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싱 장갑 끼기 전에 춤부터 배우고 와라

복싱 스텝에서 배우는 이기는 싸움의 기술

by 꿀벌 김화숙

"나는 풋워크를 훌륭한 선수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풋워크에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바실 로마첸코(Vasiliy Lomachenko)


복싱 체육관 두 달로 접어드니 풋워크(footwork, 발놀림 기술)가 예술이다. 주먹과 팔뚝힘으로 치고받는 운동인 줄 알았는데 복싱은 발로 하는 운동이었다. 책도 보고 관련 영상도 찾아보다가 세계적인 복서 바실 로마첸코란 이름도 알게 됐다. 그가 한 말인즉, 풋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든 것의 시작이란다.


첫 한 달간 '앞뒤로 폴짝폴짝 뛰는 스텝'으로만 놀 때도 어려웠지만 점점 스텝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발놀림이 장난 아니다. 주먹을, 정지 상태가 아닌, 전진 스텝, 후진 스텝, 사이드 스텝을 구사하며 호습하며 날려야 한다.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걸음마하는 아기를 상상하면 된다. 첫걸음을 뗐다고 바로 방향을 바꾸고 이리저리 다니는 아기가 있던가? 내게 지금 복싱 풋워크가 딱 그렇다.


지도자의 시범을 따라 하고 또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관장은 나더러 왕초보 병아리 복서는 면했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땐 병아리 중의 병아리다. 스텝 하나 호흡 하나 펀치 하나 동시에 하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의 반대 발에 힘을 주고,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의 발이 먼저 지면에서 떨어진 후, 힘줬던 발을 뒤따라오게 하는 것. 이런 단계를 누가 일일이 생각하고 하겠는가. 단숨에, 호흡을 뱉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당겨오고 다시 반대쪽으로 되돌아와야 한다. 발놀림이 모든 것의 시작인 거다.


발이 쉼 없이 좌우로 앞뒤로 움직여 줘야 주먹을 날리든지 피하든지 할 것 아닌가. 체력 소모도 많다. 링 위에서 지도자와 함께 하고 내려와 샌드백을 치며 혼자 몇 라운드 했다. 한 라운드 공이 울릴 때까지 계속 발을 움직이는 건 꿈도 못 꾼다. 몇 번을 숨을 돌리며 해도 3분이 길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마에 두른 머리띠가 축축하고 등에도 땀이 젖어들었다. 다시 스텝을 밟고 쨉쨉 훅!


바실 로마첸코는 더 매트릭스(The Matrix), 하이테크(Hi-Tech)로 불릴 정도로 발재간이 뛰어난 복서였다. 아마추어 시절 397전 396승 1패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다. 올림픽 금메달을 두 번이나 땄고 프로 전향 후에도 최단기간 3 체급 석권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의 뒤에는 아버지이자 코치인 아나톨리 로마첸코가 있었다. 아버지는 복싱을 배우고 싶다는 어린 아들에게 이런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복싱 장갑 끼기 전에 춤부터 배우고 와라."


놀랍지 않은가. 춤 따위가 격투기와 무슨 상관이냐 싶겠지만, 나는 바로 알아 듣는다. 춤, 몸으로 하는 최고의 언어이고 예술 아닌가. 무용가 마사 그레이엄도 그랬다. "몸은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라고. 내 책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에 영감을 준 말이고 춤이다. 춤을 추라, 그러면 살리라. 두말하면 잔소리다.


로마첸코는 아버지의 조언대로 어린 시절 4년 동안 우크라이나 전통 춤(호팍Hopak)을 배웠다. 호팍은 전투에서 승리한 후 기쁨을 나누거나, 무술 훈련의 일환으로 추던 춤인데, 무술 대련하듯 격렬하고 힘이 넘치게 많이 뛰는 춤이다. 호팍 춤으로 그의 몸은 리듬감, 균형 감각, 그리고 현란한 스텝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상대방의 주먹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로 몸을 잽싸게 옮겨 그는 상대방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유효타를 날리는 묘기를 부렸다. 그의 복싱은 싸움이 아니라 '상대방을 압도하는 춤'이었던 셈이다.


복싱 글러브를 끼기 전에 춤부터 배우고 오라. 내게 적용해 본다. 일상에서 춤을 추라. 뭘 하든 춤을 추라. 살면서 춤을 춰서 나쁜 일 한번도 못 봤다. 춤, 한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 없지만, 잘 추는 춤 하나 없지만, 나는 춤을 좋아한다. 다행히 내 몸이 춤에 반응할 줄 안다. 춤은 나를 자유롭게 한다. 복싱을 배운다고 매일 헥헥대지만, 내 몸엔 춤이 있다는 걸 기억하자. 뻣뻣한 몸 무거운 몸으로 날리는 펀치보다 춤이 먼저란다.


체육관 6주 차 수요일인 오늘도 내 복싱 동작은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복싱 스텝이라 쓰고 허수아비 춤이라 읽는다. 그러면 어떤가. 아기가 걸음마 떼고 하루 아침에 달리랴. 한 스텝 한 스텝 즐거웠다. 발을 움직이고 팔을 뻗으며 땀 흘리고 훅! 호흡을 뱉어냈다. 복싱으로 내 안의 춤이 더 살아날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신나게 춤을 추리라. 이기는 싸움의 기술, 격투기보다 먼저 춤을 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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