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바보 같은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번듯한 직장에서 (아직) 잘린 것도 아닌데, 그만두고 험한 세상으로 나올까 고민하다니. 어쩌면 지금 직장이 힘들어서, 아니면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워크 앤 라이프 맞지 않아서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이 화두가 고민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직(직장)이라는 범위 내에서 제 가능성을 120% 발휘할 수 없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였습니다.
건방지게 '조직이 나를 담기에 너무 작다'라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일단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것부터 큰 관문이었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꽤 오랜 고민과 노력 끝에 이직을 했지만, 조직이라는 곳은 항상 제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직장에 잠깐 발을 담갔다가 '앗! 뜨거워!'하고 빼진 않았습니다. 어느덧 직장 생활을 한지도 12년이 넘었으니까요.
또한 회사나 조직에는 지켜야 할 규칙과 제도가 있고, 큰 방향성을 정해주는 리더들이 존재합니다. 리더들은 조금 더 자신의 선택에서 자유롭지만, 그들 역시 절대 넘어서는 안될 선이 있습니다. 그것은 창업자의 의지일 수도 있고, 국민의 여론일 수도 있으며, 담당 부서의 역할 범위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부서 특성상 상대적으로 그런 임원들의 모습을 가까이서 봤던 저는, 과연 제가 십 년 후에 되고 싶은 모습이 저 임원의 자리인지 확실치 않았습니다. 분명 사회적으로 성공한 모습이고, 연봉도 높습니다. 하지만 그 길이 제가 원하는 길이라고 확신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곳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험하고 거친 오프로드인 것을 다들 알고 있습니다. 만약 온갖 고생 끝에 그곳에 도달했을 때 제가 원하는 길이 아니라면 그 허무함은 이겨내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조직 내에서 하고 싶은 일은 찾는 것도 쉽지 않고, 그곳에서 꼭 되고 싶은 모습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에서 제 가능성을 다 발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책임감 있게 일을 하다 보니 인정도 받았고, 좋은 상사와 동료 분들을 만나서 직장에서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은 꽤 보람찼습니다. 마치 더 이상 걱정할 것이 없을 것 같은 착각도 자주 느꼈습니다.
하지만 눈앞의 만족과 안정에 안주하기에는 제가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이대로 몇 년 더 지나면 그 가능성을 탐색할 기회조차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사라진 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가진 또 하나의 고민이 바로 '내가 회사에 있고 싶다고 해서 회사가 나를 계속 받아줄까?' 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잘 팔리는 가성비 좋은 나이기 때문에 이 회사도 다닐 수 있고, 가끔 다른 회사에서 이직 제안이 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인적 자원'이고, 가성비가 떨어지는 자원이 언제까지 사용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이가 든 후에 회사에서 쫓겨나고 이직도 못한다고 상상했을 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창립된 지 짧게는 10년, 길어도 100년 밖에 되지 않은 조직의 영원을 약속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 안의 부속품인 저의 노후는 더욱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회사를 나가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매체를 통해 강조하는 '하고 싶은 일 그리고 잘할 수 있는 일'을 꽤 오래 탐색했지만, 그것을 찾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는 와중 점점 더 회사에 의존적으로 변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회사가 나를 인정해 줘도, 나중에 나이 들어서 내가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그때 퇴사를 권유받으면 먹고살 길이 있긴 한가? 대한민국에서 전문가가 아닌 멀티태스킹의 대가로 키워진 도구가 과연 진짜 정글에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보장되지 않는 노후.
후회가 남는 삶.
지켜야 할 가족.
지금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두렵다고 해서, 나중에 그 길로 쫓겨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하루라도 젊을 때, 하루라도 건강할 때 도전을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당장 먹여 살려야 하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 체력이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건강해야 뭐든지 할 힘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다이어트나 몸매를 위한 운동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체력 강화 운동 위주로 시도했습니다. 달리기, 빨리 걷기, 자전거 타기, 스쿼트, 로잉머신 등 말입니다.
그리고 글을 썼습니다. (+ 수익이 월급이 스치고 간 통장 잔액만큼 매우 소폭 상승하였습니다)
평소 쓰고 싶던 글이 있었습니다. 제가 현재 직장으로 이직한 이유와 일맥상통한 메시지였습니다. 꼭 한번 쓰고 싶었던 주제였기 때문에 즐겁게 썼습니다. 아직은 전자책으로만 발행된 상태이며, 전자책을 만들기 위해 들었던 강의료보다 아주 소폭 더 팔린 책일 뿐입니다. 하지만 제 첫 책은 늘 저의 지지자가 되어주었습니다. 제가 쓴 글로 단돈 만원이라도 벌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저는 회사 밖에서도 해낼 수 있다는 아주 작지만 확실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 후 혼자서 돈을 벌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검토했습니다.
프리랜서(정말 종류가 다양하더군요), 리셀러, 해외 물품 유통, 유튜버, 인플루언서, 가게 운영(카페, 무인상점, 인생 네 컷 사진관 등) 그리고 에어비앤비 숙소 관리자 등 많은 것들에 대한 정보를 찾고 또 찾았습니다.
어떤 것들은 할 수 있겠다 싶은 것도 있었고, 제가 하기엔 전문성이 너무 부족하다 싶은 것들도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열정을 불태울 수 있는 것. 각각 너무 중요한 꼭지들이 서로 치열한 전쟁을 벌였고, 그중 몇 가지는 간단히 시도한 것도 있었지만 성과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기는 저에게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분명 꿈을 찾고자 시작한 고민이 어느새 돈을 어떻게 벌 까라는 고민으로 변해 있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회사에서 평생을 지낸 사람이 회사 밖에서 돈 벌 수 있는 방법은 결코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쉽지 않은 만큼 큰 리스크를 요구했습니다. 저는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마음으로 계속 방법을 찾았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매일매일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은 글쓰기였습니다.
제 생각, 상상을 글로 쓸 때 기쁨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책으로 쓰고 싶은 수십 가지 주제들이 메모장에서 점점 몸집을 키우고 있습니다. 가끔 드라마를 보면 아내가 작가를 해도 되겠다고, 다음 내용이나 행동을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냐고 한 것도 꽤 기분 좋았습니다.
하지만 글을 써서 돈을 번 다는 것은 쉽지 않은 길이었고, 어쩌면 직장을 다니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던, 새로운 길에 어떤 모습으로 서던, 글을 쓰는 것은 평생 저와 함께할 일이란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렇게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출근 전후로 글을 쓰던 것이 벌써 4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아직도 회사 밖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양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면서 미래에 대한 제 생각도 조금씩 정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제가 찾고 싶었던 것은 직업이나 돈을 버는 방법이 아닌 "꿈"이었습니다.
인생을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살아갈 것인가.
남은 여생을 어떻게 빛내고 싶은가.
그러면서 그동안 구석구석 저장해 놨던 조각들이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열정을 불태우고 싶은 마음.
매일 글을 쓰며 지내온 시간들.
언젠가는 서야 할 새로운 길.
그리고 그런 저를 지지해 주는 가족.
이런 마음들이 합쳐져서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네. 퇴사하고 전세금만 가지고 함께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숙성되었던 결심들이 모여서 "진짜 꿈"에 대한 열망으로 변해 끓어올랐고, 끓기 시작한 마음은 쉽게 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마음을 차분하게 그리고 올바른 방향으로 식혀 돌아오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