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음식을 처음 만났던 순간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먹고 마시는 습관이나 방식이 예전과는 좀 달라진다. 내 경우를 보자면 맵고 짠 자극적인 음식을 덜하게 되기도 하고 (원래도 밋밋하게 요리를 하는 편이지만) 일찍 자는 아들을 염두에 두어 저녁을 일찍 먹게 된다. (5-6시 사이에 주로 먹는다.) 또 아이와 외출할 때는 간단하게라도 도시락을 싸서 공원이나 놀이터에 앉아 먹고 간혹 사 먹는 메뉴도 김밥이나 피자 같이 들고 돌아다니며 먹기 편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분위기 있고 맛 좋은 레스토랑은 아들과 함께라면 드나들지 않는데 여유 있게 앉아 즐기며 맛을 음미하기도 어렵고 혹시라도 남들 피해 주는 것도 싫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늘 대하던 어떤 음식들이 새롭게 다가와 내 삶에 의미 있는 감동과 추억을 만들어주기도 하기에 오늘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1. 아이스크림
아들이 두 살 반쯤 됐을 땐가.. 어느 무더운 여름날 외출을 했다가 수퍼에 들렀다. 냉동고에 아이스크림이 보이길래 두 개를 사 들고 나와 수퍼 앞에서 먹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동네 수퍼에 달려가 군것질 거리를 사 먹는 일이 흔하지만, 호주 특히 내가 사는 동네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필요한 간식들은 한 번씩 쇼핑센터에 가서 잔뜩 사와 집에 비축해 놓은 뒤 이걸 때마다 챙겨 들고나가 먹는다. 작은 수퍼가 곳곳에 있는 것도 아니고 밀크 바(동네 식품점)에서 개별로 사 먹다 보면 가격도 훨씬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의 호주 가정도 동네 수퍼에서 수시로 간식을 사다 먹는 일은 드물다.
아들은 그때까지 한 번도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손에 쥔 바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엄마가 하는 데로 조심스럽게 입에 댔다. 그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맛이 있었던 거다. 그는 입을 크게 벌려 녹아드는 쵸콜렛이며 아이스크림을 연방 핥고 빨고 삼키며 말을 잃었다. 혀 끝에서 느껴지는 황홀한 맛에 정신을 쏙 뺏긴 듯했다. 이어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좀 더 집중하고 싶었나 보다. 커다란 아이스 바를 하나 다 먹는 동안 그는 말이 없었고 초점 잃은 눈을 잠시 떴다가 지긋이 한참을 다시 감았다. 태어나서 아이스크림을 처음 먹던 아들의 모습은 지금껏 추억의 명화 속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서 돌아간다.
2. 껌
지난봄, 한국에서 친구 차를 같이 타고 여행을 다니던 중이었다. 또래의 친구 아들이 갑자기 껌을 하나 아들에게 불쑥 내밀었다. 아들은 네 살이 다 되도록 껌을 씹어본 적이 없었다. 그는 조그맣고 납작한 껌 조각을 받아 들고 눈을 껌뻑 댔다. “이게 뭐야?”
난 아들에게 껌을 소개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건 껌이란다. 씹으면 쫄깃하고 단물이 나오지. 하지만 절대로 삼키면 안 돼. 먹는 게 아니라 씹기만 하는 거니까. 자, 입을 벌려봐라.”
반 조각을 잘라 새처럼 벌린 입에 넣어줬다. 아들은 입에 들어온 이물질에 잠시 머뭇댔으나 이내 짙은 바닐라 향과 씹을수록 쏟아지는 단물에 매우 놀란 듯했다. 차 뒷좌석에 편하게 앉아있던 그는 갑자기 등을 꼿꼿이 세우고는 매우 신중하고 사려 깊게 턱을 움직였다. 난 그 옆에서 계속 훈수했다. “달다고 삼키면 안 돼. 이건 과자나 사탕과는 다르니까. 이건 껌이란다. 껌”
사실 그건 풍선껌이었다. 아들에게 풍선 부는 것도 보여줄까 하다가 너무 많은 진도로 부담을 주는 게 아닐까 싶어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 이후로 아직껏 껌을 한 번도 안 씹었다. 조만간 풍선껌 한 통 사야겠다.
3. 솜사탕
얼마 전 옆 마을 스네이크 밸리(Snake Valley)에 지역축제가 있어서 놀러 갔다. (이 마을 이름을 직역하면 “뱀사골”이 된다. 한국이나 호주나 깊숙한 산골엔 뱀이 많아 동일한 이름의 마을이 있나 보다.) 근데 생각 외로 사람도 없고 프로그램도 심심해서 다소 실망한 가운데 이대로 집에 가기엔 좀 섭섭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무대 옆에 작은 수레를 놓고 솜사탕을 만드는 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아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주자…
아들을 번쩍 안아 주문한 솜사탕이 둘레둘레 만들어지는 모습을 보여줬더니 재밌어했다. 근데 한껏 부푼 솜사탕을 손에 쥐어줘도 그냥 들여다보고만 있다. 이걸 가지고 놀라는 건지 먹으라는 건지 개념조차 없는 상태였다. 산신령 수염처럼 길게 쭉 찢어 입에 넣고 먹었더니 아들은 내가 장난치는 줄 알고 키득대며 웃다가 자기도 따라 했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잠시 사라졌다. “어, 이게 뭐야. 장난이 아니었쟎아” 그는 폭신한 단맛을 제대로 본 뒤 나에게 배시시 미소 지었다. 그 모습에 나도 웃음이 절로 났고 우리는 손에 쥔 솜사탕을 다 뜯어먹도록 한참을 낄낄거렸다.
가끔씩 아들에게 이런 것들을 보여주고 가르쳐주면서 삶의 즐거움을 느낀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 앞에 서면 가끔은 내가 참 오래 살았고 정말 많은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자부심도 느낀다. 또 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알아가고 성장하는 아들을 보며 무한한 사명감을 느끼기도 한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내가 깨닫고 겪고 헤쳐온 시간들을 자녀의 삶 속에 잘 녹여내야 한다는.
지금까지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자라주어 고맙고 이런 사소한 일들로 많이 웃을 수 있어서 정말로 감사하다. (201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