하고 다녔다.
fuck, shit, bitch, dick, pussy, damn.
영어 욕을 한글로 옮겨 말해 보면 요렇게 될까?
씨발! 똥! 썅년! 좆! 씹! 젠장!
순 우리말 욕은 이보다 더 찰진 게 많았다. 망할! 염병! 우라질! 지랄! 발광! 개새끼! 좆까!.....
욕은 가장 원초적 언어임에 틀임 없다. 욕은 영어와 비교할 수 없이 우리말이 풍부하다는 게 내멋대로 학설이다. 우리말 작품으로도 <우리 욕의 역사>, <우리말엔 왜 이렇게 욕이 많을까?>, <그 많던 욕쟁이 할매는 다 어디로 갔나> 이런 교양 프로그램 나오면 좋겠다. 옛날 내 고향 산골마을에 목소리 큰 욕쟁이 할머니가 생각난다. 왜 옥순이 할매는 욕쟁이가 되었을까? 지금 생각하니, 여필종부 남존여비 시절 젊은 여자가 감히 어찌 욕을 했을까. 억압과 차별과 설움의 세월을 살아내자니 어느날 욕이 폭발했을 것이다.
<욕의 품격> 첫 회에서 진행자인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하는 말도 바로 그랬다
"배우의 가장 큰 도구는 상상력인데 욕을 잘 쓰는 것도 큰 능력 중 하나예요. 욕을 쓰면 상처 주고, 달래고, 어르고, 겁주고, 모욕 주고, 유혹도 할 수 있죠. 영어에서 사용하는 모든 욕 중에 뻑 fuck이 가장 다양하게 쓰입니다. 그 단어로 인간의 모든 감정을 표현할 수 있고요. 고통과 경이로움 그리고 부적절한 육체관계도 이 한 음절로 표현해요. fu~~~~ck!"
나는 10년 전만 해도 욕과는 거리가 먼 여자였다. 어디 감히 지집애가 욕을 했겠는가. 말 잘하고 말 잘듣는 아이에서 점점 어른들 맘에 드는 애어른으로 자랐다. 남에게 욕 안 먹는 게 목숨이라도 걸린 일인 줄 알도록, 고분고분한 여자로 길러졌다. 엄한 어머니의 딸, 학교에선 모범생을 거쳐 조신한 '신자'요 현모양처요, 신실한 목사 사모가 됐다. 아이들이 욕을 하면 상상할 수 없는 '죄'로 혼쭐을 내는 엄마였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을 게다. 어느날 애들 노는 방에서 낯선 소리가 부엌에까지 들렸다.
"얌체같은 년!"
"이 나쁜 년~~~!"
난생 처음 듣는 험한 말이었다. 화들짝 놀라 달려가 다짜고짜 큰놈을 불러 엄한 목소리로 다그쳤다.
"너 지금 뭐라 했어? 어떻게 오빠가 동생한테 그런 나쁜 말을 해?"
아들녀석은 어리둥절 눈이 똥그레져서 나를 쳐다봤다. 나쁜 싹은 단칼에 잘라야 한다는 생각으로 나는 아이한테 회초리를 가져오게 했다. 애는 어리버리 영문을 모르는 얼굴로 회초리를 가져왔고 나는 아들놈 엉덩이를 3대 때려줬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자상한 엄마 코스프레로 차분하게 물었다.
"근데 왜 동생한테 얌체같은 년이라 했어? 뭘 어쨌길래?"
아이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동생한테 한 게 아니라 종이연한테 했단 말이야. 잘 안 고쳐지고 실도 막 엉키니까 화가 나서 그랬어."
이런 코미디가 어디 있다냐. 고개를 들어 보니 녀석이 놀던 자리에 가오리연이 실과 함께 엉킨 게 보였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종이연이 뜻대로 안 되니 아이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심한 말이 '얌체같은 연'이었던 거다. 평소 연년생 여동생한테 완력 쓰는 오빠가 아니었는데, 무슨 근거로 욕을 한다고 나는 단정했을까. 나는 아들녀석을 와락 끌어안았다. 묻지마 회초리 때린 걸 미안하다고 사과 또 사과해야 했다.
아무리 한들 아이 엉덩이에 닿은 회초리의 감각이 사라질 것이며 아이 마음이 달래질까. 녀석은 내 사과를 받아 주고 다시 종이연 수습에 집중했다. 너무 멋적어서, 회초리 안 맞겠다고 좀 대들지 그랬냐 내가 물었다. 종이연한테 나쁜 말 써서 혼나는 거라 생각했단다. 애들을 그렇게 잡는 엄마였다.
세월이 흘러 중년에 나는 '욕 좀 하는 여자'가 되었다.
삶이 나를 속이니 그리되었다. 부부 싸움에 욕이 등장할 줄 꿈엔들 알았겠는가. 죽어라고 좋은 말로 조곤조곤, 설득과 설명 100번 해도 불통이더니, 10년 전 그 봄 나는 짝꿍을 향해 욕을 쏟아낸 적이 있었다. 더 이상 못 살겠다면서. 충격 요법이었을까, 그의 귀가 열리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짝꿍에게 욕을 하기 전에 어쩌면 나 자신에게 먼저 욕을 해댔던 거 같다.
미친년, 한심한 년, 바보같은 년, 위선자, 무식한 년, 노예, 무지몽매한 년. 종노릇인 줄도 모르고 코를 땅에 박고 고분고분한 년, 눈멀고 귀먹고 멍청한 년. 길들어버린 년. 자아가 없는 년. 남의 장단에 춤 추는 년. 목소리 없는 유령같은 년.... 내가 잘못 살았고 심하게 속아 살았다는 깨달음 때문이었다. 화를 어떻게 해소할 길이 없었다. 나를 최악으로 인정하고 바닥을 치는 계기였다. 어떻게 나를 바꿀 것인가.
나는 이 욕된 삶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에게 욕하는 것도 욕 듣는 것도 싫었다.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않을 길은 공부였다. 내가 무식했다면 지금이라도 공부하는 거다. 길들여진 여자와 헤어질 결심을 하게 됐다. 날마나 분노하고 나한테 욕먹지 않을 새 삶을 살고 싶었다. 자신과 싸우게 됐다.
몇 년 전 이웃 블로그에서 "아이가 '나쁜 말'을 쓰는데 어떻게 지도할까"로 엄마들이 갑론을박이 있었다. 우리 애들 어릴 때 생각이 나서 지나쳐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엄마들 댓글이 "남자 아이니 욕을 어느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쪽으로 가고 있었다. 익숙하지만 너무 낯설어서 내가 그만 폭풍 댓글을 달고 말았다. 거창한 '젠더'며 '성차별'까지 운운하며 쓴 길 글은 이런 요지였다.
욕, 아주 중요한 의사 표현 수단이죠. 제 관심 주제라 한마디만 쓸게요. 저도 그 엄마처럼 애들한테 욕을 허하지 않는 엄마였는데, 어느 시점에서 보니 욕하라 가르치고 욕의 모범을 보이고 있더랍니다. 남자만 아니고, 남자라서 욕해도 된다 말고, 인간이라면 정황과 맥락에 따라 욕할 수도 있다고 가르쳐야죠.
제 생각은 여자가 오히려 더 욕을 잘 배우고 써먹어야 한다는 쪽입니다만. 젠더 불평등이 엄존하는 사회에서 욕은 이미 매우 정치적인 개념 아닌가 해요. 욕을 누가 누구에게 하는가, 왜 하는가, 정치 아닌가요? 욕을 먹어야 할 인간들은 힘으로 누르고 차별 받는 사람은 욕도 못하고, 이러면 안 되죠. 욕이 입에서 튀어나오면서 제 삶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거든요. 욕이 하는 선기능 분명히 있다고 봐요.
탈춤이라든가 각설이타령이 양반과 권력자의 허세와 위선을 걸쭉한 욕으로 패주잖아요. 약자가 강자를 조롱하고 훈계하고 혼내주고 뒤집어엎을 때 욕이 유용한 도구로 쓰이고요. 반면 힘 가진 인간이 우월한 지위에다 욕까지 하는 건 폭력이요 부끄러운 짓이죠.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욕은 중요한 싸움의 수단이란 말입니다. 아쉽게도 사회는 약자가 강자를 향해 욕하는 걸 허용하지 않죠. 걸핏하면 명예훼손이라잖아요. 왜 그런 욕이 나왔는지는 사라지고 역고소가 난무하는 경우가 많고요.
어쨌거나 한창 언어 습관 들일 나이에 함부로 욕을 쓰는 건 조심스럽지만, 애들에게도 욕을 허하라. 저는 그 쪽에 한 표입니다만. 여자는 특히나 고분고분 하라 요구하는 세상을 향해 욕을 하라! 불평등과 차별을 참아내지 말고 대놓고 욕을 하라, 그렇게 가르쳐야 해요. 이러면 또 욕먹게 될까요? 네, 욕 안하는 고운말만이 능사는 아니더란 말입니다. 단, 욕의 정치학도 같이 잘 장착해야 하고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