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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영미 Dec 15. 2021

[그림책 서평] 빅 피쉬

-이기훈 지음 /  비룡소

코로나19로 인간들의 생활만 바뀐 것이 아니다. 동물들의 삶에도 변화가 있었다. 도시를 활보하는 동물들, 항구와 해수욕장을 차지한 새들과 해파리 모습 등등. 인간들의 터전이고, 공간이었다고 생각했던 곳에 인간들이 활동을 멈추자 동물들이 나타났다. 

가장 인상적인 사진은 2020년 멕시코 푸에르토 마르케스 해변에 몰려든 플랑크톤 모습이었다. 해안선으로 몰려든 플랑크톤 떼가 발광한 모습 마치 은하수 같았다. 이 해변에서 플랑크톤 떼를 다시 보게 된 것이 60년 만이라고 한다. 관광객이 증가한 이후에 플랑크톤 떼를 볼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이런 변화는 길지 않았다. 다시 인간들이 일상을 회복하자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2020년 초반에 인간들의 일상을 잠시 멈춘 기간에 생태계가 바뀐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말이다. 

인간과 연결된 자연 생태계를 떠올리면 긍정적인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 이미지와 함께 이기훈 작가의 [양철곰]과 [빅 피쉬]가 생각난다.      


이기훈 작가의 작품인 빅 피쉬를 처음 보았을 때, 큰 판형과 그림책 무게에 놀랐다. 그리고 본문을 읽으면서 역시 이기훈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그림 컷을 세세하게 그릴 수 있는 작가는 드물다. 작가의 전작 [양철곰]과 이 책인 [빅 피쉬]는 환경이라는 소재를 문명화된 사회와 비 문명화된 사회를 배경으로 환경 보호라는 동일한 주제로 연결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빅 피쉬라는 제목이 좋았다. 팀 버튼 감독의 영화 [빅 피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영화 [빅 피쉬]를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 죽음 앞에서도 성인이 된 아들에게 허풍을 늘어놓는 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판타지 세계가 잘 그려졌다. 그림책 [빅 피쉬]와는 제목도 동일하고, 판타지 이야기로 영화와 함께 겹쳐졌다.


그림책 [빅 피쉬]는 [양철곰]과 마찬가지로 글없는 그림책이다. 이야기의 앞부분은 이러하다.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동물들과 인간들은 죽어간다. 결국 인간들은 금기 시 된 물을 뿜어내는 커다란 물고기인 ‘빅 피쉬’를 찾아서 잡기로 한다. 빅 피쉬를 잡을 용사를 뽑고, 용사들은 빅 피쉬가 사는 머나먼 곳을 찾아 떠난다. 

그림책 [빅 피쉬]에서도 이기훈 작가의 전작 [양철곰]과 마찬가지로 성경 속 이야기인 [노아의 홍수]의 상호텍스트성을 찾을 수 있었다. 이 그림책에는 빅 피쉬를 잡으러 가는 길에 용사들이 커다란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만난다. 그들은 노아에게 해가 쨍쨍거리는 하늘을 가리키며 비가 오지 않는다고 비웃는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아마 이 장면이 인상적인 이유는 인간들의 어리석음 때문인 것 같다. 인간들 시선에서 많은 이들 중에서 뽑힌 용사들은 보면 다른 누구보다 지혜롭고, 용맹하다. 하지만 그들은 하늘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다. 그들이 어리석다고 비웃었던 노아보다 더 어리석은 인물들이다. 이런 용사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처럼 느껴졌다. 이 장면은 앞의 장면들이 독자의 시선과 같은 구도인 수평 앵글로 쓰인 것에 반해, 하이앵글로 그려졌다. 용사들이 아래에 있고 노아를 올려다보면서 말한다. 하이앵글로 두 대상이 그리면 낮은 쪽에 있는 대상이 높은 쪽에 그려진 대상을 올려다보는 것처럼 보이기에 그 대상이 더 높고, 우월하고 그 대상에 경외감이 일게 만든다. 그림문법 상 아래보다 위에 그려진 대상이 더 이상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노아의 모습을 위로 잡은 것 같다.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뽐내고 자신이 누구보다 뒤지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속담처럼, 현자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내세우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해나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된다.      

용사들은 어렵게 빅 피쉬를 잡고, 꽁 싸맨 채 마을로 도착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하지만 물을 얻고자 하는 동물들이 그들을 쫓아왔고, 빅 피쉬를 독점하려는 인간과 치열한 전투가 이어진다. 많은 동물들과 사람들이 죽어가던 중 동물들은 갑자기 빅 피쉬를 포기하고 돌아선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승리를 기뻐한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모두 잠이 든 깊은 밤, 빅 피쉬가 밧줄을 끊고, 거대한 물줄기를 뿜어낸다. 이어 하늘에서도 거센 비가 내리고, 인간들은 대홍수로 모두 죽어간다. 비 갠 어느 날, 동물들을 태운 노아의 방주만이 언덕 위에 올라와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또 눈여겨보았던 부분은 새들의 행동이었다. 새들은 독수리로 그려졌다. 그들은 다른 동물과 인간의 전쟁을 마치 관조하고 방관하는 듯하다. 동물의 편에 서서 싸울 줄 알았는데, 그들의 싸움이 한창일 때 뒤늦게 나타나서 구경한다. 그러고는 다른 동물들이 마을로 들어오기 위해 애쓸 때 자신들은 날 수 있으니 손쉽게 마을로 들어와서는 빅 피쉬 주위에서 인간들과 또 다른 전투를 벌인다. 독수리는 인간과의 전투에서 죽은 동물들의 사체를 먹는 모습도 보인다. 독수리들이 동물들과 한 편이 되지 않은 새들의 모습에 조금 의아했다. 물론 독수리가 사체와 시체를 먹는 새이기에 그렇게 그려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동물들과 왜 같은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왜 같은 동물인데도 공통된 목표에서도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특수한 무리로 그려진 것인지 궁금하다. 그리고 동물들이 빅 피쉬가 사는 곳의 폭포의 물을 마시지 못한 이유도 의문점이다. 처음에는 물이 아니고 물보라인가 생각도 했지만, 그보다 빅 피쉬가 있는 공간과 동물, 인간 세상이 분리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서 자세히 보면, 빅 피쉬가 있는 공간, 바위산처럼 보이는 공간은 동물들이 머무는 장소와 분리되어 있고, 그곳은 동물들이 사는 곳과 달리 식물들이 푸르다. 마치 정글 속과 같다. 가뭄으로 생명체들이 죽어가는 공간이 아닌 사시사철 생명체기 죽지 않는 영생의 공간처럼 보인다. 인간이나 동물들이 함부로 갈 수 없는 공간이다. 나는 빅 피쉬가 사는 공간이 동물과 인간들이 사는 세계와는 조금 다른 공간으로, 빅 피쉬 역시 그런 장소에서만 살 수 있는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책을 처음 읽고 나서는 빅피쉬의 존재는 무엇일까, 빅 피쉬를 잡은 행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인간이 빅 피쉬를 잡는 행위를 비난할 수 있을까? 등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빅 피쉬는 판타지 힘을 가진 상징물이기에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상위 존재인 메시아와 같은 존재로 생각되었다. 그렇기에 마을의 리더가 깊은 동굴 속 빅 피쉬의 존재를 숨기고 있지 않았을까. 이것을 통해서 빅 피쉬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금기된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빅 피쉬를 잡는 행위는 인간이 금기한 행위를 파괴하는 모습으로 여겨졌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이브가 선악과를 먹는 행위와 동일하게 보였다. 메시아의 역할은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 짓는 존재다. 빅 피쉬는 인간과 신을 연결 짓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런 빅 피쉬를 잡고, 동물과 나누려 하지 않고, 자신들만이 독차지하려는 탐욕을 보였으니 대홍수는 어쩌면 인간이 가져온 비극인지도 모르겠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조금 뒤 비가 내릴 것을, 비를 내릴 것이라는 신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으니 말이다. 

빅 피쉬의 대홍수는 자연재해이다. 하지만 이러한 자연재해 역시 인간의 삶과 인과관계를 갖는다. 이스터 섬의 모하이상을 세우기 위해 산림이 훼손되고 결국, 자원 고갈로 인해 한 문명이 사라진 것처럼 대홍수가 일어난 이유에는 인간의 생활과 연결되지 않았을까?

저자의 다른 그림책 [양철곰]을 보면서도 느껴졌지만, 인간들 시선으로 보아서는 가장 불필요한, 낮은 존재인 양철곰이 지구를 지키고 구하는 것처럼, 이 책에서는 가장 어리석다고 생각하는 노아가 지구를 구한다. 가장 어리석어 보이는 이가 가장 지혜로운 이가 되고 지구를 지키는 존재가 되는 것처럼,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은 동물과 함께 지구에 살아가는 작은 존재임을 깨닫고 환경을 지켜야 함을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호텍스트성으로 흥미진진하게 읽었지만, 기후 변화가 심각한 현대 사회를 빗대면 두렵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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