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타 3피 짧은 여행

마산 산호리 지하련 작가가 살았던 집 앞에 서서

by 꿀벌 김화숙

260131. 금. 마산은 바람불고흐림. 5/-4


이 집은 소설가 지하련(본명 이숙희, 1912-?)의 친정 형제들이 1930년경 지은 주택으로 그의 자전 소설『체향초』에 '산호리 주택'으로 나온다. 1938년 2월 남편 임화와 함께 상경한 지하련은 결핵으로 1940년 5월 다시 마산으로 내려와 여기서 요양을 하였다. 1943년 11월까지 3년 6개월간 이곳에 머물면서『결별』, 『체향초』,『가을』,『산길』을 썼다.- 마산역사문화유산보전회


마산시 합포북 13길 41-1, 산 아래 쓰러질 듯 낡은 주택 앞에 서서 인증사진 한 장 남겼다. 벽돌 담벼락에 '지하련의 산호리 주택'이라는 짧은 안내문을 읽고 그대로 옮겨 적어 보았다. 창동 예술촌 골목엔 남성 작가들만 보여서 여성 작가 관련 공간을 걸어걸어 찾아간 거였다. 딸이 찾아준 덕이었다.


폐허의 집 앞에 한참 머물다 돌아서니 질문이 꼬리를 물고 따라왔다. 왜 안내판 제목을 저렇게 썼을까. 한국인의 정서 상 어떤 인물을 소개하는 글 제목에 존칭 하나 없이 이름만 달랑 쓰는 경우 말이다. 흔하지 않다. 오늘 걸으며 본 것들 예로 보여주겠다. "창동 허새비 이선관 시인", "허당 명도석 애국지사" 이런 식이었다. 그런데 왜 '지하련 작가의 산호리 주택'이라 제목하지 않고 '지하련의 산호리 주택'이라고만 했을까.

그것만이 아니다. 언급된 4 작품 중에 내가 읽은『도정』이 빠져 있어 아쉬웠다. 지하련 하면『도정』아닌가? 순전히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그가 사회주의자요 사회주의 작품으로 분류돼서 그런 거 아닌지 의심된다. 이 대단한 여성 작가가 만약 남성이고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더라도 남한 사회에서 이토록 안 알려지고 소개글이 성의 없고 살았던 집이 폐허로 방치돼 있을까?


해방공간에서 지하련 만한 선구적인 여성 작가가 있었던가? 안산 돌아가면 『도정』과 지하련을 다시 읽으리라. 오늘 마산을 돌아다니며 본 작가도 역사 인물도 남성이 압도적 다수였다. 새삼스럽다. 심지어 거리에 펄럭이는 홍보물도 죄다 남성 일색이었다. 헐~ 그래서 내가, 나라도, 여성 작가 지하련이란 이름을 부르고 위풍당당 글로 남기지 않을 수 없다.

아참, 마산엔 1타 3피 짧은 여행으로 왔다.


작년 11월부터 3개월 돌봄 당번을 끝내고 덕이 시엄마를 창원에 모셔드릴 일정에 내일 있을 416 합창단 부산 공연 일정과 겹쳤다. 부산 공연에 참여하기 위해 숙덕은 공연 하루 전날 마산으로 오되 딸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계획했다. 시험 끝난 딸과 짧은 여행할 기회로 말이다. 덕은 시엄마와 창원으로 가고 오후를 모녀만 마산 바다도 보고 창동 예술촌 골목과 여기저기 좀 걷고 지방 음식인 박고지김밥도 맛보았다.


호텔에서 모녀 1박 하며 글을 쓴다. 내일 아침에 덕이 시엄마와 바이바이하고 차로 와서 셋이 함께 부산으로 간다. 숙덕이 합창단 리허설할 오후 동안 딸은 혼자 부산을 구경하고 오후 5시 공연장으로 온다. 416 합창단의 순회 기획공연 부산 편, 딸은 객석에서 보고 엄빠는 무대에 선다. 끝나면 셋이 차로 밤늦게 서울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