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엄마가 이브닝드레스를 빼입고 나타났다. 우린 하이힐을 신고 비포장 시골길을 걸어 무도회장으로 향했다.
지난 주말엔 마을에서 무도회(Second Deb Ball)가 열렸다. 몇 주전부터 지역신문에 광고를 했는데, 옆집 엄마들이 가자고 했다. 처음엔 사교춤을 출 줄 모르고 관심도 없다고 거절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유치원 엄마들 사이에서 열기가 뜨거워졌다. ‘파트너 없어도 된다. 춤 안 추어도 된다. 나도 그냥 앉아서 얘기만 할 거다. 드레스 없으면 빌려줄게…’
그래서 금요일 밤, 된장국에 밥을 말아 이른 저녁을 먹고 무도회 갈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빌려온 치렁치렁 자줏빛 빌로드 드레스를 입고 몇 년 만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뒤 하이힐까지 신었다. 우리집 앞으로 온 옆집 엄마를 만나 같이 걸었다. 무도회장(마을회관)은 불과 150 미터 거리였다. 긴 드레스를 질질 끌고 흙먼지 일으키며 살랑살랑 걸어도 쳐다보는 이 하나 없다. 마을의 모든 이들은 이미 무도장에 가 있었다.^^ 조그만 마을의 무도회장은 이미 차를 델 수도 없을 만큼 붐볐다. 온갖 드레스와 턱시도를 입은 이들이 문 앞에서부터 심상챦은 분위기로 있었다.
호주 혹은 서양에서는 18세에 이른 소녀들을 사교계에 소개하기 위해 Debutant Ball을 개최하는 전통이 있다.(영화에도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지금도 유럽 귀족 가문이나 미국 등의 명문가 자녀들이 모이는 세계적 규모의 무도회가 공공연히 열리는데, 요즘 호주에서는 본래의 의미는 많이 퇴색했고 주로 고등학교에서 졸업 파티를 하는 걸로 대신하곤 한다.
하지만 불과 2,3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무도회는 매우 흔하고도 중요한 사교의 장이어서 많은 소녀들이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사교춤을 배우고 부모의 손을 잡고 무도회를 다니는 게 중요한 일과였다고 한다. 아주 수수한 옆집 엄마의 집에 갔더니 옷장에 젊은 시절 입었다는 이런 무도회용 드레스가 20여 벌은 돼서 놀랬다. 결혼 전에 아빠랑 무도회를 많이 다녔다는 거다. 한창 때는 일주일에 3-4일을 무도장에서 보낼 만큼.
목발을 짚고도 왕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노부부.
약간의 입장료(이날 수익금은 12월에 있을 마을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쓰일 거란다. 이 마을 사람들은 맨날 놀 궁리..^^)를 내고 예약해 놓은 테이블에 앉았다. 이미 몇몇 커플이 라이브 음악에 맞춰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었고 사람들도 속속 자리를 채웠다. 옆집 엄마가 냉장해서 가져온 샴페인으로(이곳 사람들은 자기가 마실 주류를 챙겨 들고 다닌다.) 목을 축이며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니 맨날 작업복 입고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너무도 멀끔하게 차려입고 와서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곧이어 무도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됐다. 참, 이날 무도회는 ‘세컨드 댑’이라 해서 그냥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놀자고 하는 거였다. 어린 소녀들이 긴장하며 정식으로 데뷔하는 무대가 아니고. 왕으로 분장한 부부가 백파이프 부는 이를 따라 등장하고 오늘 사교계에 데뷔하는 커플들이 하나씩 들어와 왕께 인사하는 절차를 거쳤다. 사회자는 커플(주로 마을의 노인들)이 입은 드레스에 대한 설명을 하거나 이들이 실제 거쳤던 첫 번째 무도회에 얽힌 사연들을 재미나게 소개해 주었는데 예를 들자면, ‘이 여인이 입은 드레스는 50년 전 콜린스 스트릿(멜번 최고의 패션거리)의 아무개 디자이너가 만든 거랍니다. 그리고 파트너가 입은 턱시도는 … 그냥 세탁소에서 빌린 거지요. 뭐.. ‘하는 식. 여자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꽃처럼 대접받고 파트너는 이를 위해 맨날 희생되는 분위기다.^^
90을 넘긴 마을의 원로 할머니가 이웃의 손을 잡은 채 살랑대는 드레스를 입고 둥장하셨다.
왕이 무도회의 시작을 선포하자 대략 10 커플은 됐던 이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뒤로 빼는 이 없이 참으로 자연스럽게 당당하게 흥겹게 춤추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늙고 주름지고 뚱뚱한 것을 개의치 않고 개성 있게 최대한 꾸미고 와서는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돌고 돌린다. 그리고 뒤이어 자유 댄스 시간이 오자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스스럼없이 일어난 커플들이 파트너의 손을 끌고 또 흥겹게 춤을 췄다. 스텝이 몸에 붙은 듯 남녀노소 모두가 척척 호흡이 맞았다. 50-80년대의 듣기 편안한 음악이 주로 연주되거나 불려졌는데, 엘비스 프레슬리, 펫 분, 아바의 노래 등이 익숙했다.
코미디가 빠질 수 없다. 애 아빠의 분장에 사람들이 배꼽을 뺀다. 사진 동호인들은 일상복을 입고 촬영에 집중. 모두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즐겁다.
동네 수퍼마켓 사장님 부부.
나이 든 할머니가 한껏 멋있게 꾸민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젊은 여자들이 외모에 너무 신경을 쓰거나 성형수술 명품 등에 혹하는 모습을 보면 왠지 깝깝하고 ‘젊음이 아깝다’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반면 할머니들이 곱게 화장을 하고 나풀대는 옷을 입고 여성성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늙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또 가족이나 다양한 세대의 사람들이 한자리에서 함께 춤추며 삶을 즐기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할아버지가 손녀의 손을 잡고 나와 스텝을 가르쳐 주는 모습이나, 애아빠가 된 손자가 꼬부랑 할머니랑 춤을 추며 드레스를 챙겨주는 모습들.. 파트너를 바꾸며 춤을 추다 보면 이웃도 만나고 사돈도 만난다. 모두들 너무 신이 난다는 표정이다. 길지도 않은 인생, 힘들고 바쁜 일상 속에서 이렇게 한 번씩은 흐드러지게 웃고 놀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사교춤도 배우고 다음엔 남편 아들과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도 해봤다.
90넘은 할머니 인기 폭발. 자리에 앉을 틈이 없으시다. 마을 꼬마가 장성해 애아빠가 되어 춤을 청한다.
베스트 커플 시상도 하고. 할머니와 손녀가 함께 한 컷.
10시 반을 넘기자 밤참으로 케잌이 나왔다. 이 늦은 시간에 어쩌라고… 하지만 너무도 맛있는 스펀지 케잌인지라 두툼하게 한 조각 썰어 배불리 먹고 기타의 케잌으로 입가심을 했다.;; 이 동네 여인들은 각자 시그니쳐 케익이 하나씩 있다. 유명 제빵사가 감히 넘볼 수 없는, 평생을 수련해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구워내는 내공이 어마 무시하다.
우리 잘 늙고 있는거지?
무도의 열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우리는 자정을 넘겨 무도장을 나섰다. 이번엔 우리 동네 이장님께서 귀가길에 합류했다. 별이 총총이는 시골 밤길을 셋이서 걸었다. 이장님 왈, ‘요새 젊은 애들은 이 맛을 몰라. 맨날 어두운 데서 비비적대고. 우리 땐 얼마나 좋았는데.. 매일 밤 무도장 가는 맛에 하루하루를 살았다고…’ 나도 이런 좋은 문화가 점점 퇴색되어 호주 시골 귀퉁이에서나 한 번씩 열린다는 게 아쉬웠다. 한국이나 호주나 현대인들은 삶의 여유나 즐거움을 좀 잃어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음악이 바뀌면 스텝도 정확하게 따라 바뀌었다.
**우연히 다음날 에이지 신문에서 Debutant Ball (성년 무도회)에 관련된 기사를 읽었다. 발라렛 시의 어느 자선 단체가 학교를 일찍 떠났거나 미혼모가 된 등등의 이유로 성년 무도회를 겪지 못한 젊은 여인들에게 무도회를 열어주기로 했다는 거다. (마치 한때 구청에서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무료 단체 결혼식을 주선하던 것처럼) 한 여인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다. "미혼모가 되어 고등학교도 못 마쳤다. 내 생애에 성년 무도회는 더 이상 없을 줄 알았다. 몇 년간 단절됐던 아빠의 손을 잡고 무도회에 갈 것이다. 나는 이제야 다시 ‘보통 여인으로의 삶’에 들어섰음에 감사한다." 성년 무도회가 호주의 어떤 여인들에겐 이런 의미가 있는 삶의 절차였나 보다. (2009/10/27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