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식당 찾아 삼만리

64회 생일날 점심 먹은 비건식당이 내년까지만 한다네

by 꿀벌 김화숙

260221. 토. 맑음 공기 나쁨 18/4


64번째 내 생일날, 숙덕부부는 함께 서울 서촌을 걷고 한식 비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덕이 기획하고 숙을 초대한. 이름하여 생일 축하 데이트였다.


식당은 옛 한옥을 그대로 유지한 집이었다. 솟을대문을 들어가니 뜰 한편에 옹기종기 장독대와 거기 나란히 햇볕을 쬐고 있는 매주 덩어리가 참 보기 좋았다. 식사하는 공간이 한옥 집안안이지만 신발을 안 벗고 들어가게 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장 맘에 드는 건 역시 음식이었다. 내가 추구하는 정신과 방식 그대로, 사찰 음식이양 맑고 순한 한식 자연식 비건식이었다.


식당 이름: 몸과 마음을 조화시키는, 건강을 위한 자연식, "마지(摩旨)"

비건 점심 밥상: 런치 디너 세트, 1인분 23,000원.

묽은 호박죽, 연잎밥, 된장국, 배추김치, 땅콩견과조림, 시금치무침, 무조림, 우엉잡채, 김치전, 표고탕수, 양상추, 대추등으로 은은하게 끓인 차

반주: 코나에일 355ml 1병 8,000원.


상호로 쓴 '마지(摩旨)'란 불교에서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물(밥)을 뜻한다. 절밥 좋아하는 사람들이라 상호도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밥이란 단순히 배를 채우는 물질도 아니고 허겁지겁 차려내는 노동만도 아닌, 수행의 연장선으로 본다. 정성을 다하는 의식으로 고객을 받들어 모시는 행위로 밥상을 차리겠다는 뜻으로 이런 상호를 지었을 것이다. 다행히 이름에 어울리는 충분히 건강한 자연식이었다.


모처럼 맘에 드는 한식 비건식을 먹을 수 있었다. 한식집이 이젠 죄다 육식 중심이라, 사찰음식을 닮은 이런 비건식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로 귀한 세상이 되었다. 이번엔 "비건식당 찾아 삼만리" 중에서도 아주 평화롭게 잘 먹은 경우였다. 안산에도 비건식 전문 식당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주 우리 막내 상견례 때도 안산 사는 양가가 모두 서울까지 이동해 비건식당에서 만나야 했으니, 더 말을 말자.


오늘 먹은 음식 중에 가장 맘에 드는 게 뭐였냐고? 모두 다 좋았다. 엄밀히 말해 낯설거나 내게 새로운 음식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평소 지향하는 방식으로, 내가 한 듯 단순한 양념으로 된 음식들이었다. 아마도 가장 인상적인 건, 아무런 소스 없이 적당히 썬 양상추였다. 나도 평소 생채소를 그냥 잘 씹어 먹기에 반갑게 먹었다.


아, 안타깝게도 비건식당 마지는 2027년까지만 영업을 한단다. 토종콩 수급 문제다. 국산콩도 귀한데 그중에도 토종콩으로 매주 쑤고 장을 직접 담가 쓰는데, 기후위기란다. 토종콩이 점점 귀해서 담가 둔 장 떨어지면 식당은 폐업이란다. 안타까워서 장독대 앞에 걸음을 멈추고 한참 더 바라보게 됐다.


아, 내가 20년만 젊었으면, 돈 안 되는 작가 말고 자연식 비건 식당 도전하는 건데. 나처럼 비건식당 찾아 삼만리, 밖에서 밥 먹기 어려운 사람들의 사랑방이 돼 주는 건데. 하나마나한 소리를 또 하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