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평범해서 볼품없는 집밥 비건식 점심 한 상
260214. 토. 흐림. 12/3
모처럼 내가 요리해서 막내랑 집밥 비건식 점심을 먹었다. 오래간만이라 함은 내가 글 쓴답시고 밥 하는 날이 별로 없는 요즘이라서다. 명절 쇤다고 어제 장을 봐둔 덕분에 뚝딱뚝딱할 수 있었다. 9단 주부답게 냉장고에 남은 음식은 비워 먹고, 먼저 사 둔 식재료 중에 선입선출로 요리해 명절 준비 살짝 했다.
비건식 토요일 점심 밥상 맛 좀 보시려오?
뭐라고요? 비건식은 맛이 없을 거 같다고라고라고라?
그럴 리가! 우째 그런 편견을 갖게 되었을까요? 비건식이란, 동물성 재료를 하나도 안 쓴 순수 채식이란 말. 어떤 동물도 괴롭히지 않고 죽이지 않고 해 먹는 음식이니 얼마나 평화로운 식사냐고요. 재료 본연의 맛, 몸과 마음의 건강에 환경까지 평화롭게 하는 게 비건식이니, 일타삼피로 좋은 비건식이란 말씀이다.
오늘 해 먹은 음식을 살짝 보자면. 아, 너무 평범해서 볼품없는 집밥 비건 식단이다.
1. 밥: 현미쌀 2컵, 보리쌀 2/3컵, 녹두 1/3컵. 구수한 잡곡현미밥 한 공기씩.
2. 콩가루 묻힌 냉이뭇국: 다시마 조각 부숴 넣고 표고버섯 3개 썰고, 무 한 통 얇은 깍둑썰기, 양파 1개 잘게 썰어 넣고 푹푹 끓였다. 5천 원 주고 사 둔 냉이를 다듬고 씻어 된장찌개 용으로 한 움큼 남겨 냉동하고, 나머지 쪼개고 썰어 물기 털고 콩가루에 버무려 끓는 국에 넣었다. 된장 한 숟갈과 소금과 다진 마늘로 심심하게 간했다. 냉이향과 시원한 무맛의 환상 조합. 내가 사랑하는 국이다.
3. 쇠미역 초장 생채: 씻어 놓은 쇠미역을 먹기 좋게 썰고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4. 우엉톳두부조림: 채 썰어 파는 우엉 한 봉지를 먹기 좋게 자르고, 생톳도 잘게 썰어, 마늘 소금 간으로 물에 끓였다. 익을 때 두부 한모 물기 빼고 으깨 넣고, 소금 간, 강황가루 살짝 뿌리고 올리브유 좀 넣어 버무렸다. 양을 많이 해서 통에 담아 두었다. 설에 식구들 모일 때 유일한 밑반찬이랄까.
5. 채소잡채: 팬에 물 조금 넣고 채썬 당근과 부추 넣고 한 소끔 끓을 때 냉장고에 식은 채식 잡채 넣어 뒤적여주었다. 거기다 석이표 매콤 가지볶음 남은걸 투척해 섞었다.
6. 배추김치: 안양 사돈이 준 배추김치가 이제 바닥이 보인다. 명절엔 내가 담가둔 김치를 먹어야겠다.
오후 약속 있어 나갔다 오니 저녁에 다시 배가 촐촐해졌다. 막내는 약속 있다고 안 먹고 나 혼자 저녁을 먹었다. 뭘 먹었냐고? 남은 잡채 한 접시, 콩가루 묻힌 냉이뭇국 한 사발, 식초 뿌린 작은 토마토 2개, 그리고 파주에서 사 온 막걸리 마지막 한 병. 뭐니 뭐니 해도 막걸리 맛 쥐기는 저녁이었다. 아무런 첨가물 없이 누룩으로만 빚은 전통 쌀막걸리 한 병을 나 혼자 차지하니, 두 잔 마실 수 있었다!
흐흐흐 아무래도 또 주문할 예감이다. 아, 근디, 비건식은 맛이 없을 거라고라고라? 아니랑께요!
너무 위풍당당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