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최태섭의『한국, 남자』를 다시 읽는 소회
260223. 월. 맑음. 7/-7
최태섭의 『한국, 남자』를 8년 만에 다시 읽는다. 처음 나왔을 때 읽고 토론도 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다. 이걸 그 시절 숙덕이 읽었으니 싸움이 안 될 수가 없었겠다. 내가 순진했고 덕은 이해도 안 되면서 이해하는 척했겠다. 책이 나왔을 때가 우리부부가 함께 페미니즘 공부를 한지 겨우 2년 차였다. 내겐 너무 자명한 '귀남이 후남이'를 덕은 자기 문제로 인지하지 못했던 게 또렷이 기억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놀라고 그에게 화냈던 내가 지금 보니 더 놀랍다. 당시 그는 더도덜도 아닌 골수 가부장 한남 귀남이었고 나는 가부장제에 길들여진 후남이였음을 겨우 인지하던 때였는데 말이다.
책 28쪽 한 단락을 옮겨 본다.
"물론 이런 일들의 모든 책임이 귀남이들에게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별적인 구조를 만들어낸 것은 가족의 절대 권력자인 부모와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어린아이들이 쉽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교육을 받고, 이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게 된 시점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자신이 잘못된 시스템으로부터 수혜를 받아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은 방관이나 묵인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가해이기 때문이다."
다시 읽는 내 궁금증은 이거다. 내일 토론에서 덕이 얼마나 자신을 귀남이로 인식하고 고백할지다. 8년 전에 그는 결코 자기는 귀남이가 아니라고 항변하는 사람이었다. 2남 3녀 중에 자기 혼자 대학을 나왔으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한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이미 밀양 시골을 떠나 마산으로 전학 갔고, 진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대학을 마칠 동안, 그의 큰누나는 중졸, 작은누나는 초졸, 그리고 여동생은 실업계 고졸, 남동생도 고졸이었다. 장남이라고 논 팔고 밭 팔아 뒷바라지를 받았는데, 귀남이가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걸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보아줄 수도 없었다. 특권은 누리는 사람에겐 특권이 아니라 당연한 것임을 그가 잘 보여주고 있었다.
"자신이 잘못된 시스템으로부터 수혜를 받아왔다는 것을 인지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대신에,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입을 다물게 하려는 것은 방관이나 묵인을 넘어서는 적극적인 가해이기 때문이다."
내가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이거다. 성차별이 자기 문제가 아니라는 남성의 태도다. 남성중심 문화는 남성에겐 늘 당연한 진리여서 문제 인식이 어렵고, 문제제기하는 사람이 도리어 문제가 된다. 여자는 괴로워도 입을 다물라, 페미니스트들은 잘난척하지 말고 조용하라, 그러면 모두 행복할 것이다. 덕이 딱 그랬다. 아주 긴 세월 그는 내가 제기하는 문제를 귀담아 듣거나 공부하려 하기보단 '화숙이만 침묵하고 고분고분하면 문제가 없는 거'라 믿는 남편이었다. 세상 어떤 부조리도 자기 문제가 아닌 유체이탈. 매사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태도로 가만히 있는 남자였다. 그러니 이런 책을 한번에 이해할 리도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
내일 토론이 기대되고 한편으로 걱정도 된다. 마침 내가 진행자가 아니라서 마구 떠들 기회다. 과거 덕이처럼 자기 문제 아닌양 하는 치들이 있으면 어찌 볼까 걱정이다. 내가 폭주하고 화를 내게 되면 어쩌나 두려울 지경이다. 덕이 8년 전보다야 좀 더 깊이 읽어내겠지, 젊은 남성들이 덕이보다야 설마 빨리 깨닫겠지, 믿고 싶다. 한국 남성 그리고 여성, 가부장제의 수혜자요 부역자들이다. 처절하게 자신을 인식하길, 묵인과 방관, 그리고 작위 부작위의 죄를 부끄럽게 고백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
『한국, 남자』의 서문과 결문에 반복해 나오는 질문이 가장 맘에 든다. 위풍당당 내일 질문하리라.
한국, 남자, 그리고 여자는,
"누군가를 억압하지 않으면서도 한 사람의 주체로, 또 타인과 연대하고 돌보는 자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