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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통이 내게 가르쳐 준 지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치통에게 인생을 배웠습니다

by 부자백수

얼마 전, 지독한 치통으로 며칠을 앓았습니다. 원인은 명백했습니다. "양치 안 하면 늙어서 개고생한다"는 우리집 가훈을 무시하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유혹에 넘어가 그대로 잠들어 버린 탓이었죠. 며칠 밤낮을 끙끙 앓으며, 저는 뜻밖에도 인생의 아주 중요한 원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면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의 본질이 이 치통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것을요.

dreyers.jpg 지독한 치통을 선물해준 맛있는 드레이어스 마차라떼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의 엄청난 차이


우리 모두는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운동을 해야 건강하고, 저축을 해야 미래가 편하며,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보면 다음 날 피곤하다는 것을요. 저에게 "양치를 해야 한다"는 가훈도 그런 '머리로 아는 지식' 중 하나였습니다.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힘이 없는 말이었죠. "오늘 하루쯤이야" 하는 안일함과 "피곤하다"는 즉각적인 유혹을 이기기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하지만 치통은 달랐습니다. 욱신거리는 잇몸, 음식을 씹을 수 없는 고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제 뇌에 "위험! 생존의 문제다!"라는 강력한 경고등을 켠, 뼈아픈 경험이었죠. 그 고통을 겪고 나니, 양치질은 더 이상 해야 할 일 목록에 있는 귀찮은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뜨거운 냄비를 본능적으로 피하듯, 끔찍한 고통을 피하기 위한 생존 활동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아, 인간은 알아서 바뀌는 존재가 아니구나. 머리로 아는 수백 개의 옳은 말보다, 온몸으로 겪는 단 한 번의 고통스러운 경험이 우리를 움직이는 진짜 동력이구나.


우리 안의 원시인을 아시나요?


왜 우리는 이렇게 미련하게 직접 겪어봐야만 깨닫는 걸까요? 그 이유는 놀랍게도 우리 뇌가 여전히 수백만 년 전의 원시인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뇌는 드넓은 사바나 초원에서 생존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눈앞의 열매(즉각적인 보상)를 참지 못하고, 맹수의 그림자(갑작스러운 위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부족에서 쫓겨날까 봐(사회적 고립) 전전긍긍하도록 말이죠.

그런데 세상은 너무나 빠르게 변해버렸습니다. 우리의 원시인 뇌는 아직 적응하지 못했는데, 세상은 온갖 달콤한 유혹(배달 음식, SNS)과 추상적인 위협(주가 하락,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가득 찬 디지털 정글이 되었습니다.

savanah.jpg 나도 저런데서 태어났으면 사냥하고 뛰어다녔을텐데

우리가 밤늦게까지 유튜브를 끄지 못하는 것은 의지박약이 아니라, 눈앞의 자극적인 보상을 참지 못하는 원시인의 본능 때문입니다. 주식 시장이 폭락할 때 공포에 질려 전부 팔아버리는 것 또한, 덤불 속 사자를 보고 도망치는 원시인의 생존 회로가 똑같이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가 싸워야 할 진짜 적은 게으른 내 자신이나 변덕스러운 세상이 아니라, 현대 사회와 끊임없이 충돌하는 내 안의 원시인이었던 것입니다.


원시인과 싸우지 않고 함께 사는 법


그렇다면 이 강력한 원시인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네 안의 원시인이 어떤 존재인지 똑바로 들여다보라


는 뜻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워런 버핏의 평생 파트너였던 찰리 멍거는 한발 더 나아가 아주 현실적인 해법을 제시합니다.


그는 성공하려고 애쓰기보다, '어떻게 하면 완전히 실패할까?'를 먼저 생각하고 그 길을 철저히 피하는 방법을 썼습니다. 이는 자신의 원시인이 저지를 수 있는 어리석은 실수들을 미리 파악하고, 거기에 안전장치를 걸어두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시장이 폭락하면 공포에 질려 다 팔아버릴 원시인이다"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러니 폭락해도 괜찮을 만큼만 투자하고, 시장을 보지 않는 규칙을 만든다"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죠. "나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의 유혹을 이길 수 없는 원시인이다"라는 것을 인정하기에, 애초에 집에 아이스크림을 사두지 않는다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dental.jpg


치통이 제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나의 약점과 한계를 인정하고, 그것을 의지력으로 이겨내려 애쓰는 대신, 그 약점이 발동하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는 나만의 시스템을 만드는 지혜. 내 안의 원시인과 싸워 이기려 하지 않고, 그의 특성을 이해하고 현명하게 동행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인생이란 더 똑똑하고 강한 사람이 되려는 분투가 아니라, 내 안의 어쩔 수 없는 원시인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그가 큰 사고를 치지 않도록 울타리를 쳐주는 과정이 아닐까요. 지독했던 치통 덕분에, 저는 오늘 제 인생의 아주 튼튼한 울타리 하나를 세웠습니다.

아무리 졸려도 치카치카 요정님은 꼭 깨우세요.
양치 안하면, 늙어서 임플란트 값으로 개고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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