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만 보고 있는 상대의 측면을 공격하라, 훅의 맛
"자, 이번엔 치고 그대로 있어봐요. 밀리지 말고. 더, 더, 더!"
내가 오른 주먹으로 훅을 계속 날리고 관장이 오른손 미트로 받아주며 주문한다. 치고 빠지지 말고 계속 미트를 밀어보라고. 나는 안간힘으로 버티며 힘을 쓰지만 관장의 힘에 결국 뒤로 밀린다. 그러면 다시 가드, 하면 내가 가드를 올리고 훅, 하면 오른팔을 어깨 높이만큼 들어 올려 내 얼굴 앞으로 기역자로 꺾어 훅! 날린다. 관장은 훅! 훅! 반복한다. 그러다간 한 번씩 머물러 보라 하고 '더, 더, 더!" 외친다.
"좋아요, 더 세계. 더, 더, 더!"
훅은 온 힘의 회전력을 이용하여 상대의 측면을 가격하는 기술이다. 훅! 오른팔 힘을 느껴보라고 더 세게 치고 버텨보게 하고, 다시 더 세계 치고 빠져보라 한다. 나는 남몰래 미소 짓는다. 아기 낳을 때 듣던 소리가 떠올라서다. 산통을 견디느라 녹초가 돼 가는 몸으로 가쁜 숨을 몰아쉴 때, 나를 이끌던 소리가 "그래, 조금만 더, 더, 더, 더!"였다. 훅이 힘들기로서니 감히 출산의 고통에 비하랴, 온몸을 회전하듯 힘을 실어 날린다.
훅! 왕초보 복서에게 휘어지며 치는 타격감이 짜릿하다. 팔을 앞으로 쭉쭉 뻗는 쨉이나 스트레이트와는 다른 맛이다. 오른 주먹으로 힘을 실어 훅을 날리자면 뒷발, 다리, 골반, 상체 등 온몸을 왼쪽으로 틀어주며 회전력을 이용해 야 한다. 회전하되, 너무 넓게 휘저서 중심을 잃으면 안 된다. 각도를 유지하며 세게 날리곤 중심을 바로 회복하는 게 기술이다. 다른 팔은 물론 가드를 유지해야 한다.
내 삶의 싸움에도 온몸의 회전력을 이용해 측면공격해야 할 때가 있었다. 상대가 앞만 보고 있을 때, 늘 해오던 대로 뻔한 공격을 하고 있을 때, 상대의 빈틈 옆구리로 날린 날카로운 훅의 맛. 상대의 약점을 파고들기, 낯선 질문하기, 대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기. 그런 훅으로 상대를 KO로 때려눕힐 수 있었다.
우리 관계는 어떤 전세 위에 세워져 있지?
우리 관계 이대로 지속가능한가?
나만의 문제도 너만의 문제도 아닌 관계의 재전제가 문제 아닐까?
이전에 한번도 안 해본 이런 질문이 나를 파고 든 건 10년 전 그날 이후였다. 2016년은 간암 절제 수술 후 2년 차였다. 자연치유로 몸이 나날이 건강을 회복해 가니 내 마음이 나날이 달라지고 있었다. 직장은 어차피 때려치웠으니, 이젠 "죽기 전에 곡 하고 싶은 일부터" 하기로 했다. 그건 글쓰기였다. 자꾸만 달라 보이는 세상을 내 언어로 정리하고 싶었다. 읽고 쓰고 토론하자, 돈 내고 배우느라 밖으로 다니게 됐다.
일단『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버리고 나니, 내겐 다른 근거가 필요했다. 남자는 원래 그래, 여자는 원래 그래, 이게 아니라면, 여자는 남자는 도대체 어떤 전제로 살 것인가? 내가 살아온 지난 삶을 돌아보아야 했다. 결혼 26년 동안 나는 '좋은 아내'가 되고자 남편과 목소리 높여 부부싸움 한 번 한 적 없없다. 아니 부부가 대화의 상대는 몰라도 싸움의 상대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한번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나니 봇물 터지듯 속에서 할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암수술 때문이라 해도 좋고 갱년기 증상이라 해도 좋다. 이유가 무엇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나 스스로에 대해, 그리고 나와 덕의 관계에 대해 아주 '급진적으로' 질문하고 있었다. 무엇이 내 눈을 뒤집어놓았을까. 내가 믿고 살아온 결혼이, 스위트홈이, 달리 보였다. 우리 관계는 내가 믿은 만큼 아름답지도 소통적이지도 않았다. 심지어 알고 보니, 서로 사랑하는 관계가 아니라 지배하고 복종하는 관계였다.
"아내와 남편이라는 관계 26년. 이거야말로 잘못된 전제 위에 세워진 사상누각 아닐까?"
그렇다, 그 "의심"과 "질문"이 나를 덮쳐왔다. 즉, 우리 관계의 보이지 근간, 토대, 정신, 철학, 뭐 이런 게 있었을 거 아니냐. 그 대전제를 다시 뜯어보기로 했다. 내가 왜 자꾸 화가 나는지, 나는 왜 이 남자와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 느끼는지, 내가 왜 잘못 살았다 싶고, 잘못 가고 있다 싶은지, 어디서 꼬였는지 밝혀야 했다. 우리는 자타가 인정하는 잉꼬부부였고, 누군가는 우리를 '롤 모델' 부부라 했는데, 왜? 왜?
슬프게도 한 여자와 한 남자가 부부라고 엮인 건 별 거 아니었다. 법적인 계약 관계였다. 다시 말해 계약은 당사자 간에 수 틀리면 파약할 수 있는 인위적인 약속이었다. 내게 시민으로서 참정권이 있듯, 누군가에게 투표할 수 있고 나 스스로 선거에 나가 뽑힐 수 있는 피선거권이 있듯, 내게는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었다. 심지어 부모 동의가 없어도 가능한 권리였다. 그러나 나는 권리의 주체로서 결혼한 적이 없었다. 종교 권력과 부모의 힘에 의지해 '얼렁뚱당' 결혼했고, 권리는 모르겠고, '사명'과 '여자의 본분'만 잔뜩 지고 살고 있었다.
내가 깊이 고민한 적도 없이 따르고 있는 대전제, 세계관, 그걸 나이 54세나 돼서야 의심한다는 게 부끄럽지만, 실화였다. 내 결혼은 더도덜도 아닌 '가부장적 질서' 위에 세워져 있었다. 즉, '천부의 남녀 질서'다. 성경적 진리로 주입된 "하나님이 창조 때부터 남자와 여자 사이에 질서를 부여하셨다"라는 전제,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전제였다. 여자의 머리는 남자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는 논리였다. 수천 년 유교의 그것과 대동소이, 남존여비와 부부유별이 정당화되는 논리였다. 이 21세기의 무슨 남존여비냐고? 누가 대놓고 남존여비를 입에 올리겠는가. 그게 성경적 진리요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내가 한 남자를 돕도록 지어진 존재라면, 내 삶은 누가 살아 줄까? 여자는 너무나 유능해서 자기 인생도 주체적으로 살고 한 남편을 돕는 존재라고? 남자는 여자보다 무능해서 반드시 돕는 배필이 필요하다고? 누군가는 개소리를 그렇게 정성스럽게 할 것이다. 결혼 26년 동안 나도 그런 줄 알고 살았다. 누군가는 묻겠지. 누칼협?(누가 칼 들고 협박했어?) 명시적인 칼은 없었으나 여성혐오와 정죄와 비판과 모욕이 있었다.
이런 내 고민을 짝꿍이 경청하고 이해했을까? 매일 새로운 깨달음과 발견이 내 숨을 막히게 했다. 대전제를 바꿔야 한다. 전혀 다르게 살아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이 결혼을 끝내고 싶다고 싶었다. 과호흡의 공포가 나를 엄습하곤 했다. 설명하다 지쳐 죽을 것인가, 불통에 숨막혀 죽을 것인가, 이러나 저러나 죽음만 보였다. 나를 죽이고 조곤조곤 말해도 못 알아듣던 그가 이제 화가 폭발한 내 목소리를 이해할 리가 없었다.
"그래, 위압적인 상관이 있는 군대도 제대하면 끝이다. 이 부조리한 결혼에서 나도 제대하고 싶다."
2016년 3월을 나는 내 인생의 '혁명의 한 달"이라 부른다. 대전제를 의심하자 내 입이 트이고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 자신의 느낌에 솔직할수록 남편은 더 이상 내가 받들고 순종하며 보호대야 할 대상이 아니었다. 지배와 복종의 부부에서 평등 파트너로의 변화, 혁명이었다. 나는 설명하다 숨막혀 죽느니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기로 했다. 그는 '싸움의 상대'로 나와 대화하든지 아니면 이혼해야 했다.
"나는 이 결혼에 희망이 없다고 본다. 당신도 살 궁리 해라. 당신은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태도로는 나를 절대 따라올 수 없다. 나는 그런 남자를 질질 끌고 갈 마음 없다. 안 되는 사람 붙잡고 바꿔보려고 어거지 쓸 맘 없다. 대전제를 바꿔서 다시 살든지, 아니면 각자의 길을 가는 거다. 이혼이 답이다."
결혼 26년간 상상한 적도 없는 이혼이란 말은 그의 정신을 혼미하게 했다. 앞만 보다가 전혀 예상 못한 방향으로 치고 들어온 한 방 '훅'이었다. 대전제를 의심한 적 없는 덕은 속수무책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 주도의 싸움을 해 본 적 없으니, 그에겐 쓸 수 있는 기술도 없었다. 남녀질서니 하나님의 뜻이라는 쨉쨉 시늉으론 훅을 막을 수 없었다. 나는 대전제를 뒤흔들어 버렸다. .
라이트 훅! 레프트 훅!
덕이 의지하던 것들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