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고 2학년 2반 이혜경의 엄마 유인애 님의『너에게 그리움을 보낸다』
260222. 일. 흐리고 바람. 12/2
오늘 일기 제목을 쓰는 맘이 좀 아프다. 썼다 지웠다 썼다 지웠다 오래 망설이다가 쓰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한 엄마의 시 제목이다. 마침내 딸의 사망신고를 하고 쓴 시다. 이 엄마의 시를 오늘 다시 읽은 건 내일 있을 세월호 기억 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 준비이기도 했고, 오늘 주일 예배 설교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룻기 1장 19절~22절) 여운이기도 하다. 성서에 등장하는 여성 인물 중 가장 큰 슬픔의 주인공 나오미, 모압 땅에 이주해 살다 남편과 아들 둘 다 죽고 빈털터리로 며느리 룻과 고향에 돌아간 여성 노인. 그들에게 세월호가 겹쳐 보여서였다.
"나는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유대인 여성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와서 사람들에게 한 말이다. 쫄딱 망해서 고향에 돌아온 과부. 그의 곁에는 역시 과부인 모압 며느리 룻이 있었다. 그는 '기쁨'이란 뜻의 자기 이름 '나오미'가 자기 인생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듯 이젠 '쓴맛'이란 뜻의 '마라'로 부르라고 했다. 쓰디쓴 인생, 어떤 꾸밈도 위선도 없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는 고백이자 통찰이었다.
마라, 마라탕의 독한 매운맛으로도 읽힌다. 구약성서에서는 '마라의 쓴 물'로 나온다. 너무나 '쓴맛'이라 '달콤한 인생', 나오미에게 삶이 그랬던 셈이다. 우리 엄마도 오빠가 48세로 세상 떠났을 때, 딱 나오미 마라였다. 죽어버리릴 방법을 부단히도 찾던 엄마, 돌아가시고 나니 그 아픔이 조금 더 알 것 같은 이 못난 딸이다. 나오미의 고백에서, 룻에게, 재난 참사 유가족들과 그 곁에 함께하는 시민들이 보인달까.
저마다의 슬픔과 아픔을 가진 채,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눈을 보며 마라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라 인생에 하나님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내가 '별을 품은 사람'으로 4.16합창단원으로 곁에 있고 노래하면서, 하나님을 경험하는 건 아이러니 중에 아이러니겠다.
별이 된 아이를 그리워하며, 시를 쓰며, 마라의 시간을 살아낸 유가족들께 머리 숙인다. 별이 된 단원고 2학년 2반 이혜경의 엄마 유인애 님의 시 두 편을 옮겨 본다. 나오미의 시요 룻의 시로 읽는다.
딸의 사망신고
유인애
'아비의 정',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린다
너무 갑작스러운 비보는 부녀의 장막을 무너뜨리고
오십 평생 와서 한(恨)을 새긴다
'부모'라는 갖고 싶은 두 글자 살며시 덤으로 주더니
이토록 통렬히 찢기는 가슴에 너를 담아
세상과 이별을 고하는구나
내 손으로 너를 지워야 하는 죄책감
하염없이 미안해서
눈물이 손에 쥔 용지를 적신다
진정 이 손이 싫구나
생을 돌고 돌아도 만날 수 없는 인연
만남의 회포를 가져보는 세상이란
꿈에서나 볼 수 있을
그 길
유인애
아비도 걷지 않고
어미도 걷지 않은
길이 하나 있다.
그 길
살아생전
우리에겐 보이지 않던
그 길
어린 꽃잎이 떨어진다.
차디찬 바닷속으로
안간힘의 눈물이
바닷물과 뒤섞이며
사랑하던 예쁜 딸이
기어이 떠나고야 말았던
그 길
돌아서도 되돌아서도
발걸음 옮길 수 없는
그 길
어린 딸이
아비보다도 먼저
어미보다도 먼저
앞서 간 그 길
올바르지 못한 자의
만행 그림자에 가려진
그 길
내 딸 혜경아
너를 먼저 들어서게 해서
미안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