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260217. 화. 맑음. 5/0
2026년 설날 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가고 밤이 깊어가고 있다. 특별한 설날이었다.
1. 65년 평생 내 의지에 반하지 않게 보낸 첫 설이었다. 내게 명절은 늘 내 맘에 안 드는데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관습 같은 거였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년이 되도록 '시집 부엌'에서 보내는 명절이었고, 내가 먹고 싶지도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 시엄마 뜻을 따라 해야 했고, 내가 좋아하는 놀이도 쉼도 없는 명절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장거리 귀성길도 귀경길도 없었다. 시집 중심 만남도 차례도 없었다. 대신 안산 우리집에서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자유로운 설을 보냈다.
서울과 안산에 떨어져서 지내던 덕과 딸 지야는 일요일 저녁에 안산으로 왔고 오늘 큰아들 훈이와 큰며느리 민이, 그리고 막내 석이의 짝꿍 희야가 와서 일곱식구로 함께 했다. 순 채식으로 준비한 현미떡국, 채소잡채, 생채소들, 그리고 희야네서 가지고 온 익나물과 인삼튀김에 홍어회등이 더해져 푸짐한 점심을 먹었다. 석이가 준비한 맛난 와인과 전통주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서로 새해 인사를 했다. 식사 후엔 일곱 식구가 3팀으로 나눠 윷놀이를 해서 진 팀이 설거지하기로 했다. 나랑 희야가 졌는데 설거지는 덕이와 석이 부자가 했다.
2. 설날 아침에 이프 단톡방에 부고가 하나 올라왔다. 함께 페미니즘 토론하고 글쓰기 하던 벗이 57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생로병사 희로애락 인생사는 명절이라도 예외가 없었다. 아이들이 다 오기 전, 오전 중에 조문을 다녀와야 했다. 화사하게 웃는 고인의 영정 사진을 보니 눈물이 났다. 삶은 어찌나 짧은지, 57년이란 어찌나 눈 깜짝할 사이인지, 야속하기 그지없는 생이었다. 암수술 후에 항암이 듣지 않았다고 한다. 면역력이 떨어져 비싼 면역항암제를 써도 소용없었다고 한다. 아, 좀 더 자주 안부를 물을 걸, 너무 미안하고 아쉬워 눈물이 났다. 이제 막 임용고시 합격한 딸이 25세, 며칠 전 군대에서 제대한 아들이 23세였다. "생로병사 길벗이여 고생했어. 고마웠어. 잘 가~ " 평소엔 서서 묵상으로만 조의를 표했는데, 이번엔 큰절로 작별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아픔 없는 곳에서 우리 다시 만나~~
3. 온 식구 모였을 때 내 생일 축하도 며칠 앞당겨했다. 2월 21일이 내 생일이지만 이렇게 다시 모이기 쉽겠는가. 아이들이 케이크 사고 샴페인 사서 65라는 숫자 양초까지 꽂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만 64세, 생일이 일러서 이제 65세도 맞다. 곧 대한민국 공식 노인인구에 들어가는 생일이다. "사랑하는 화숙이 생일 축하합니다!" 축하의 덕담도 식구들한테 한 마디씩 다 들었다. "쓰고 있는 책이 대박나라." "성공한 작가로 유산 물려주라." "제3의 인생으로!" "나답게 멋진 노년 살아" 등등 축하의 말을 듣고 나도 감사의 말로 화답했다. 하루 동안 생로병사 희로애락 위풍당당 다 살아낸 2026 설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