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어떤 베이스캠프를 원하지?

36년 같이 살았지만 숙덕에게 결혼은 계속 다시 질문하는 싸움의 주제다

by 꿀벌 김화숙

가정 주부

앤 섹스턴(Anne Sexton 1928-1974)


어떤 여자들은 집과 결혼한다.

그것은 또 다른 종류의 피부: 그것은 심장을 가졌고,

입을 가졌고, 하나의 간과 똥을 가졌다.

벽들은 불변하며 핑크빛이다.

보라 그녀가 하루 종일 어떻게 앉아

충실하게 제 자신을 씻어 내리고 있는가를.

남자들은 강제적으로 들어간다, 요나처럼 되돌아와,

그들의 살의 엄마들에게 들어간다.

여자는 그의 엄마다.

그것이 중요한 일이다.


매번 울컥하며 읽는 시다. 시인 앤 섹스턴의 생몰연도를 뚫어지게 들여다보곤 한다. 지금은 이 땅에 없지만 나와 삶의 경험을 공유하는 친구의 목소리로 들린다. 지금 94세인 우리 시엄마 또래이니, 아주 옛날 사람이 아님을 확인한다. 시인은 마흔여섯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미국 사회에 페미니즘 파도가 넘실댈 때였다.


가정 주부란 뭘까? 직업인가, 신분인가, 은유인가? 그 이름으로 불리던 시절 나를 따라다니던 질문이다. 아이들 학교에서 가져온 가정조사서 엄마 직업 난에 '주부'라고 쓰기 싫었다. 사회적 인정도 경력도 수입도 업는 그림자가 자기 목소리를 가진 '작가'이고 싶었다. 앤 엑스턴처럼 나도 전혀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야 했다. 아니, 여자들은 언제나 다른 두 세계를 동시에 살아내야 하지 않았던가.


시 '가정 주부'가 포착한 여자의 현실을 보라. 불편해서 도망하고 싶다. '스위트홈'이 된 '주부'라는 삶, 모두의 것 공유재가 되었으나 스스로는 하찮게 여겨지는 인간, 집 말곤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진 삶이 된다. 자기 비하가 익숙해진다. 다른 여자들도 서로를 하찮게 바라본다. 남자에게 여자는 집이요 엄마다. 남자의 폭력과 지배를 받아 견뎌야 하는 집, 집에 갇힌 존재가 된다.


세상은 그런 여자의 삶을 '사랑'이라 하고 '헌신'이라 한다. 그 끝은 무엇인가. 여자의 사랑은 집과 가족을 위한 것일 수는 있어도 자신에게 향하는 것은 아니다. 여자는 자기 파괴적이 된다. 하찮고 쓸모없고 모순되고 비열한 자기를 결국 죽이고 만다. 이 아픈 시구들 중 내게 해당되지 않는 건 하나도 없다. 나도 그렇게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없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만 있는, 주부 또는 '사모'라는 이름의 내 삶은 자기 파괴의 죽음을 향하고 있었다. 12년 전 나를 덮친 암이 나를 깨워주었다.


남자가 쓴 시가 공허한 이유

앤 엑스턴을 읽는데 왜 한 남성 시인이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칼릴 지브란(1883~1931)이다. 그가 결혼에 대해 쓴 유명한 시 때문이겠다. 한 때 그의 시 제목처럼 그를 지혜의 목소리요 <예언자>로 읽은 적이 있었건만, 이제는 전혀 다르게 읽힌다. 이건 뭐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결혼을 이야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시구다. 여성이 겪어내는 결혼과 달라도 너무 다른 소리 아닌가. "잘 나셨어요. 그렇게 살 수 있었나 봅니다 그려!" 뻐큐를 날리고 싶은 심정이다. 칼릴 지브란에게 물어보라. 그의 집은 누가 스위트홈으로 만들었는지, 그의 밥상은 누가 차리고 아이들은 누가 돌보고 빨래는 누가 했느냐고. 부잣집이었으면 종들이 했겠지. 그러니 함께 있되 서로 떨어져 거리를 두라는 한가한 소리를 했을 것이다. 결혼이 만드는 구질구질한 일상에서 거리를 두고 글을 쓰고 사색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칼릴의 부인도 그렇게 거리를 둘 권리와 자유가 있었을까?


이다지도 여남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칼릴 지브란은 앤 엑스턴보다 한 세대 먼저 태어나 살던 남자였다. 그런데 놀라워라. 한 세대 나중 태어난 앤은 여전히 집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삶을 이야기하는데, 칼릴은 자유로운 관계를 노래했다. 남성으로 산다는 것, 남성으로서 보는 세상이 여성의 그것들과는 그렇게나 달랐기 때문이다.


남성 칼릴에게 결혼이란 고상한 뜬구름 세상일 수 있었다. 여자에겐 지리멸렬하고 답답하고 자기 파괴적인 집이 말이다. 칼릴이 <예언자>를 스물한 살에 썼다니, 설마, 그 어린 청년이 인생을 다 알고 썼으랴. 겪지 않아서 더 고상한 노래를 할 수 있었을 게다. 목소리도 없이 떠날 자유도 없이 갇힌 집이 된 여성의 삶을 알기엔 아직 너무 어렸으리라. 하기사 나이 먹고도 모르는 남성이 얼마나 많은가.


이해한다. 사랑받되 사랑에 속박당하지 않을 자유, 이건 남자라는 특권이다. 남자는 여자와 함께 있되 거리를 둘 수 있었다. 독립된 인간이니까. 그 시대 결혼은 정상 인간 남자와 그의 삶을 채워줄 여자가 하는 거였다. 결혼해도 남자는 집을 떠날 수도 있었고 거리를 둘 수도 있었다. 돌아가면 집은 늘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집이 된 여자에게도 그게 가능했을까? 남자가 쓴 시가 공허한 이유다.


내게 결혼은 베이스캠프

결혼에 관한 정의 중에 스캇 팩의 '베이스캠프'를 좋아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그는 결혼 생활을 베이스캠프에 비유했다. 짝을 이뤄 살고자 하는 두 사람의 인생 여정을 높은 산에 오르는 등반에 비유한다면, 결혼은 힘을 얻고 휴식하고 재충전하는 베이스캠프라는 의미이다. 36년 살아 보니, 결혼은 과연 결코 최종 목적지도 산의 정상도 아니었다. 아직 가야 할 내 여정을 돕는 베이스캠프였다.


베이스캠프가 잘 구축되었다면 파트너는 사랑과 성숙을 향한 여정을 지속할 수 있다. 인간은 독립적인 존재이지만 또한 어울리고 함께 사는 존재이기도 하다. 왜 굳이 사람들은 혼자가 아닌 둘의 삶을 택할까? 36년 전엔 아무것도 모르고 했지만, 살면서 점점 베이스캠프의 중요성을 알게 됐다. 나란 인간이 자로서 삶을 완주할 때까지, 그리고 따로 또 같이 파트너와 서로 지지하는, 결혼은 베이스캠프였다.


결혼도 가정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것도 살아보며 알게 되었다. 교회도 단체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구성원 개개인이, 따로 또 함께, 완등할 수 있게 지지하는 베이스캠프, 얼마나 좋은가. 가정 그 자체로 목적인양, 숭고한 최고의 가치인양, 지키려고만 애썼을 땐 그걸 볼 수 없었다. 내가 지키려 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술하고 모순 투성이며 자기 파괴적인지, 너덜너덜한 천막은 허물어버리고 다시 구축해야 했다.


우리 계속 끝까지 완등하고 싶은 거야?

우린 어떤 베이스캠프를 원하지?

이대로 괜찮을까?

지금 베이스캠프에서 손보고 보수해야 하는 건 뭘까?

36년 살았지만 숙덕에게 결혼은 계속 다시 질문하는 싸움의 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