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해도 여전히 원점에 서 있는 숙덕숙덕 싸움의 기술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 만사 변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속담이다. 사람도 풍습도 자연도.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AI 기술을 생각하면 10년은 엄청난 변화의 시간이다. 그러나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말도 있다. 10년을 공부해도 늘 제자리일 수 있는 게 사람 일이다. 시간이 흐른다는 건 그래서 희망이자 절망이다.
나의 중년은 2014년을 기준으로 이전과 이후로 나눠진다. 그해 여름에 간암절제수술을 받았고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새 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이다. 2015년 봄부터 단식과 자연식 운동 등 자기주도적 자연치유라는 새길을 걸었다. 26년간 순종적인 아내 역할을 엎어버리고, 평등 파트너로 다시 살기 시작했다. 목소리를 내고 싸우니 몸과 맘이 점점 건강해져 갔다. 평생 달고 살던 B형간염 항원이 소실되고, 2016년 말 항체가 생겼다. 2017년 봄부터 숙덕 부부가 함께 안산여성노동자회 페미니즘 모임 '이프'에 참여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기세로 함께크는여성울림의 '별을 품은 사람들'에 들어가 세월호 기억 활동에 참여했다. 독서모임이 매월 5개로 확대되었고, 416합창단에서 노래하며, 책쓰고 강의하는 작가 활동가 꿀벌 김화숙으로 10년여 새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내 책『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생각비행, 2022)와『숙덕숙덕 사모의 그림자 탈출기』(생각비행, 2024)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내년이면 내 나이 만 65세다. 국민연금 수급자는 이미 됐고, 내년이면 지하철 노인패스에 기초연금 수급자로 공식 노인인구에 들게 된다. 암수술과 갱년기 폭발로부터 12년이 지났고, 자연식 채식인으로 산 지 11년이고, B형간염항체를 얻은 지 10년이 지났다. 36년 결혼생활 중 숙덕 부부가 가부장적인 남녀질서를 청산하고 평등 파트너로 다시 살자고 싸워온 세월도 10년이 지났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니, 내 삶의 모든 영역이 멋지게 변했을까? 덕이라는 남자는 멋진 페미 남성으로 나날이 성장하고 있을까? 그렇다고 말하고 나면, 안타깝게도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 그런 순간이 또 왔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인생 길. 숙덕이 함께 싸우며 만들어가는 새 관계도 그랬다. 이짓을 계속할 에너지가 과연 내게 언제까지 있을지, 아프게 질문하며 싸운다. 지난 한 주간에도 똑 같은 짓을, 왕초보나 하는 싸움을 반복한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와~ 이제 할머니 창원 모셔드리고 나면 아빠 홀가분해서 합창할 때 어깨춤 추는 거 아냐?"
1타3피의 짧은 여행 길,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딸이 우스개를 날렸다. 11월부터 1월말까지 서울에서 돌봄받던 시엄마를 태우고 창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시엄마는 이제 석달간 작은 아들네서 돌봄받게 된다. 돌봄에 매여 살던 덕이 여행도 하고 합창단 공연에도 서는 걸 딸이 기뻐하는 말이었다.
"맞아! 어쩌면 이번 공연에서 아빠는 덩실대며 자유롭게 노래할 지도 몰라."
나도 킥킥대며 거들었다. 평소 몸이 뻣뻣한 덕을 놀리는 소리이자, 돌봄의 짐을 벗은 덕이 몸을 움직이며 노래하는 걸 상상하는 내 맘이기도 했다. 모녀의 우스개를 듣고 운전석의 덕이 받았다.
"에이, 합창할 때 몸 동작하는 것도 분위기 봐가며 잘해야 하는 거야. 아무 때나 하는 거 아냐."
엥? 이야기가 어째 산으로 간다. 지금 맥락에서 저런 소리가 왜 나온다냐. 지나쳐 볼 수가 없다.
"무슨 소리야? 자기 몸이 잘 안 따라준다고 받으면 되지, 누가 분위기에 안 맞게 몸동작한다고 그래? 자기가 잘 못하는 게 아니라 나같은 사람들이 아무 때나 나대서 분위기 망친다는 소리야 지금?"
내가 너무 날카로웠을까, 그가 갑자기 목소리를 높여 버럭! 한다.
"아 됐어. 그만 그만. 엄마도 계시고 딸도 있는데 계속 그 얘기만 듣고 싶지 않다고."
갑자기 분위기 싸해졌다. 우리끼리 하는 대화였으면 분명 이 정도 예민하게 굴 건 아니었을 게다. 수세적일지언정 내가 제기하는 문제를 듣는 시늉은 하는 그였기 때문이다. 당황한 건 나도 딸도 마찬가지였다. 청력이 안 좋은 시엄마를 의식했다는 건 말이 안 되고, 아마도 딸 앞에서 깨지는 아빠이고 싶지 않았을 게다. 뻣뻣한 몸인 거 다 아는데 이런식으로 대화를 막아버리는 태도는 너무 실망스러웠다.
"이건 뭐야? 엄마를 그렇게까지 의식했어? 자기 몸 뻣뻣해서 잘 안 된다고 하면 될 걸 왜 잘하는 남을 판단하고 그러냐고. 내가 합창단에서 분위기 모르고 나대는 사람이라는 거야? 몸 부드러운 단원들이 다 문제라는 거야? 이런 화법 정말 싫어."
내가 쏘아댔지만 그는 침묵에 잠겼다. 그 상태로 덕은 창원 시동생네로 시엄마 모셔가고 나와 딸은 마산 여행을 했다. 호텔에서 자고 다음날 덕과 합류해 부산으로 함께 가 416합창단 공연을 했다. 그 후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도 그는 마무리 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던 양 행동하는 게 그의 전략이라면 전략. 자신을 인정하지도 내 상한 기분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그 태도 때문에 나는 속이 더 상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며 희망을 가질 이유일까, "10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며 절망할 이유일까? 몸에 밴 평가자요 판단자의 화법에 내가 싫은 티를 내는 게 문제일까, 그걸 문제로 인식하지도 적절히 반응하지도 않는 그가 문제일까. 앓느니 죽지, 죽어라 도전하고 토론한 10년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답답한 가슴에 2016년 다이어리를 펼쳐 든다. 숨막히는 가슴으로 썼던 그해 일기 중에 또 가져와 본다.
2016년 3월 27일 일요일
주일 낮 아이들 점심 준비해 주고 청소하는 내내 가슴이 무겁고 아팠다. 이런 기분 정말이지 나 자신에게 부끄럽다. 인생이 허망하고 울적한 기분이다. 결혼 26년간 내가 용쓴 게 고작 가면이었고 양보였다. 타락 후 형벌받은 여자의 일생, 그거였다. 창세기 3장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그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기껏해야 남편의 다스림 아래, 두려움의 종노릇하는 인생이었다. 아닌 걸 아니라 말 못하고, 내 가슴이 말하는 것을 부인하며, 스스로를 끝없이 죄인으로 몰아가고 남편을 높여주었다. 남편은 그걸 당연히 여기며 자신이 잘 해서 그렇다 생각하고, 아내를 알려고도 이해하려고도 받아들이고자는 연습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판단과 배척과 무시가 두려워 나는 굴종하고, 그것을 믿음이라고 포장하고. 위선적으로 살았다.
가슴이 답답하다. 내 인생 돌리도~~~! 이 말뜻 알 거 같다. 이제라도 도전 주시고 깨닫게 하심 감사합니다. 그러나 진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덧입고 이 소용돌이를 잘 벗어나게 하옵소서!
2016년 12월 25일 일요일
창세기 3장 16절,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그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
실낙원의 처절한 현실감각을 부부 사이에서 계속 확인한다. 여와 남은 철저히 분리되고 서로 적대적이며 원망하는 관계인 거다. 잠시 욕망의 에로스가 착시 현상을 일으켜 서로 죽고 못살 것 같았지만, 그 불이 식으면 달라 보인다. 서로의 욕구는 처절하게 다르게 드러난다.
여자는 죽을 고통을 지불하며 자식을 낳고 기르느라 수고한다. 그리고 죽어라 남편을 원하고 소통하기 원하고 함께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남편은 죽어라 일하고 먹고살고, 아내를 향한 유일한 욕구는 그녀를 다스리는 것. 다시 말해 아내를 통제하고 자기 수하에 두고 싶어하는 거다. 자기 판단과 계산을 벗어나는 그녀의 감정 행동 생각 욕구 무엇이든 제제의 대상일뿐이다.
그리스도로 해방되고 구원받은 여와 남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그 반대로 살아야 마땅하다. 죄와 벌로부터 해방된 여와 남, 위계 없이 평등한 관계, 상호 존중과 지지의 사랑, 이게 구원이다.
2016년 12월 26일 월요일
인생, 말짱 속아서 헛살았다는 이 기분 더럽다. 말라비틀어져서 잘 써지지 않는 볼펜과 같다. 내 딴에는 잘 살아내 보겠다고 한 것들이었는데 그토록 엉터리 거짓된 삶이었다니, 미치겠다.
아들은 그래도 젊다. 유연하다. 미안하단다. 그러나 무슨 소용있나. 사람이 바뀐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가. 결혼 26년 생활 굴종적인 여자로, 전적으로 자신을 굴복시킴으로써만 맛보는 평화를 얻겠다고, 그토록 노예처럼 살았더란 말인가. 그에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찮고 하찮았다. 아들은 남자로서 보고 배운 게 없는 거다. 아버지를 그대로 흉내내는 것 말고는 배운 게 없는 거다.
내가 잘못 키웠다. 내가 잘못 살았다. 노예같은 어머니. 아버지만 권위있고 옳고 어머니는 늘 틀린 존재였다. 그러니 여자를 이해할 기회가 없었던 거다. 본데 없는 남자로 자라고 말았다.
2016년 12월 27일 화요일
4박 5일 여행계획. 성북동. 유진네집. 12/29-1/2 숙박 예약. 32만원 입금. 나 홀로의 시간이 필요하다. 2016년 한해 그토록 푸닥거리 지랄발광한 결과가 기껏 여전한 방식으로 살고 있는 거라면? 그건 안 된다. 과연 내 인생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지나칠 정도로 자신에게 몰입하는 내 의식. 쉬며, 읽고 쓰며 홀로 연말과 연초를 보내고자 저질렀다. 일종의 가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