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여행'을 떠날 때는 가고 싶은 장소, 보고 싶은 유물, 먹고 싶은 음식 등만 정해서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면 됐습니다. 하지만 막상 꿈을 찾기 위해 세계 여행을 떠나고자 하니 도대체 어디부터 방문해야 할지 기준이 서지 않았습니다. 정답이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더욱 고민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문화가 섞인 미국?
문명의 발상지들?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동남아시아?
어떤 기준을 가지고 여행지를 결정해야지 꿈을 찾기 위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됐습니다. 일단 오랜 기간, 아이를 포함하여 가족이 살아야 했기 때문에 절대적인 한 가지 기준은 있었습니다.
기준 1. 안전하지 않은 곳은 절대 방문 금지
많은 여행지가 후보군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총기를 전면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 일본, 중국 정도뿐이라는 것입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총기 소지를 허용했고, 심지어 수렵용이긴 했지만 덴마크는 총기 보유율이 70%가 넘는다더군요. 선진국인 미국이나 유럽조차 밤늦게는 다니지 말라는 조언이 많았습니다. (한국 +2점)
기준 2. 비자 조건을 만족하는 국가
그리고 두 번째 현실적인 기준이 있었습니다. 바로 비자 기간.
이 기준은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았습니다. 관련된 정보를 찾던 와중 우리나라 여권 파워가 세계 1위 수준이며, 정말 많은 국가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위상 덕분인 것인지 아니면 상호적으로 저희도 자유롭게 방문을 허용해선지는 모르지만 말입니다. (한국 +1점)
기준 3... 너무 당연한 기본 조건들을 생각한 후 그다음 기준을 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생각한 세계 여행의 모습이 단순한 관광여행이 아니라 실제 그 지역에서 살아보는 한 달 살기의 확장판에 가까웠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입니다.
여러 기준으로 나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생활비가 싼 곳?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곳? 영어가 통하는 나라? 날씨가 그 시기에 좋은 나라? 막상 고르려고 하니 생각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근본적인 고민으로 들어갔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왜 떠나려고 하지?'
저희는 꿈을 찾기 위해 떠나지만, 그 꿈이 어디에 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습니다. 결국 '가보지 않은 길'을 방문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 중요한 목표 중 하나였습니다. 죽기 전에 경험하지 않으면 후회할만한 경험들을 찾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도시' 위주로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기준 3.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도시
서울에서 살면서 좋은 것도 많았지만, 좋지 않은 것들도 있었습니다.(미세먼지라든지...)
사실 한국인으로 태어난 것에 많이 감사했습니다. 분단국가의 아픔이 있었지만, 부모님을 포함한 윗 세대 분들께서 정말 많은 고생을 해주신 덕에 저희는 세계에서 뒤처지지 않는 경제대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누군가 우스갯소리처럼 '한국은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나라야!'라고 말합니다.
200% 동의합니다. 전쟁의 위험은 둘째로 치고, 정말 돈이 있다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는 것이 한국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누릴 수 있을까요?
어쩌면 서울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순위에서 10위 안에 들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좋은 도시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꼭 좋지만은 않다는 뜻일 수도 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에게 여전히 굉장히 살기 좋은 곳이라고 여겨지는 서울보다 살기 좋은 도시로 뽑힌 곳들에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만족하면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찾아볼수록 소매치기 걱정이 없고, 카페에서 자리를 고가의 핸드폰과 노트북으로 맡을 수 있는 한국의 민족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입니다.(한국 +2점)
이번 여행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늙어갈 가장 좋은 곳은 과연 어디일지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저희가 찾을 꿈이 다른 나라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방문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대부분의 상위권 도시는 유럽, 오세아니아, 캐나다 쪽에 몰려 있었습니다. 살기 좋은 도시 = 물가가 높은 도시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활비가 많이 필요하기도 했습니다. 유일한 위안은 한국도 생각보다 물가가 싸지는 않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저희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 순위를 참고하여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가보고 싶은 휴양지나 보고 싶었던 건축물을 떠나서, 진짜 살아보고 싶은 도시 위주로 말입니다. 치안이 상대적으로 좋고, 교육 기반이 잘 되어 있으며, 이방인에게 우호적인 곳들.
가능하다면 미세먼지도 많이 없는 곳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이번 여행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는 이런 장소를 방문해 직접 살아보고 전 세계에서 어느 곳에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할 수 있을지 확인해 보는 과정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어쩌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불친절하고 불쾌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즐거움이 다가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방인의 입장이니 한국에서보다 훨씬 더 조심하고 신경 쓸 것도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편하지만은 않은 여행길이 될 것입니다. 그래도 또 한 번 확실한 것은, 가보지 않은 것만큼 후회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나이가 들면 저는 훨씬 더 큰 겁쟁이가 될 것입니다.
루틴에서 벗어나는 것이 지금보다 훨씬 더 무서워질 것 같았습니다. 어린 시절 아무 두려움 없이 타던 패러글라이딩의 흔들림이 어느 순간부터 제가 지켜야 할 것들이 더해지면서 훨씬 무섭게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이가 들 수록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책임질 것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그만큼 더 겁쟁이가 되어갑니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라면 저는 다신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계 여행을 갈 생각을 못할 것 같았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직접 다 걸어볼 수는 없어도, 그 앞까지 가서 어떤 길인지 슬그머니 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후회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제가 가장 원하던 길을 옆에 두고도 보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세계 어디에 숨겨져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비록 폰으로 카페 자리를 잡고, 편하게 가방을 메고 뒷주머니에 폰을 넣고 다니진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가장 좋은 환경이라고 여겨지는 무언가를 경험해 보기 위해 오늘도 세계 여행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