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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교사 May 14. 2023

욕하는 학생들 지도하려고 했다가는…

욕하지 마세요 대신 내가 쓰는 방법

학교 도서관 신간 도서


초6, 중3, 고3, 대학3, 휴학1, 대학1, 공부1, 그리고 발령 후 근무 10년까지 휴학과 공부기간을 제외하면 내 인생은 학교의 연속이었다. 그래서인지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여전히 강해 아직도 딴생각을 품는다. 아무튼 학교의 연속이었어도 학생일 때의 기간과 교사일 때의 기간이 주는 느낌은 180도 다르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기간이 길어 지겹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다. 어느 날 지나온 햇수를 세어 보고 그 시간의 흐름에 새삼 놀랐을 뿐이다.




학교 인생 26년 차, 그중에 10년은 교사로 지낸 이 성인은 아직도(?) 학교에서 들리는 육두문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우리나라 욕은 정말이지 구강구조와 발성과 음파를 모두 동원하여 그 욕하고자 하는 그 감정을 분출해 내는데 특화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쉬는 시간 복도를 지나다 보면 18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데,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그 18은 정말 귀에 붙는 찰기가 떡방아를 수만 번 당한 인절미에 버금가 귀에 찰싹 붙는다. 지도를 해야 한다는 교사 의무에 더해 더럽혀진 내 귀를 씻어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나의 육신은 가던 길을 멈추고 거센소리가 나온 곳으로 향한다. ”욕을 하지 마시오 “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이미 해버렸으니, 대부분은 추임새처럼 욕을 하는데, 뭐 욕을 할 만큼 기분이 나쁜 상황이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그걸 자극할 필요는 없다. 이때 필요한 건 치료다.


”자, 지금 입에서 병이 나왔네요. 치료가 필요해요. 사랑해 10번 갑시다. “


이 무슨 상황인가 싶은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와 내 귀를 씻고, 아이의 병을 치료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서 있는 교사 사이에서 3초 정도 신경전이 일어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방금 본인이 무슨 욕을 했는지 인식 조차 하지 못한다. 그만큼 일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신경전 3초 후의 상황은 무척이나 다양하다. 이내 곧 자신이 부적절한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과 유쾌하게 지도하고자 하는 선생님 의도를 이해한 똑똑한 경우에는 머쓱해하며 바로 사랑해로 속사포 랩을 한다. 한편, 의도는 이해했을지라도 사랑해라는 말이 오글거려 선뜻 입을 못 떼기도 한다. 특히 남학생들이 그렇다. 그래도 처음이 어렵지 몇 초 더 기다려주면 힘겹게 첫마디를 떼고, 나머지 9번을 후다닥 한다. 옆에서는 이 상황을 웃겨하면서 친구의 입에서 나오는 낯선 말, 사랑해에 몸을 비비 꼬며 오그라든다 놀리기도 하고, 진짜 10번을 하는지 같이 숫자를 세기도 하고, 우웩 하고 토하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본인들도 즐겨하는 욕이면서 인생은 타이밍이라고 친구가 걸린 이 순간을 얼마나 즐거워하는지 모른다. 그런 아이들에겐 다음엔 네 차례 같은데, 내 착각이길 바란 다하면서 지도를 마친다. “치료 끝! 회복 완료!”


“선생님 그냥 제가 귀 물로 씻어드릴게요”라는 말로 끝까지 그것만은 피하려는 아이도 있다. 고 2다. 아직 18세가 안 되어서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이냐며 바쁘니까 빨리 하라고 눈치를 준다. 그렇게 사랑해 10번을 듣고야 만다. 그동안 좋은 아이들만 만났는지, 한 번도 치료에 실패한 적은 없다.


나도 일상생활 중에 열이 받는 상황이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도로 위에서는 영어공부 AC 정도의 거센소리 된소리를 내뱉긴 한다. 위험에 대해 반응하는 인간의 본능인 것을. 다만 아이들의 예쁜 입에서 예쁜 말이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건 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학기가 깊어질수록 나의 치료 횟수가 잦아질수록 아이들은 시나브로 치며 들어(치료에 스며들어), 나중엔 욕한 친구를 데리고 오기도 한다. 친구 입에서 사랑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을 그렇게 듣고 싶단다. 그렇게 팀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유치할 수도 있는 이 치료는 10년째 이어지고 있다. 경험상 고3에게도 효과적이었다. 중1에게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도 학교는 사랑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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