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을 까먹으며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결심한 순간부터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바쁘고 숨 가쁜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주어진 일이 아니라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을까요? '평일에 열심히 일했으니 주말은 조금 나태하게 지내자'는 생각은 자연스럽게 사라졌습니다. 정말 1분 1초도 아까울 정도로 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단순히 여행을 준비하는 것도 많은 준비가 필요한데, 확실하게 얻고 싶은 결과들이 있었기 때문에 훨씬 많은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준비 과정을 브런치에 올리는 것 역시 해야 할 일이자, 하고 싶은 일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외에도 다양한 미션과 퀘스트가 생겼습니다.
미션 1) 양가 부모님께 소식 알리기
미션 2) 회사 리더분과 상의하기
미션 3) 전세계약 정리하기
미션 4) 물건 팔기
미션 5) 여행계획 하기 등
정신없었지만, 마음 한편으로 벅참을 선물해 주는 바쁨이었습니다. 하지만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정말 많은 일들을 챙겨야 했지만, 가장 중요한 일은 '꿈이 무엇인지 구체화하기'였습니다. 분명 어느 정도 꿈에 대해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었지만, 막상 진짜 결심을 하고 나니 글로 적어보지 않은 꿈의 모습을 늘 조심씩 변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또한 제가 생각하는 꿈과 와이프가 생각하는 꿈 그리고 아이가 생각하는 꿈의 정의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래서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나는 무슨 꿈을 찾기 위해 세계 여행을 계획 중인가?'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당신이 정의하는 '꿈'은 무엇인가요?
= 당신이 가진 '꿈'은 무엇인가요?
'꿈을 찾자, 그런데 꿈이 무엇일까?'
어린 시절부터 사회가, 부모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온 저에게 '꿈'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아니, 저는 이미 꿈을 찾았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새로운 길을 찾기보단, 남들이 정해놓은 길에서 더 빨리 달리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그 길이 맞는 길인지 아니면 새로운 길을 낼 수 있는지에 고민 자체가 없었습니다.(왜 어린 시절 지오디의 '길'을 들을 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을까요...)
뒤늦게 30대 초반부터 진짜 꿈에 대해 고민을 시작했지만, 이미 다른 누군가 제시해 준 길만 걷고 있었던 저에게 새로운 꿈을 찾는 것은 정말 정말 힘든 일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선물처럼 쉽게 다가오는 꿈이겠지만, 저에게는 보름달 밤 푸른 나비처럼 얻기 힘든 것이 꿈이었습니다. 아니, 꿈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꿈이 곧 직업이라고 착각하던 시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꿈 찾는 것을 간단히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경험을 하다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이직하고, 새로운 것을 공부하고 체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직업이 될 수 있는 취미를 찾고, 여러 직업을 탐색하는 나날이 이어졌습니다. 투자로 치면 큰 방향성을 알기보단 당장 투자할 수 있는 종목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직업이 곧 꿈이라고 생각했고, 조금 더 깊게 고민하더라도 행복한 삶 정도가 제 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제가 꿈을 찾기 힘들어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
정말 크고, 아름다운 꿈을 꾸려고 할 때마다 무언가가 하늘로 향하던 제 시야를 땅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말뚝에 묶여 길들여진 코끼리처럼 말입니다. 제 꿈을 크기를 넓은 하늘에서 작은 창문 밖 풍경으로 바꾼 것들의 정체를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시간적 한계', '공간적 한계' 그리고 '관계적 한계'였습니다.
시간적 한계
제가 쓸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부분을 시간을 일에 써야 했고, 집으로 돌아와 집안일과 육아를 하기 위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한 체력을 마련하기 위해 운동에도 반드시 '시간'을 써야 했고, 와이프와 함께하는 대화에도 '시간'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기 전에 잠시 보는 영상에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공간적 한계
제한된 시간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때론 감기는 눈꺼풀을 밀어내고 남는 시간을 활용해 새로운 경험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주말 하루나 이틀 동안 갈 수 있는 곳은 '공간'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가끔 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거주지, 직업, 가족, 학교... 일상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일상 주변으로 제 공간이 한정되어 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일탈을 꿈꾸는 것일까요?
아무 곳으로나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보이지 않는 한계들은 늘 제 주변에 붙어 있었습니다.
관계적 한계
마지막으로 '관계'가고려되어야 했습니다. 가족과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쌓고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들어가기 때문에 더욱 쉽게 끊을 수 없는 것이 관계였습니다. 동네 단골 가게에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관계(반가운 인사)조차 제 선택에 조금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합쳐지면서 '꿈'은 저에게 조금 더 현실적인 무언가로 변했습니다. 이 세 가지 한계는 소위 '비현실적'인 꿈은 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심어줬습니다. 현실적인 한계는 제 시야를 제한했고, 어느 순간부터 조금 더 현실적인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많은 돈 혹은 좋은 직업을 얻는 것이 제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꿈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경제공부를 하고, 새로운 일에 대해 찾아보고, 때론 그저 주저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면서 점점 더 확실해지는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에게 메여 있는 한계를 끊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더 넓고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한계가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계처럼 보이는 그 요소들은 저를 땅에 단단히 붙들어놓았습니다. 그것은 제 삶에 안정감을 주고, 따뜻함을 선물해 주었으며, 힘든 풍파를 이겨나갈 힘이 돼 주었습니다. 하지만 살면서 단 한 번쯤은 그 안정감을 벗어나 진짜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간절히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어쩌면 더 흔들리고 다칠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젊었을 때 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 해보지 못한다면 영원히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묶인 선들을 조금 느슨히 풀어놓고, 전세금을 까먹을 각오를 하면서까지 여행을 가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정말 진짜로 원하는 삶이 그리고 꿈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말입니다.(물론 세계 여행이 저희 가족에게 주는 다양한 장점도 나중에 다룰 예정입니다)
진짜 꿈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이 되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생각하는 '꿈'에 대한 중요한 특징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누구나 '꿈'이 무엇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진정으로 자유로운 삶이,
드높은 하늘을 날면서 살 수 있는 삶이,
누군가를 평생 돕는 삶이 꿈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이미 꿈을 찾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꿈은 각자의 한계에 묶여 연처럼 날다가 다시 때가 되면 현실이 있는 땅으로 감겨 내려오곤 합니다. 그래서 진짜 우리가 품은 꿈 대신 다른 무언가가 어느새 우리의 '꿈'이란 타이틀을 가지고 갔을 수도 있습니다. 언젠가 품었던 '꿈'의 원형을 어느새 기억하기 힘들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많은 선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상황에서 진짜 자신의 꿈을 계속 직시한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단 저는 아직까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꿈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눈앞에 보이는 것만 얻기 위해 갈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그 한계를 끊어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직장을 관두면서 시간이라는 선을 내려놓고,
전세금을 빼고 한국을 떠나면서 공간이라는 선을 내려놓고,
단절된 곳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며 이미 그어진 관계라는 선을 내려놓고자 했습니다.
직장과 일상을 뒤로하고 가족이 함께하는 세계 여행(모험)이라는 아이디어의 시작이었습니다. 기존의 삶과 단절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통해 삶의 방향을 정할 수 있는 기회. 그것을 얻고 싶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꿈은 세 가지 요소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가고자 하는 삶의 방향성, 그것을 향해 나가는 속도와 방법.
단순히 방향성만 찾는 것으로 꿈이 되진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과 이루는 속도까지도 꿈에 포함되기 때문에 꿈이라는 것이 더욱 입체적인 무언가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현실과 타협하게 되더라도, 제가 원하는 꿈의 방향성과 속도만큼은 확실히 정하고 계속해서 꿈을 향해 걸어가고 싶었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그 길로 향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수많은 멀티버스 속 자신을 만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를 담은 양자경 주연의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두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과연 나는 멀티버스 속 가장 좋은 버전의 나일까?'
'나를 만난 내 배우자는, 가장 좋은 버전의 그 사람일까?'
어쩌면 지금 멀티버스 속 저는 모험을 떠나지 않는 선택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제가 찾았다고 생각한 '꿈'이 과연 제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꿈'이었을까라는 의문이 죽을 때까지 남을 것 같았습니다.
현실에 타협해서 적당한 '꿈으로 포장된 무언가'에 안주하고 만족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가족에게 가장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해 줬다는 후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런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많은 리스크를 안고도 세계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저는 어쩌면 꿈을 찾는 시간을 돈으로 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은 매우 소중하고 가치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가끔은 그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나타나고, 그 순간이 지금 제 눈앞에 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돈으로 꿈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정말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가슴속에 간직하던 진짜 꿈.
한계를 뚫고 올라간 하늘 위에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그 꿈을 찾기 위해 가려고 합니다.
[파랑새 이야기]에서 주인공이 찾아 나선 파랑새가 결국 자신의 집에 있었던 것처럼, 그 꿈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하지만 그것이 파랑새라는 것을 여행 없이 과연 알 수 있었을까요?
저는 꿈을 찾는 여정 없이 그 사실을 깨닫기는 진심으로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래서 꿈을 가슴속에 품은 진정한 삶의 방향성이라고 정의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떠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