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자가 한다

복싱에도 삶에도 싸움의 때가 있고 이완의 때가 있다

by 꿀벌 김화숙

"상대한테서 눈을 떼면 안 돼죠."

"몸이 자꾸 흔들렸어요."

“가드 올려요! 동작 후에 바로 몸 중심을 잡아야죠!"”


오늘 복싱 개인지도를 받으며 수없이 반복해 들은 말이다. 코칭에 따라 나는 걸음마를 배우는 어린아이가 된다. 수없이 반복해 고개를 들어 상대를 째려보고, 가드를 올리고 몸의 중심을 잡는다. 몸의 중심이 흐트러지지 않고도 주먹을 뻗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주먹을 뻗되 잽싸게 치고 돌아오는 건 왜 이리 어려운지. 아기가 한 걸음 떼고 넘어지도 다시 일어나 한 걸음 떼듯 나는 반복 또 반복한다.


몸에 힘이 들어가니 가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다. 이런 허접한 복싱으로 나는 누군가를 이기는 것은 고사하고 내 몸을 지키는 것도 꿈꾸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한 술 밥에 배부르랴.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다. 64년을 몸 싸움이라곤 모르던 사람이었음을 잊지 말자. 어찌 단번에 잘 싸우길 바라는가. 생존의 가드를 올리는 거야, 나를 지키는 가드를 올리는 거야, 처맞지 않으려면 가드를 올리는 거야. 췌면을 건다.


"좋아요! 배움이 아주 빨라요."

"이제 선수 하시죠. 계약서 씁시다!"


잠시 숨 돌리는 짬에 관장은 나를 이렇게 격려하며 놀린다. 나는 이제 그의 칭찬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고 씩 웃으며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다. 라이트 훅 레프트 훅을 연속으로 날리며 슉 슉 숨을 내뱉는다.




한때 세계 챔피언이었던 루시아 라이커(Lucia Rijker)도 그랬을지 모른다. 킥복싱 선수에서 여성 복서가 된 '더치 디스트로이어(The Dutch Destroyer)', '레이디 타이슨'이라 불린 무패 신화의 주인공이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서 매기의 상대 복서, '블루 베어(Billie "The Blue Bear" Osterman)' 역을 연기한 배우이자, 화면 밖에선 매기의 복싱 트레이닝 전담 코치요 지도자였다.


루시아는 여러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자, 지금은 LA에서 코치요 동기부여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여자' 복서였던 루시아는 어떻게 전혀 다른 길을 가게 됐을까? 무패 행진의 한 경기에서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루시아가 KO 시킨 상대 선수가 이틀 동안 혼수상태에 빠지는 일이 있었다. 그 선수는 가난한 '싱글맘'이었다. 루시아는 상대를 죽도록 때려눕히는 싸움에 회의를 품게 되고 다른 싸움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주먹이 아닌 사람의 마음과 영혼을 다스리는 싸움을 돕게 되었다.


"내가 이기기 위해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망가뜨려도 되는가?"

무패의 복서 루시아가 부딫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싸움의 기술을 연마하는 사람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이겠다. 복싱 배우면서 사람들에게 비슷한 말을 들은 걸 기억한다. "도대체 누구를 때려 눕히고 싶어서 복싱까지?" 또는 "아이고 무서운 여자." 그런가? 내 마음은 질문한다. 체육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아직 누군가에겐 '한 주먹 싸움도 못 될' 아줌마다. 자세도 잘 안 나오고 펀치력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분명 싸움 잘 하고 싶고 좋은 싸움을 하고 싶다.




네트워크형 운동


내가 활동가요 작가로서 지향하는 싸움엔 '네트워크형 운동'이 있다. 일본의 페미니스트 작가 우에노 지즈코가 불혹의 페미니즘에 소개한 건데, 그의 지난 40여년 페미니즘 운동 경험을 정리한 거라 할 수 있다. 나도 지난 10년 여 여러 개 페미니즘 토론 모임을 진행하며, 글쓰기와 연대활동하며 배운 거라 말할 수 있다.


일본의 반체제운동 중에 1960년대에 확산되었던 베헤이렌('베트남에 평화를! 시민현합'의 일본어 약칭) 운동이 있다. 반체제운동이란 게 시작 때는 대안적인 거 같다가 시간이 흐르면 어느덧 수직적인 관료 조직이 되고, 어느덧 타도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여자들의 운동은 수직적인 조직을 싫어하고 수평적인 '평지' 집단 만들기를 지향했는데, 이를 네트워크형이라 이름하게 됐다.


네트워크형 운동은 1959년의 미이케 투쟁(1959년에 미쓰이 미이케 탄광에서 발생한 노동 분쟁)에서 사회운동가 다니가와 간이 조직한 '다이쇼행동대'의 행동 원칙에 기반하는데, 그 행동 3원칙은 다음과 같다.


1) 하고 싶은 자가 한다. 하고 싶지 않은 자는 하지 않는다.

2) 하고 싶은 자는, 하고 싶지 않은 자를 강제하지 않는다.

3) 하고 싶지 않은 자는, 하고 싶은 자를 방해하지 않는다.


집단의 경계는 불명확하고 강제력도 없고 멤버십도 없었다. 누구나 베헤이렌이 될 수 있고, 행동 책임은 개인이 지며, 개인의 자율성은 최대한 존중되었다. 단체의 정체성이이 따로 없으니 누군가의 일에 '단체'가 책임을 지지도 않았다. 반대로 단체의 이름으로 제명, 통제 등 개인을 억압하는 일도 없었다. 사상이나 이념을 묻지 않고 행동에 공감하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는, 건강한 실용주의. 여성 운동도 권위와 조직에 의지하지 않는 풀뿌리 운동으로서, 이 네트워크형 운동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여자들이 권위주의와 조직의 억압에 훨씬 더 민감하기 때문이겠다.


돌아보면 나도 살면서 '조직의 쓴맛'을 좀 보았다.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권위주의적 리더십, 평등의 경험이 없으니 늘 누군가를 정점으로 수직적인 질서가 있는 조직문화. 여성은 너무나 당연하게 2등 시민이 돼야하는 성차별적 문화. 규칙보다 사람. 형식보다 내용. 이런 자유로운 모임에 나는 목말랐다.


자연스럽게 내가 만들거나 진행하는 모임은 네트워크형 운동을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 특징은 민주주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 지금 여기에서의 해방, 동질성보다 이질성, 자발성과 창의성, 정보 집중을 피하고, 역할은 분담하고 재미있어야 하고 친구이면서 친구를 넘어 고락을 함께 하는 연대....


우에노 지즈코에 따르면, 여자는 이데올로기나 이념으로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나 이념에 약한 지식인을 제외하면, 여자나 대중은 대부분 자신과 자신의 생활 외에는 흥미가 없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다, 내 삶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나를 표현하고 싶다, 네트워크는 결국 인간관계고, 인간관계는 모든 자원을 소진한 뒤에 남는 최후의 자원, 고갈되지 않는 자원이다. '관계'를 만들어가는 게 여자의 운동이다. 내가 싸우며 만들어가고 싶은 게 바로 이런 거렸다.


"단, '관계'를 만드는 능력은 학습이 가능하다. 배움에 너무 늦은 때란 없다. 여자들은 고립된 곳에서 어렵게 벗어나 이 '관계'라는 자원 만들기를 운동 안에서 서로 배웠다. 여자의 운동이 지닌 성장하는 힘, 그것이야말로 가장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닐까." (21-26쪽)





새로운 운동론을 이야기하자니, 내가 발붙이고 사는 지금 여기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내가 속한 여성단체들은 올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여성은 도대체 어떤 새로운 삶을 원하는가? 3.8세계여성의 날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선언문이 일상을 대신할 수 없지만, 선언문은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아무렴, 일상으로 행동하겠다는 방향이자 다짐이니까. '2022 울림 선언문'과 '2022 여성노동자회 목표' 그리고 '114주년 세계 여성의 날 기념 제18회 경기여성대회 선언문'을 필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