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안대소 또는 꼬장꼬장

나는 어떤 노인 여성 캐릭터로 살게 될까?

by 꿀벌 김화숙

인터넷에서 주워서 가끔 보는 재미난 이미지로 글을 시작한다. 두 여성 노인이 흔들의자에 앉아 생맥주잔을 들고 파안대소하는 모습이다. 심지어 한 사람은 양손에 하나씩 맥주잔을 들고 있다. 웃느라 의자가 흔들흔들하면 맥주가 쏟아질 각이다. 봉두난발 흰머리며 주름살에 치마 밖으로 나온 종아리를 보라. 노인의 피부 맞다. 생기 발랄 웃는 얼굴이 노인이라고?보고 또 봐도 좋다.


입을 한껏 벌리고 이빠진 잇몸을 다 드러내고 웃는 노인. 주변에서 보기 쉽지는 않다. 이 파안대소 노인 여성이 나는 왜 좋을까? 노년의 내모습이길 바라는 맘이다. 이건 도대체 어디서 온 건가, 누구 작품이냐, 내 비서 제미에게 물어보았다. 이건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디지털 아트'일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단다.


나도 파안대소 노년을 꿈꾼다. 허허 칼깔 웃어젖히는 유쾌 할머니이고 싶단 말이다. 하지만 꼬장꼬장 따지고 싸울 일 천지 아닌가. 그저께 내가 누군가 주고받은 카톡을 그대로 옮겨 본다. 파안대소 할머니는커녕 인상 쓰는 무서운 늙은이가 보일 게다. 맞다. 상황에 따라서 나는 심하게 꼬장꼬장하다. 그러나 돌아서면 또 파안대소한다. 오락가락, 울다 웃다, 이게 내 현실이다.




하정: 잘 지내세요? 우리회 총회가 벌써 내일이네요. 총회에서 뵐 수 있지요? 사무총장 이취임식도 있어요. 함께 함이 큰 힘이 되어요. 내일 봬요♡

화숙: 아이코 하정 목사님 안녕하세요? 벌써 총회로군요. 와~ 젊은 목사님이 신임 총장이군요.

하정: 네~ 맞아요. 이번 총회에서 인준받으면 일하게 돼요.

화숙: 오~~ 좋네요.


화숙: 제가 우리회에 맘이 상해 후원 끊고 안 가는 거 아시는지요? 자랑은 못되지만ㅠㅠㅠ

하정: 얘기 들었어요. 그런데 맘 상하신 것만 알았지 후원 끊고 안 나오시는 건 몰랐네요ㅠㅠ 운동이 내 맘처럼 되지 않지요ㅠㅠ 맘 푸시고 다시 얼굴 뵈어요. 얼마나 든든하고 힘이 되었는데요.

화숙: 든든까지는 아니었고요. 제가 소수자성을 즐기는 편이지만, 비건으로서 언제까지 배제를 견디고 양해를 구해야 하나 임계치에 닿았달까, 기억이 흐려졌지만,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던 듯요. 다양성 포용성이 자주 아쉽고 답답했거든요. 제가 있을 자리가 없다는 느낌이었죠. 더 넓은 자리에서 연대하겠죠.


하정: 외로운 운동이지요. 저는 비건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육고기는 먹지 않아요. 선생님 영향을 쫌 받은 듯.....ㅎㅎ 비건을 위해 새로운 삼총장님이 좀 더 배려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맘 푸시고 함께 해요.

화숙: 제 맘 푸는 게 길이란 생각은 안 들어요. 저 같은 회원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들도 제가 그랬듯 수없이 느꼈을 테고. 우리회가 어떻게 달라질 건가 그게 길이라고 봐요. 제 맘 문제도 누군가의 선의나 배려문제도 아니라고 보거든요. 에구 너무 진지ㅠㅠㅠ




나는 11년째 비건지향으로 살고 있다. 20년 가까이 회원 활동하던 단체를 비건 때문에 끊어버렸다. 사회운동이나 정체성으로 하는 게 아니었다. 간암 절제 수술 후 자연치유를 하며 단식을 한 후 채식을 하게 된 경우였다. 해 보니 몸에 맞고 내 몸이 나날이 건강해지니 점점 비건을 지향하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골고루 잘 먹는 아이'로 칭찬받던 사람이 고기도 해물도 가금류도 안 먹는다. 아량과 관용으로 그때그때 어울려 살아야 했다.


시간이 갈수록 관용이 능사가 아닌 걸 알게 되었다. 육식이 디폴트인 세상에서 비건은 소수자 중의 소수자. 남성 중심 세상에서 여성이라서 겪는 소수자성과 처절하게 연결돼 있었다. 고기 먹는 사람들은 "왜 고기를 먹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비건은 늘 왜?라고 의심받으며 해명을 요구받곤 했다. 여자가 왜 저래?처럼 말이다. 다수를 위해 소수자가 알아서 불편을 감수하는 세상이었다


몇 년 전 겨울 동지날에 딸과 함께 종일 눈 쌓인 서울 둘레길을 걸은 날도 그런 경우였다. 저녁 식사하기로 찜해둔 비건 식당을 향해 가는 길이었다. 식당가를 걷는데 어느 참치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사장님 이름과 사진에 상호까지, 어라?이 기시감은 뭐지?내가 아는 참치주방장이 떠올랐으니 들어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사장님 혹시 전에 오마이 블로그 하지 않았어요? 저 꿀벌 김화숙인데요.”

“세상에! 맞아요. 했죠. 꿀벌, 기억하고 말고요.”


온라인으로만 알던 블로그 이웃 '참치주방장'을 거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저녁 장사 준비하는 늦은 오후라 분주했지만 우리는 추억을 나누며 수다떨 수 있었다.(우리 관계가 끊긴 건 내가 암 수술 후 자연치유에 집중할 때 오마이 블로그가 사업 종료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으로, 나는 나중에 새 블로그와 브런치로, 다른 길을 가고 있었다.) 자리에 앉아 우리 모녀는 동지 팥죽을 대접받았다.


팥죽을 먹고 앉았노라니, 참치 식당에 들어와서 팥죽 대접만 받고 가기가 머쓱했다. 내가 비건이라는 사실이 한없이 미안해졌다. 메뉴판엔 모두 참치뿐, 어떻게 할 것인가, 깨끗이 돌아갈 것인가. 나는 ‘예외적 사회생활’을 딸에게 제안했다. 비건 둘이서 참치회를? 딸이 눈으로 욕하는 게 느껴졌다. 나는 눈을 찡긋하곤 소박해 보이는 정식 2인분을 주문했다.


숙성참치회가 잔뜩 올라간 거대한 접시를 보자 바로 후회가 몰려왔다. 10년만에 참치회를 먹겠다고? 말이 안되는 선택이었지만 이미 늦었다. 마치 참치 먹으러 오기라도 한 양, 전통술 한 잔씩 들이켜서라도 맛있게 먹는 척 했다. 비건으로 살긴 살았나 보다. 맛이 나지 않았다. 상징적으로 내가 몇 점 먹었고 딸이 숙제하듯 좀 먹었지만, 결국 남겨두고 일어나야 했다. 밖에 나오자 딸이 폭발하며 소리 질렀다.


“엄마는 조금만 먹고 나머지는 내가 ‘먹어치우는’ 상황 내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 애초에 우연이었고, 마침 동짓날이라 팥죽 먹고 가라 한 건데, 굳이 굳이 참치회를 시켜? 비건이라고 말 안 할 거면 ‘다음에 가족들이랑 한번 올게요~’ 할 수도 있었잖아! 예외로? 내가 온전히 선택할 수 있을 때나 예외지, 엄마 사회생활한다고 얼렁뚱땅 나 끼워 넣었지 무슨. 내가 하는 비건은 비건도 아니야? 엄마가 비건 친구랑 와도 이랬을까? 먹을 생각도 안 했을 거고, 만에 하나, 구구절절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겠지. ‘예외’라고 퉁치면 땡이야?? 나랑 인간 대 인간으로 함께하고 싶다며!! 친구라며!! 다 개소리네. 딸이라 만만한 거잖아!!!!!!…”


아, 다 맞는 말이었다! 돈 쓰고 몸과 맘 버리고, 왕창 망한 날이었다. 나는 몇 점 먹은 참치회가 몸에서 기어 나올 듯 역겨워져 다 토하고 말았다. 그리고 저녁 시간 내내 딸에게 ‘참 교육’을 받으며 사과하고 공부하고 깨져야 했다. 이건 파안대소일까 꼬장꼬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