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성과가 엄마의 성과가 되지 않기를
일상 속에서 간간히 영어를 쓰기 시작한 지 두 달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이 시기는 아이가 어린이집에 등원하기 시작한 지 몇 주 지났을 때이기도 했다.
지금의 코로나 사태가 있기 한참 전에
나는 아이와 외출 한번 편히 하지 못한 채로 지낸 적이 있었다.
아이가 돌 전에 병원 신세를 지면서 치료에 사용했던 약 성분 때문에
필수 예방접종 시기를 1년 뒤로 미루어야 했기 때문이다.
미루어 두었던 예방접종을 맞은 후에야
아이는 바깥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이후 아이는 아주 건강하고 씩씩하게
친구들과 뛰어놀 수 있을 만큼 자랐다.
하지만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그리 쉽지 않았다.
어린이집이란 곳은 가고 싶다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데가 아니었기에..
기나긴 대기 끝에 다섯 살이 되어서야 드디어 아이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엄마! 어린이집 선생님은 굿나잇 모르나 봐~”
그날도 어김없이 “Good night” 이란 인사와 함께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잘 때마다,
자기 전에 엄마가 항상 건네는 그 인사를 왜 선생님께서는 해주시지 않는 건지 궁금했던 모양이다.
집에서는 낮에 잠을 자지 않으니,
아이는 그 인사를 잠자리에 드는 모든 상황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말로 이해했던 것이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아이가 영어의 말소리를 인식하고,
말이 사용되는 상황을 머릿속에 저장해 두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였다.
/
이후 작정하고 일상에서 매일 아이에게 영어로 말을 걸기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아이는 영어로 발화를 시작했다!
하루는 엄마랑 풍선 놀이를 하던 중에,
날아간 풍선이 트램펄린과 벽 사이로 떨어졌고,
풍선을 가지러 간 아이가 말했다.
“Stuck!”
풍선이 틈새에 끼어서 잘 꺼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한 단어지만 절묘한 상황에 자연스럽게 발화가 이루어지는 광경을 목격할 때마다
나는 경이로움을 느꼈다.
아이는 확실히 습득 능력이 뛰어났다.
이 시기를 절대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욕심을 냈다.
일상 속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건 물론
영어 그림책을 읽어주고, 영어 애니메이션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불타오르는 엄마의 열정에 찬물을 끼얹기라도 하듯,
아이는 “영어책 말고!”, “한국말로 나오는 거 보고 싶어!”
라는 말을 하며 영어를 거부할 때도 많았다.
갑자기 한꺼번에 방대한 양의 영어를 듣게 되었으니
Context를 분석하고 의미를 찾는 과정이
아이에게 분명 부담으로 다가왔을 터.
괜한 엄마 욕심에 아이가 압도되는 모습을 보고 난 뜨끔했다.
'아이를 위한답시고 내 만족을 채우려고 했던 건 아닐까.'
아이와 엄마 모두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니 아이와 함께 보폭을 맞추어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