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우리 함께 성장하자
통대 졸업 후
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은 프리랜서 생활을 이어갔다.
일이 없는 날이면
'놀면 뭐 하니? 공부라도 해' 라며
불안감에 휩싸인 자아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내게 말을 거는 이는 또 있었으니!
“이제 뭐 하고 놀까?”
어김없이 아이는 내게 와 같이 놀자고 재촉했다.
이렇게 마음이 소란한 날들이 계속되던 와중에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공부도, 아이와 값진 시간을 보내는 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같이 하면 되잖아!
그래! 영어로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보자!
영어로 신나게 놀아보는 거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던 길에 빛이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뉴스 기사, 연설문과 씨름하는 것도 좋지만, 일상 속에서 매일매일 영어를 활용하는 것도
나의 내공을 키우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아이의 영어 성장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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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are you doing?”
작정하고 아이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보았다.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하는 엄마.
아이의 처음 반응은 어땠을까?
그야말로 무반응!
세상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나를 흘낏 보는 게 다였다.
다시 아이 앞에 다가가 적극적으로 말을 걸어보았다.
“What are you doing?”
그제야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뭐라고?”
이에 나는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통역을 하기 시작했다.
“어~ 뭐하냐고~”
한동안 그렇게 나의 통역은 계속되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내가 영어로 말하니 아이는 이렇게 물었다.
“아니~ 한국말로 뭐야”
'아차차 이게 아닌데!!'
영어를 거부하는 아이를 보니 어린 시절 나의 모습이 오버랩되었다.
초등학생 시절, 학습지를 통해 처음으로 '영어'를 접했다.
교육열이 높은 부모님께서 언니가 하는 영어 학습지를 내게 디미신 거였다.
그 당시 나는 그 영어 학습지는 물론이거니와 영어 얘기만 나와도 펄쩍펄쩍 뛰며 도망 다녔다.
나에게 ‘영어=공부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언어 공부에 흥미가 있었던 나였기에
영포자가 되진 않았고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영어를 계속 공부했다.
그랬더니 내 앞에 기회가 넘쳐나는 더 넓은 세상이 펼쳐졌다.
영어라는 언어를 하나 더 배웠을 뿐인데 말이다.
영어가 인생에서 얼마나 큰 메리트가 되는지 알고 있었기에
우리 아이는 무조건 영어를 잘했으면 했다.
하지만 엄마처럼 영어를 '공부'하지는 않았으면 했다.
아이에게는 영어가 공부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수단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려면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는 이미 모국어인 한국어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는 나이였기에
갑자기 말이 통하지 않는 영어를 사용하니 초반에는 편한 모국어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아이의 전담 한국어 통역사 역할을 했던 엄마 때문에 그 의존성을 더 키우고 말았다.
아이가 영어를 거부하고 한국어에만 의존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
나는 영어를 듣고 "무슨 말이야?" 하는 아이에게
절대로 문장 대 문장/ 단어 대 단어로 번역해주지 않았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아이는 영어로 된 말의 의미를 스스로 찾기 시작했다.
모국어를 습득할 때와 같은 과정이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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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엄마가 되고 내 아이가 말을 배우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언어 습득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직접 관찰해볼 수 있었다.
아이가 문장 단위로 발화하기 시작할 무렵, 아이의 말을 들으면 ‘아, 내가 저번에 그렇게 말했었지!’하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지나가듯 무심코 내뱉었던 말을 아이는 머릿속에 꼭꼭 저장해두었다가 비슷한 상황이 오면 그때의 그 말을 사용했다. 때로는 아이의 말속에 내 특유의 말투까지 고스란히 담겨있기도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는 분명 내가 했던 말소리뿐만 아니라 주변 상황까지 잘 기억해놓은 후에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냈음을 알 수 있었다. 아이는 주위 사람의 말소리를 들을 때 ‘주변 상황’ (말을 하는 사람, 발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간적, 공간적 배경 등) 정보를 분석하고, 이러한 과정을 무수히 거쳐 비로소 말소리의 뜻을 파악한다.
언어를 습득할 때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과정이 Context(맥락/문맥) 분석인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한국어로 해석을 해주지 않으니 Context를 분석하여 의미를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엄마랑 만들기 놀이를 하다가 가위가 필요한 상황에서
“Bring your scissors! (가위 가져와!)”라고 말하면
“응? 가위 가져오라고?”라고 아이는 물었다.
매번 '눈치 진짜 빠르네'라고 느낄 만큼 아이가 Context를 활용하는 힘은 대단했다.
아이가 엄마와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면 처음 듣는 말이라도 스스로 Context를 분석하며 의미를 파악하고자 애쓸 것이다. 그러니 굳이 한국어로 해석해주지 않아도 된다.
단, 엄마가 영어로 말을 거는 상황이 아이에게 흥미가 없다면 그냥 무시할 수도 있다. 따라서 아이의 관심과 흥미를 끌 수 있는 소재로 영어 '놀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만약 아이가 Context 분석 과정을 할 의지가 없거나, 못 견디고 굉장히 답답해할 때는 차라리 일대일로 대응하는 한국어를 알려주는 대신 이런 대안을 활용해 보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몸짓으로 표현해주기.
(예를 들면, 손가락으로 가위 모양을 만들기)
- 상황을 한국말로 설명해주기.
(우리 이 색종이 잘라야 하는데 뭐가 필요할까~)
이렇게 나는 아이가 엄마처럼 영어 '공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매일매일, 일상 속에서, 엄마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