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넛 가게를 통해 바라본 호주 일상
1. 15살-호주 아이들은 일을 시작하며 세상을 배운다.
15살 아들이 일을 시작했다. 친구들이 수퍼마켓이나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하며 용돈을 버는 모습이 좋아 보였는지 자기도 일을 찾아보겠단다. 한국이라면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업에 매진을 해야 할 때지만 호주에서는 작은 일부터 직접 해보며 사회를 배워나가는 시기이다. 아이는 인터넷으로 양식을 찾아가며 이력 없는 이력서를 썼다. 은행을 들락이고 상담을 해가며 잔고 없는 통장도 개설했다.
2. 직업의 세계-사장과 알바의 합리적 커뮤니케이션
동네 모퉁이의 도넛 가게에서 연락이 왔다. 2년 전 새 건물에 입주하며 야심 차게 개업을 했다가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장사도 못해 본 불운의 가게였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번쩍이는 새 간판을 안타깝게 바라보곤 했었다.
사장님은 아들에게 두 시간 유급 트레이닝을 시킨 뒤 방학 동안 일할 수 있는 날들을 알려달라고 했다. 4박 5일, 5박 6일 두 번의 여행과 크리켓 트레이닝, 이런저런 약속들을 제하고 나니 일할 수 있는 날들은 들쭉날쭉했다. 일할 의욕이 없어 보이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사장님은 아들의 선약들을 100% 배려하며 일할 시간표를 보내왔다. 이번 주는 월 오후 4시간 금요일 저녁 5시간, 다음 주는 화수토 각기 다른 시간 등등. 고용주 편하게 출퇴근을 일률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각 개인의 스케줄을 모두 고려해가며 모자이크 하듯 시간표를 구성하는 것을 보고 좀 감동했다. 호주에서 여러 해 여러 곳 직장 생활을 하며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노사 간에 노동 시간을 협의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동네 가게 어린 학생들 알바까지도 이리 존중해준다니 말이다. 사장 부부는 아들 또래의 어린 학생들 10여 명을 고용하여 이번 시즌 장사 준비를 하는 듯했다. 10명의 스케줄은 제각기 다 달랐다.
3. 바닷가 비즈니스의 세계
멜번에서 한 시간쯤 떨어진 이곳 바닷가 마을은 조용한 동네다. 그러나 여름이 오면 휴양 관광지로 돌변하여 인구가 10배로 증가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곳 상점들은 한 시즌 열심히 장사하여 일 년을 먹고 산다고 말한다.
한가한 라이 바닷가 앞에 한 달간 카니발이 펼쳐진다. 거대한 놀이공원이 임시로 세워져 밤마다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온갖 롤러코스터들이 이 동네 저 동네로 돌아다니며 조립 해체되는 것도 호주에서 처음 봐 놀랐던 기억도 난다.
아들이 일하는 도넛 가게가 이 카니발이 열리는 바닷가의 맞은편에 있었다. 그러니 밤 11시가 넘도록 도넛 가게는 손님들로 넘쳐났다. 그리 크지 않은 가게에서 10명도 넘는 직원들이 바쁘게 일한다. 아들을 통해 나도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됐다. 이 바닷가가 밤이면 이렇게 변신을 하는 거였구나... 야밤에 도넛 먹는 사람이 이리도 많다니..(한국에서는 일상적일 수도 있겠지만 밤문화가 없는 호주에서는 오후 3-4 시에 문을 닫는 상점이 흔하다.)
아들은 주방에서 도넛 기계로 작은 공 크기의 도넛을 튀기기도 하고 가게 앞의 바에서 주문에 따라 소스와 토핑을 뿌리는 일을 하기도 한다. 어떤 날은 스무디 같은 찬 음료를 만들고 손님을 응대하며 계산을 하는 날도 있었다. 처음엔 토핑 뿌리는 것도 잔뜩 긴장하던 아들이었는데, 이젠 바빠도 손님이 많이 와야 재미있다는 둥 어떤 날은 좀 한가해 청소만 잔뜩 했다며 투정을 부리기도 하는 둥 제법 비즈니스를 파악하는 듯 보였다.
어떤 날은 꼬박 9시간을 서서 일하기도 했는데, 한 시간 주어지는 저녁 휴식 동안 직장 동료와 간단하게 파이를 사서 먹고 바닷가에서 수영을 한 뒤 다시 가게로 돌아가 일을 했단다. 그런데도 어려서 그런지 피곤한 기색이 별로 없다. 늦잠을 자기는 하지만^^
한밤중 아들을 픽업 가면 팔다 남은 도넛을 한 상자씩 들고 올 때도 있다.
'엄마 먹어 봐.. 내가 만들었어..'
따뜻하고 달콤한 도넛을 한입 베어 물며 짠함과 대견함을 느낀다.
아들아 이제 시작이다. 이력도 재력도 필요한 만큼 쌓아가며 열심히 재미있게 살아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