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와 남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거늘 교회는 왜 그따위로 가르쳤을까
"All human beings are born free and equal in dignity and rights. They are endowed with reason and conscience and should act towards one another in a spirit of brotherhood.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인간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서로 형제애의 정신으로 행동해야 한다."- 세계 인권 선언문 제1조
가끔 '세계 인권 선언문'을 찾아 영어와 한글로 대조하며 읽곤 한다. 내가 태어나기도 더 전에, 나보다 14년이나 먼저, 1948년 12월 10일에 선포된 인권선언문. 이 선언문에 따르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등한 한 사람으로 태어났다. 내가 여자라고, 딸이라고, 한국의 경상도 깡촌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차별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
그러나 가슴 아프게도 나는 인권선언 따위 모르는, 철저히 남성 중심 가부장제 속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귀가 닳도록 듣고 확인하고 주입받아야 했다. 여자란 재수 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저주와 혐오의 대상이고 차별받아도 당연한 존재였다. 여자라는 사실로 어린 나는 이미 불행했고 내 인생은 일찌감치 실패작이었다.
"지집아가 똑똑해서 어디다 쓰겠니. 저래 나대서 누가 데려가겠니.""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다. 남편 잘 만나는 게 여자한테 최고의 복이다."
"여자는 얌전해야지, 기가 센 여자는 남자 앞길만 막아서 못 쓴다."
그런 소리를 듣고 자라는 소녀를 생각해 보라. 캄캄한 밤이요 자기혐오의 안개속을 헤매는 청춘이었다.
더 큰 비극은 그다음에 있었다. 여성 혐오에 멍든 청춘이 대학에 갔으면 저항과 전복의 화염병을 던졌어야 맞다. 애석하게도 나는 최루탄이 무서워 겉돌다가 '할렐루야'에 이끌려 갔다. 보수적인 선교단체에서 극 남성중심적인 세계관과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이요 아내는 남편을 순종'하도록 훈련받았다. '세계 인권 선언'보다 몇 천년 전에 이미 하나님이 인간을 평등하게 창조했다고 성서에 기록돼 있었는데 말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7절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라디아서 3장 28절
이 평등의 진리가 50세가 돼서야 내 눈에 들어왔다. 그래, 교회가 성서를 잘못 가르쳤구나. 남성 중심 가부장제와 기독교가 야합을 했구나, 예수 정신과 전혀 반대로 성서를 읽었구나, 눈물로 깨달아야 했다. 비로소 의심하고 질문하며 성서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이요, 여자도 남자도 종도 자유인도 차별이 없는 평등한 존재였다. 비로소 내가 하나님의 형상이요 목소리를 가진 한 인간으로 설 수 있었다.
2025 '한국교회 여남평등주간'에 내가 매일 받아 읽은 기도문을 올려 본다. 매년 12월 10일(UN 세계인권선언일)이 포함된 주간인데, 일반 사회의 양성평등주간(9월 초)과는 별개로, 기독교계(특히 NCCK 계열)에서 독자적으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성평등 성서 해석과 성평등 교회 문화를 위해 기도하며. 내가 고분고분 길들여지며 싸움할 줄 모르던 시절을 부끄러워하며 쓴다.
1. 2025년 12월 7일 주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를 지으시고 참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씀하신 하나님,
지금 우리의 살아가는 모습도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으신지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소서.
차별적인 언어 사용을 자각하고 평등하고 포용적이고 중립적인 언어 사용에 민감하게 하소서.
우리 모두 말과 태도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살아가게 하소서.
서로가 하나님 보시기에 참 좋았던 평등한 교회 문화를 만들어가는 돕는 자이레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 2025년 12월 8일 월요일
주님, 당신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함께 창조하시고,
서로를 돕는 동역자로 세우셨으나,
우리는 여전히 불평등한 구조 속에 성별로 은사를 판단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새롭게 하시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책임지고 결정하며 섬길 수 있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교회 안에서부터 실현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3. 2025년 12월 9일 화요일
사랑의 하나님, 이 땅의 수많은 여성들이 여전히 폭력과 차별로 고통받고 있습니다.
사랑이라 불린 관계 속에서,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도,
상처와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폭력의 얼굴은 더 교묘해지고,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여성의 존엄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주님, 우리 사회와 교회가 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가해자에겐 책임을, 피해자에겐 회복을 주시고, 안전하고 정의로운 신앙 공동체를 세우게 하소서.
폭력의 사슬을 끊고, 두려움 대신 존엄이, 침묵 대신 진실이 우리 안에 흐르게 하소서.
주님, 우리가 먼저 변화하게 하소서.
폭력과 낙인, 고장관념을 넘어 서로를 존중하며 평등의 길을 함께 걷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4.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생명, 평등, 평화의 주님,
인간을 수단화하는 잔혹한 세상에서 고되게 일하고도 노동의 대가조차 빼앗기고,
불안한 체류의 과정에서 불이익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이들,
출산과 아이를 담보로 꿈이 저당 잡힌 이주 여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낯선 땅에서 삶을 이어가는 이주 여성과 이주 배경 자녀들을 돌보아 주소서.
그들이 필요한 도움을 제때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소서.
국적과 체류자격의 벽으로 누구도 소외 도지 않게 하시며,
이주 배경 자녀들이 존중받고 희망 안에서 성장하도록 인도해 주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함께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자기만 추구하는 것에서 자기를 비워 다른 생명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들게 하소서.
수백만수천만의 가난하고 짓밟히고 죽어가는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함께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5. 2025년 12월 11일 목요일
생명의 하나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세상 속에서 특별히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과 지극히 작은 자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우리의 탐욕을 용서하여 주시고, 불평등과 폭력,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그들의 존엄이 지켜지게 도와주소서.
기후정의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복음적 책임이자 사랑의 계명입니다.
교회가 고통받는 이들에게 먼저 귀 기울이며 생명 살림의 길을 걷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6. 2025년 12월 12일 금요일
사랑의 주님,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낮은 임금과 불안정한 노동, '유리 천장'에 막혀 좌절하는 이들의 신음을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빈곤과 차별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생계와 존엄을 위협받는
지극히 작은 자들의 곁에 우리 교회가 서게 하소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사랑과 정의의 도구가 되게 하시고,
우리 매일의 삶에서 절제와 나눔을 실천하게 하시며,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경제 정의가 이루어지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 2025년 12월 13일 토요일
하나님, 우리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기억하게 하소서.'
교회가 설교와 교육, 문화 속에서 성별에 따른 고정된 역할을 만들고 제한해
여성의 목소리를 약화시켜 온 관행을 고백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성경을 새롭게 읽는 지혜를 주시고,
복음이 말하는 정의와 평등의 시선을 온전히 회복하게 하소서.
하나님, 교회 안에서 성차별적 언어가 쉽게 오가고,
사역과 직책이 성별에 따라 배치되어 온 구조를 더 이상 외면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침묵을 깨고 병화에 참여하게 하소서.
하나님, 성평등한 성경 읽기와 실천을 통해 한국교회의 성평등지수가 높아지고,
차별을 바로잡아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킴벌리 커버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
금방 학교를 졸업하고 머지않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으리라.
아니, 그런 것들은 잊어버렸으리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으리라
그 대신 내가 가진 생명력과 단단한 피부를 더 가치있게 여겼으리라.
더 많이 놀고, 덜 초조해했으리라.
진정한 아름다움은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데 있음을 기억했으리라.
부모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알고
또한 그들이 내개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아, 나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는 분명코 춤추는 법을 배웠으리라.
내 육체를 있는 그대로 좋아했으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을 신뢰하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었으리라.
입맞춤을 즐겼으리라.
정말로 자주 입을 맞췄으리라.
분명코 더 감사하고,
더 많이 행복해했으리라.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