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고등학생의 성인식, 데뷰턴트는 이렇더라.

아이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즐거움이란..

by 몽기

호주에서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아들의 데뷰턴트(Debutant)에 다녀왔다. 그날의 풍경과 문화등 소회를 나누어 볼까 한다.


데뷰턴트란 한 마리로 16-18세가 된 자녀가 성인이 됐음을 알리며 사교계에 데뷔시키는 무도회이다. 유럽 왕족들 사이에서 이어져 내려온 문화인데 지금은 사회적으로 그 의미가 다소 축소되고 변화되어 Deb , Prep 혹은 졸업 기념 파티(Graduation Dinner) 등의 이름으로 학교에서 주최를 하는 경우가 많다. 전통문화를 배우고 어린 남녀가 교양 있게 만나 가족들과 함께 어울리며 건전하고 즐거운 시간을 가져보자는 것이 취지일 게다.


학교에서 보내온 통지문엔 수주 간에 걸친 댄스교습, 의상 대여비, 비디오 사진 촬영비등으로 400여 달러가 든다는 계산서도 들어 있었다. 아들은 별관심이 없어 신청도 안 할 거라더니 며칠뒤 한 소녀에게 프러포즈를 받았다며 돌연 태세를 바꾸었다. 좋은 경험이 될 듯해 이전부터 참가를 권유했던 나로서는 좀 떨떨하기도 했다. 엄마의 말보다는 친구의 말에 더 귀 기울이는 걸 보면 성인이 되어가는 것이 맞는 듯도 하고 어쨌든 원하던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었으니 소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할 것도 같았다. 또 아들이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았다는 것이 묘하게 안도가 되고 기쁘기도 하니 이 복잡 미묘한 내 감정이 낯설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전체 11학년 중 3분의 1 정도가 참석을 한다고 했다. 시대가 바뀌어서인지 여자가 프러포즈를 하는 것이 대세인 듯했다. 풋티(럭비 비슷한)를 같이 하는 아들의 친구들도 대부분 소녀들의 부름을 받아 별안간 고전 댄스의 스탭을 익히게 됐다.


그렇게 두어 달에 걸친 교습 시간이 흘러가고 그날이 왔다. 14명의 친구들이 한집에 모여 리무진을 타고 무도회장에 가기로 했나 보다. 멋지게 턱시도를 갖춰입은 아들의 늠름한 모습에 놀라며 친구집에 도착했다. 수영장과 정원이 멋들어진 아름다운 저택이었는데, 집주인은 몇 년 전 결식 학생에게 아침을 해주는 학교 프로그램에서 같이 봉사를 했던 엄마였다. 수요일 아침이면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아침 7시에 학교 주방으로 달려가 토스트 5백 장을 굽는 일을 2년 넘게 같이 했었는데, 그 추레했던 여인의 집이 이리도 멋지다니... 참 내색도 안 하는 수수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반갑게 재회했고 그녀의 남편이 뽑아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사이 다른 학부모들도 한둘씩 도착했다. 소녀들의 부모들이 특히 지출이 많고 바빴는데, 드레스며 헤어 메이크업에 바디 선탠까지 하며 결혼이라도 하는 듯 시간과 공을 들였다. 히유.. 아들이라 다행이다...

리무진이 도착하자 성장을 한 소년 소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들뜨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아이들이 예쁘다 너무 빨리 컸다고 감격을 나누면서도 우린 땐 리무진도 없었는데 구경이나 해보자며 기웃거리는 학부모들. 1시간 대여에 700불이니 비싸다. 그러나 14명이 나눠서 50달러씩 내면 이곳 물가로 우버 택시비와 비슷한 정도라 보이는 만큼 사치를 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아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비용을 직접 냈는데, 16살 이후로 알바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 뎁 비용 전체를 스스로 해결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부모는 그야말로 자기 저녁 티켓만 사면 그만이다.

예전엔 호주 10대들이 외모도 성숙하고 행동도 노숙해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덩치 큰 아이들이 너무 귀엽고 순수하고 어리게만 보인다. 자신의 모습이 낯선지 아이들은 어리버리 했고 그 모습이 또 우습고 예뻤다. 아.. 나도 저럴 때가 있었겠지... 아이들이 탄 리무진이 떠나자 뒤에 남은 부모들은 비슷한 상념에 젖어 눈을 맞추고 미소를 나누며 오늘 저녁에 보자 인사를 하고 각자 떠났다.



저녁이 되어 멜번에 있는 연회장에 도착한 우리 부부는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된 아들 친구의 부모들과 인사를 나누고 또 비슷한 소회와 감격을 나눴다. 대가족이 몰려와 한 테이블을 가득 채운 경우도 많았다. 이윽고 사회자의 안내에 따라 한 커플씩 호명이 되면 이들은 레드카펫을 밟으며 연회장을 한 바퀴 돌았다.

모든 커플이 소개되고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자 테이블에 앉은 가족들은 넋이 나가도록 흠뻑 빠져서 바라보았다. 저 멋진 아이가 내 자식이라니.. 부모로서 이런 자리에 초대되는 영광을 누리다니... 아낌없는 애정과 탄사가 끝도 없이 쏟아졌다. 무아지경으로 자식에 빠져 즐기다가 서로의 자식을 낯간지러울 정도로 치하하기도 하면서 너나없이 드러내놓고 팔불출 부모가 되는 자리이다. 유치원 학예회에 처음 가 긴장하면서도 감동하고 행복했던 그 시간과 흡사했다. 아이들은 자랐고 부모들은 늙었다.

아이들의 댄스가 끝나니 객석에서 파트너를 데려와 춤을 추는 시간이 왔다. 주로 부모나 조부모를 초대한다. 아들과 처음 추어보는 블루스.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기도 하고 정신이 없기도 했다. 나중에 남편이 찍은 비디오를 보니 춤을 추다 친구 커플을 만나 인사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질 않으니 맨 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공식적 댄스가 끝나면 저녁 식사와 함께 자유댄스 시간이다. 60년대부터 최신 댄스 음악까지 흥겹게 섞여 나온다. 예전엔 이런 선곡들이 유행에 좀 뒤처졌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모든 세대를 포함하려고 무던히 애쓴 결과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이와 세대를 떠나 온 가족이 들고 나며 춤을 추는데 힘에 부친 부모들은 줄곧 자리에 앉아 자식을 바라보며 허허실실 웃고 청춘인 아이들은 하이힐을 신고 두 시간을 점프해도 멀쩡하다.

어린 소녀들이 과장되게 성인처럼 행동한다고도 여겼고 굳이 남녀가 함께 춤을 추어야 하는가, 너무 개방적인 건가 같은 비판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막상 겪어보면 너무도 건전하고 가족적인 좋은 문화이고 앞으로도 아들이 이런 자리들을 많이 즐기며 살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이날 저녁 메뉴는 양고기와 닭가슴살. 맛은 있었지만 그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했던..



댑 파티가 끝나고 그 다음날 누군가의 집에서 열린 애프터 파티는 과음과 소음으로 다소 엉망진창. 늦은 밤 픽업을 갔더니 그 집 아빠는 초대하지 않은 친구들까지 몰려들어 감당하기 어려웠고 술에 취한 아이들이 있다며 하소연을 했다. 그 부모를 보고 나는 좀 안도했다. 또래의 아이들이 한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남녀가 어우러져도 너무 관대한 부모들이 있어 심란하고 문화차를 느낄 때가 종종 있었는데, 호주 부모라고 다 용납하는 것도 아니구나 란 생각들.

이제 즐거움을 누렸으니 고민도 짊어지며 부모 노릇을 잘 감당해 나가야겠지....................................



또 다른 무도회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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