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정원을 함께 바라보다
내 팔자가 왜 이럴까?
살다 보면 문득 이런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때가 있습니다. 일이 유난히 꼬이거나, 도무지 벗어나지 못하는 패턴에 갇힌 듯한 순간, 어제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탓할 때 말이죠. 그럴 때면 마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내 삶을 정해진 길로만 몰아가는 것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혹시 우리가 흔히 팔자라고 부르는 것이, 사실은 우리가 오랫동안 무심코 길러온 생각의 습관일지도 모릅니다. 운명이란 하늘에서 떨어진 고정된 지도가 아니라, 내가 쌓아온 생각이 매일 조금씩 그려온 길일 수도 있는 것이죠.
우리 삶의 정원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어떤 씨앗을 심고, 어떤 잡초를 키워왔는지를 함께 돌이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은 진공에서 갑자기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라온 환경이라는 토양 위에서, 수많은 경험들이 씨앗처럼 심기며 시작됩니다. 그런데 모든 경험이 똑같은 무게로 남는 것은 아닙니다. 유독 강렬한 감정을 동반한 경험은 잠재의식 속 깊은 곳에 뿌리내려, 우리가 평생 살아가며 반복적으로 떠올리는 생각의 근원이 되곤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아본 경험은 ‘나는 해낼 수 있어’라는 자존감의 꽃나무 씨앗이 되고, 반대로 친구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기억은 ‘사람 앞에서 말하면 위험하다’는 두려움의 잡초 씨앗이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씨앗들은 우리가 무심코 하는 선택과 반응 속에서 조용히 자라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들은, 사실 과거의 감정이 깃든 씨앗들이 자라난 결과물일지 모릅니다.
이 씨앗들이 자라면, 놀랍게도 스스로를 강화하는 힘을 가집니다. 좋은 씨앗은 더 많은 꽃을 피우고, 나쁜 씨앗은 잡초처럼 번져 같은 패턴을 반복하게 하지요.
“해냈어!”라는 성공 경험은 자신감을 낳습니다. 그 자신감은 새로운 도전을 가능하게 하고, 도전은 또 다른 성취로 이어집니다. 좋은 경험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인생을 조금씩 넓히는 것이죠.
반대로 “역시 난 안 돼”라는 생각은 두려움의 뿌리를 깊게 내립니다. 두려움은 새로운 기회 앞에서 우리를 망설이게 하고, 망설임은 결국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 결과 실패를 피하는 동시에 성공의 기회마저 놓치게 되지요.
이처럼 같은 실수, 같은 관계 패턴, 같은 좌절이 반복되는 것은 신비한 팔자의 장난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정원에서 오랫동안 자라난 익숙한 잡초들의 습관적 성장일지 모릅니다. 팔자란 결국, 꽃과 잡초 중 무엇이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는가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 번 굳어진 생각의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을까요? 뇌과학은 여기에 중요한 힌트를 줍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반복할 때마다, 뇌는 그 경로를 강화합니다.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이 단단해지고, 미엘린이라는 물질이 그 경로를 코팅하며 더 빠르게 신호가 전달되도록 합니다. 처음엔 작은 오솔길이던 길이, 계속 걸으면 단단한 길이 되고, 결국에는 고속도로처럼 변하는 셈이지요.
그래서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우리의 뇌는 다른 길을 찾을 겨를도 없이 가장 익숙한 고속도로로 달려갑니다. 과거의 감정과 기억이 현재로 불쑥 소환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즉, 팔자는 하늘이 정한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반복적으로 밟아온 뇌의 길이 만들어낸 자동 주행의 결과일 수 있습니다.
이 거대한 메커니즘 앞에서 우리는 무력한 존재일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이 원리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삶을 가꿀 수 있는 정원사의 작은 열쇠를 손에 쥐게 됩니다.
정원사는 잡초를 없애기 위해 전쟁을 벌이지 않습니다. 잡초가 자라는 걸 알아차리고, 꽃씨에 물을 주는 데 집중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난 안 돼”라는 생각이 올라올 때, 억지로 쫓아내려 하지 말고 “아, 내 뇌 속의 오래된 길이 또 작동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려주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알아차림만으로도 생각과 자신 사이에 작은 거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긍정적인 경험, 예를 들어 오늘 아침 커피 향이 좋았다는 사실, 누군가 건넨 따뜻한 미소, 사소한 업무를 끝낸 성취감… 이런 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잠시 음미하는 것입니다. “이건 내가 해낸 게 맞아”, “그래도 다행이야”라고 마음속으로 말해주는 것이 곧 새로운 씨앗에 물을 주는 일입니다.
이미 닦인 고속도로 옆에 작은 오솔길을 내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시도를 반복하면, 새로운 길도 점차 단단해집니다. 하루 5분의 감사 일기, 작은 도전의 기록, 짧은 명상의 습관 같은 것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삶의 정원은 하루아침에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내가 심은 씨앗 하나가, 내일의 팔자를 조금씩 바꾸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생각이 곧 팔자 라는 말은 자신을 체념하는 선언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이 삶을 결정짓는 강력한 힘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힘을 새롭게 다룰 수 있는 가능성이 우리 손에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결국 중요한 질문은 단순합니다.
우리는 내 삶의 정원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서툴더라도 가꾸어갈 것인가.
오늘, 당신은 어떤 씨앗에 물을 주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