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트램에 얽힌 동화책을 읽으며..

멜번의 명물 'Tram (전차)'이 서울에도 있었다니

by 몽기

지난 5월 한국 방문 때 서울 역사박물관 앞에 전시된 트램을 보고 깜짝 놀랐다. 50년대에 서울 한복판을 다니던 전차를 복원해 놓았는데, 이건 지금 멜번 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 맨날 타고 다니는 그 트램이 아니던가? '모양'도 '페인트 색깔'까지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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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멜번에서 찍은 사진. 빨간 트램도 찍지는 못했지만 지금 멜번 거리를 달린다.

한국인들이 멜번에 처음 오면 '이국적이고 어쩌고...' 하면서 한 번씩 타보는 게 이 트램이고, 호주인들 사이에서도 멜번에서만(시드니 말고) 볼 수 있다 하여 이 도시의 상징물로 자리 잡고 있는데, 이 트램이 왕년의 서울 거리를 지나다니던 전차였다니 정말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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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멜번에 가면, 아들과 트램을 탄다. 시골소년에게 트램은 놀이공원에 간 것 만큼의 효과를 낸다.

그런데, 얼마 후 이 50년대 서울의 전차를 호주에서 책으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느 날 서점을 둘러보다가 귀퉁이에 있는 이 동화책을 발견했다. 'Waiting for Mummy'. 한국인이 저자라는 게 신기해서 펼쳐보니 그림이 너무 예뻐 아들을 생각하며 샀다. 시대 배경이 내가 살았던 시절과는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엄마가 살았던 나라의 과거가 이랬다고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다.(나중에서야 이 책이 한국에서도 유명했던 '엄마를 기다리며' 였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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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번에서 공부하던 시절 맨날 타고 다녔던 녹색 트램이 이 책에 등장한다.

아들은 새 책에 흥미를 보였다. 집에 돌아와 한 장씩 넘기며 같이 읽었다.

추운 겨울날, 아이는 전차 정류장에서 엄마를 기다린다. 전차가 올 때마다 고개를 빼고 기사 아저씨에게 '엄마가 탔느냐?'고 묻는다. 아저씨들은 '내가 네 엄마를 어떻게 아느냐?' 혹은 '엄마 올 때까지 딴데가지 말고 여기서 기다려라'고 말한 뒤 떠난다. 몇 대의 트램을 이렇게 떠나보내면서 정류장을 서성이던 아이는 더 이상 묻지도 못하고 코가 빨개지도록 서서 엄마를 기다린다. 해는 저물고 흰 눈이 쏟아져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났다. '어? 왜 벌써 끝났지? 엄마는 어디 간 거야? 뒷장이 떨어져 나간 건가?' 떡을 다 팔고 온 엄마가 아이를 만나 끌어안는 해피앤딩을 무심코 기대했던 건지 이런 끝이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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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에 책 맨 뒷장의 저자 소개를 읽다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저자 이태준은 전쟁고아였다는 것. 아.... 엄마는 오지 않을 수도 있는 거구나. 엄마도 없는 이 아이가 갈 곳은 있었을까. 그 눈을 다 맞으며 트램 정류장에서 무엇을 했을까. 이 아이는 아직도 그곳에 있을 수 있겠구나...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울어?"

"아니, 울긴.."

아들은 엄마의 눈물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가 예쁘다고, 나도 전차를 타고 싶다고 종알댄다.

사진 105.jpg 지금까지 아무 생각 없이 타고 다녔던 멜번의 트램, 왠지 앞으로는 트램을 볼 때마다 이 꼬마가 생각날 것 같다.

호주에 온 뒤 한국 전쟁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몇 번 있다. 도서관에 가보면 가끔씩 한국 관련 책들을 보는데, 상당수가 전쟁 참전 수기, 전쟁고아 입양기 등등이었다. 첨엔 왜 이리도 구닥다리 얘기들만 늘어놓는 거지 싶었는데, 좋은 역사든 그렇지 않든 이것이 한국의 역사고 이미지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주 마을마다 세워진 전쟁 기념비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되는데, 상당수의 호주 용사들은 베트남 전쟁과 함께 한국 전쟁에서 전사했다. 내가 이런 전쟁의 나라에서 살았던 건가란 생경함이 있었을 정도였는데, 어릴 때 수도 없이 받았던 반공교육에서 '때려잡자 공산당' 같은 호전적인 구호를 태연하게 외치지 않았던가..

전쟁은 이미 끝났고 나는 경험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교육을 당연한 듯 받고 자랐던 것만큼 어쩌면 내가 몰랐던 건 전쟁이 아니라 평화였을 수도 있었으리라.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우리 세대도 아니 지금의 젊은 세대도 사소한 논쟁에서 조차 전투적이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들은 죽도록 적대시하며 서둘러 파를 가르고 생존을 위해 미치도록 경쟁하는 것도 전쟁이 남긴 사회적 후유증이라는 생각을 지금은 한다.


나이를 먹어서인지 어느 전쟁이든 슬픔과 고통으로 다가온다. 월드뉴스를 보면 매일 지구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내가 평화롭게 산책을 할 때도 누군가는 지뢰를 걱정하며 불안하게 한걸음을 떼고, 내가 따뜻한 안식처에서 깊은 잠을 잘 때도 누군가는 야밤의 폭격을 두려워하며 실눈을 붙이리라.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내 주위의 평화에 새삼 감사한다. 세계평화를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야겠다. (2009/8/12 씀)



이수지 동화작가의 수상 뉴스를 보다가 나도 감동하며 읽었던 내 인생 최고의 동화를 떠올려 봤다. 우크라이나 전쟁 난민을 위해 작은 성금을 했고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