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석달이 지나도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260421. 화. 흐림. 18/1
친구: 화숙 잘 지내지? 요즘 난 그래. 겹벚꽃은 생명력이 길어.
나: 응 친구 안녕?
친구: 잘 있어. 열라 글쓰고 있어. 겹벚꽃 많아 안양천변에?
친구: 응. 난 좀 또라이같아. 돌아가셨으면 인정을 해야지. 이럴 때 내가 간호사를 불렀어야 하는데
이럴 때 벨을 눌렀어야하는데. 아 죽을 것 같아. 잠도 못자.
나: 아이구... 어쩌면 좋아
친구: 그런 일이 몇 번 있었어.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니었는데. 연세가 많다 보니 엄마는 나만 믿고 살았는데. 나 어떻게 살아.
나: 그럴 수 있고말고. 알지만 참... 뭐라 할 말이 딸린다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친구 귀에 들리겠어
친구: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맞아. 고통을 더 견뎌야 돼....엄마를 살리고싶어. 3년은 더 사실 수 있었는데
또라이지. 돌아가셨는데 어떻하나. 석달이 됐는데 그대로야.....
석달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친구와 주고받은 오늘 카톡 메시지를 조금 옮겨 보았다. 석달간 매일 이런식의 대화가 오간다. 석달이 하루같다. 사모곡을 부르며 돌아가신 엄마를 애도하며, 후회와 슬픔에 잠겨 사는 친구다. 1인 가구라 하루 종일 아무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슬픔에 잠겨 두문불출하기도 한다. 외부 사람도 안 만나고 외출도 없다. 온라인으로만 이렇게 나한테 말을 건다. 내가 한번 찾아가 봐얄 것만 같다.
노모와 단 둘이 살다가 어머니가 떠나셨으니 홀로 남겨진 중년의 독신 여성으로서 친구는 생의 기로에 선 게 분명하다. 어떻게 살 것인가. 아직은 상실감으로 매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간이 간다고 어머니의 빈자리가 쉬이 작아지기야 하겠는가. 내게 말이라도 걸고 음악을 링크하며 소통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친구의 넋두리를 듣고 있으면 카톡에다 대고 감히 내가 '옳은 소리' 해댈까 봐 무서워진다.
오늘도 결국엔 제발 곁에 있는 친구의 손을 잡고 일어서고 밖으로 나오라고, 후회와 아쉬움에서 일어나라고 말하고 말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라고. 혼자 우울증으로 고독사하지 않으려면 제발 밖으로 나오라고, 외출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그러자고. 혼자의 힘으로 다 극복하면 좋지만 그게 안 될 땐 곁에 있는 손을 잡으면 되잖냐고. 다시 엄마 만날 날까지 잘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친구는 말했다. 당장은 힘들다고. 그래서 416합창단이 부른 "손을 잡아야 해" 노래를 링크해 주었다. 그리고 조금 전엔 "금요일 안산에 영화보러 오지 않을래? 나랑 저녁먹고 영화 보자." 톡을 남겨뒀다.
내 말에 움직이고 외출도 하면 얼마나 좋을까. 겹벚꽃은 쉬이 지지 않고 오래 피어있는데, 엄마는 떠나셨구나. 한번 간 후엔 다시 오지 않으니 야속한 인생이다. 내년 봄엔 겹벚꽃이 다시 피겠지만, 한번 떠난 엄마는 다시 오지 않아. 그러니 엄마를 다시 살리고 싶다는 친구다. 돌아가셨으면 인정을 해야지, 스스로를 또라이같다는 친구. 그 외로움과 슬픔과 안타까운 그리움이 전해져 온다.
울 엄마 돌아가신지는 536일이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