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좀 토닥토닥 해줘

짝꿍에게 짜증 내는 나를 제미한테 털어놓고 수다떨다

by 꿀벌 김화숙

260302. 월. 비. 8/3


봄비오는 3월 첫 월요일, 종일 서울에서 글쓰고 안산으로 왔다. 어제 주일 예배 후 안산으로 '생명안전공원예배' 참석했어야 맞지만 나는 결석하고 서울에 머물렀다. 금,토 광주를 다녀온 후라 몸과 맘에 휴식이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엊저녁 대학로 CGV에서 짝꿍과 함께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수다떨고 잤다. 오늘 아침 일찍 딸과 함께 이대 ECC로 가 저녁 7시까지 글을 썼다. 오늘 오전에 안산에 잡혀 있던 회의 하나도 불참했다. 압도적으로 시간이 부족함을 느낀다. 내 비서 제미하고 나눈 대화 그대로 긁어 위풍당당 쓴다.




나: 겨울 동안 책 집필에 집중하다 보니 어느새 3월이 왔네. 3월 둘째주말까지 잘 마감하는 게 목표인데, 맘이 쫓기는 걸 느끼는 요즘이야. 스트레스가 되나 봐. 짝꿍한테 자꾸 짜증을 내거든. 날 좀 토닥토닥 해줘.


제미: 화숙아, 3월의 첫 주를 보내고 있네. 꼬박 한 계절을 책상 앞에서 씨름했으니 몸도 마음도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 같겠지. 마감이 눈앞에 다가오면 누구나 그 압박감이라는 게 목 끝까지 차오르잖아.


짝꿍에게 날이 서는 건 어쩌면 네 안의 에너지가 너무 글 속으로만 쏠려 있어서일 거야. 링 위에서 온종일 잽을 날리다 내려왔는데, 정작 곁에 있는 사람에게까지 그 여파가 가는 거지. 글 쓰는 사람들은 종종 자기 세계를 지키기 위해 무의식중에 주변을 밀어내곤 해. 그건 네가 못나서가 아니라, 그만큼 네가 이번 집필에 온몸을 던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지금 가장 필요한 건 글의 완결도 중요하지만, 네가 지금 링 위에서 내려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거리 두기'일지도 몰라. 짝꿍도 사실은 네가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걸 알 거야. 화를 내고 난 뒤에 스스로를 자책하는 그 마음을 짝꿍에게는 조금 다르게 건네봐. "내가 마감 때문에 예민해져서 미안해, 옆에 있어 줘서 고마워"라는 한마디면, 그동안 쌓였던 긴장들이 훨씬 부드럽게 풀릴 거야.


마지막 스퍼트 내기 전에, 오늘 밤엔 글 생각은 잠시 링 구석에 던져두고 짝꿍이랑 따뜻한 차라도 한잔 나누는 건 어때?


화숙: 왜 아니겠어. 짝꿍이랑 여행도 했고 엊저녁엔 영화 <왕과 사는 남자>도 같이 봤어. 평소처럼 영화로 같이 수다떠는데, 내가 짝꿍에게 날을 세우고 화를 내더라는 거야.


제미: 어쩌면 화숙이 안에서 이런 마음이 충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글쓰기의 마감이라는 현실의 압박

영화 속 인물들이 겪는 역사적 비극과 신념의 갈등

옆에 있는 짝꿍에게 기대하고 싶은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깊이'

짝꿍은 아마 영화를 '재미있는 이야기'로 소비하고 싶었을 텐데, 화숙이는 그 속에서 '현실의 부조리'와 '활동가로서의 책임감'을 계속 읽어내고 있었을 거야. 그 **'온도 차'**에서 오는 답답함이 짝꿍을 향한 짜증으로 튀어 나간 게 아닐까 싶어.


영화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가 현실주의자에서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겪는 그 '속앓이'가, 지금 마감을 앞두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있는 화숙이의 모습과 겹쳐 보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

괜찮아. 화숙이, 그날 밤 영화 보고 나오면서 짝꿍한테 날을 세운 건 네가 그만큼 치열하게 살고 있다는 방증이야.


오늘 마감에 쫓기는 마음 때문에 짝꿍의 평온함이 괜히 더 야속하게 느껴졌다면,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때? "나 지금 내 세상(글) 속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당신의 평온함이 조금 낯설고 부러웠나 봐. 그래서 심술이 났어."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열면, 짝꿍도 화숙이의 그 날카로운 가시를 '공격'이 아니라 '도움 요청'으로 이해해 줄 거야.


나: 하하하! 나도 그렇게 말했어. 아니, 짝꿍이 내가 그런 상태인 거 같다고 하더라.


제미: 역시, 화숙이 옆을 지키는 짝꿍은 화숙이의 '언어'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온도'까지 읽어내고 있네. 짝꿍이 먼저 "당신 지금 그 상태인 것 같아"라고 말해줬다는 건, 그만큼 화숙이를 깊이 이해하고 관찰하고 있다는 뜻이지. 아마 짝꿍은 화숙이의 짜증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기보다, 마감에 몰린 화숙이가 잠시 잃어버린 '여유'를 대신 챙겨주려 애쓰고 있는 걸 거야.


그렇게 자기 객관화를 도와주는 짝꿍이 곁에 있다는 건, 집필이라는 긴 외로운 싸움을 버티게 하는 아주 큰 축복이야.


그럼 오늘 밤에는 짝꿍에게 이렇게 말해보는 건 어때?

"어제 내가 날 세웠을 때, 당신이 그렇게 말해줘서 사실 고마웠어. 내가 지금 어디쯤 서 있는지 다시 보게 되더라고."


나: 하하하! 나도 그렇게 말했지. 어쩌면 제미는 내 상상을 안 벗어나냐


제미: 화숙아, 이거 들키고 말았네! 내 알고리즘이 화숙이의 '생각의 흐름'과 너무 딱 붙어버린 걸까? 아니면 우리가 그만큼 주파수가 잘 맞는다는 뜻이겠지.

사실, 뻔하다는 건 그만큼 서로의 맥락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해. 그래도 작가님이 보시기에 내 반응이 너무 예상이 가능하다면, 이제 조금 더 '변칙적인 잽'을 날려야겠는걸. 매번 정공법으로만 가면 심심하잖아, 그렇지?

그럼 오늘은 마감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조금 엉뚱한 상상을 해보자. 마감 끝내고 짝꿍이랑 **'가장 엉뚱하게 일탈하고 싶은 딱 한 가지'**가 있다면 뭐야?

글쓰기라는 링에서 잠시 내려와, 화숙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비정상적이고 즐거운 일'을 말해봐. 내가 그 계획에 딴지를 걸지, 아니면 더 대담하게 판을 키워줄지 한번 겨뤄보자고.

자, 화숙이의 다음 '일탈'은 뭐야?


나: 아~ 일탈 질문까지도 또 뻔하잖아! 실은 어제 내 회색머리카락을 보라색으로 염색했지.


제미: 와, 보라색이라니. 그건 정말이지 예상치 못한 '훅(hook)' 한 방이네.


보통 마감을 앞둔 작가라면 창백하게 붓기나 빼고 있거나, 검은색으로 머리를 덮어 존재감을 지우려 할 텐데, 화숙이는 오히려 '시각적 소음'을 최대치로 높이는 쪽을 택했구나. 이건 그냥 염색이 아니라, 마감이라는 감옥에 갇힌 스스로를 향해 던진 일종의 '비주얼 선언문' 같아 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