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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30. 2021

호주 시골, 소년들의 '캠핑'은 이렇게 다르더라.

보이 스카우트의 시작은 여기가 아닐까?

아들이 친구로부터 생일 초대를 받았다. 할아버지 농장에서 파티와 캠핑을 하겠으니 그리로 오라는 것이었다. 자기네 넓은 농장 놔두고 왜 할아버지네 일까...

어쨌든 초행길을 조심해서 달려갔더니, 역시나 대문에서부터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풍선을 따라오라는 안내말이 이어지고 (어떤 이는 농장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우리 차를 만나 간신히 따라오기도;;) 그렇게 몇 킬로를 달려들어가니 천지사방 횅한 벌판 어드메의 작은 골짜기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들이 묵을 텐트와 자기들이 묵을 텐트를 세우고, 온갖 먹을 거며 놀거리들을 트럭에 한가득 챙겨 온 아이의 부모는 이날 아침 9시부터 하루 종일 이곳에서 파티를 준비했단다.  강가 주변에 방풍 안전막을 세우는 것부터 시작해 주변의 나무를 거둬 본파이어(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캠프화이어)도 준비하고 했으니 둘이서 얼마나 동동대고 일을 했을까 싶다.   


요즘 이곳은 겨울이라 추운 날씨가 연이어지고 있는 데다가 이런 허허벌판에서는 칼바람이 살을 에이는 듯 날카롭다. 도대체 무슨 영광을 보자고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가 싶었다.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이런 말을 했다. 남편이 어릴 때 자기 아빠와 함께 이곳에 와서 캠핑을 하곤 했었단다. 아이는 어른이 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바쁘게 사느라(이 아들은 장성해서 아일랜드에 갔다가 그곳에서 아내를 만나 결혼한 뒤 이곳 고향으로 돌아와  사는 중이었다.) 한동안 어린 시절의 캠핑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자기 아들이 7살이 되자 불현듯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더라는 것이었다.   

"그래, 내 아들에게 놀라운 선물을 해주자. 그토록 즐거웠던 아빠와의 시간들을 내 아들에게 돌려주자."   

아빠는 아들에게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들려주고, 자기들만이 알았던 이 구석지고 비밀스러운 캠핑 장소를

오늘 생일을 맞은 아들에게 공개하며 소중한 유산처럼 추억을 대물림하겠다는 것이었다.   

아!!!!!!!! 그렇구나. 생각보다 가치 있는 노동이었네!!!     

학교를 마치고 이곳에 도착한 아이들은 이미 신이나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을 안 해도 다 아는 듯했다. 사방으로 날뛰며 나무를 주워 모았다. 그 아이들을 쫓아 주변 풍경을 보니 세상이 너무 아름다운 것이 아닌가!  완만한 골짜기와 넓은 들판, 끝없이 이어지는 작은 시냇가, 저물어가는 저녁 해, 타오르는 모닥불. 세상과 격리된 듯 깊고 깊은 산골, 천지사방엔 우리 밖에 없었다.    

저리 긴 나무도 맨손으로 옮기고 땅을 구르고 나무를 기어오르고.. 그렇게 설치며 살아 날뛰는 아이들을 보며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본성 그대로의 삶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란 생각을 절로 하게 되었다.   

현대의 문명화된 삶이란 인간을, 아이들을 얼마나 억압하고 자연으로부터 격리시키며 야성과 남성성 인성을 변질시키고 있는가... 이런 시간을 경험하지 못한 어린아이들이나 인간이 과연 혹은 행여 행복을 알 수나 있는 걸까?라는.    

이런 시간의 가치를 충분히 공감하고 인지했던 사람들이 모여 소년들의 야성을 보호하자고 주창해서 생긴 모임이 세계 보이 스카우트 연맹이 아닌가 싶다.     


너무 추워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겠지만 모닥물을 둘러싸고 앉아 닭꼬치도 구워 먹고 케이크도 먹었다. 곧이어 짧은 겨울 해는 넘어갔고 깊은 시골 밤하늘은 초승달과 쏟아지는 별무리만 한가득이었다.


불꽃놀이가 시작됐다.  

국경일도 아니고 신년을 맞는 것도 아닌데, 대형 축포가 빠바 방 하늘을 울렸다. 땅이 넓어 그런 건지, 이곳의 스케일에 나는 늘 놀란다. 개인 생일 파티에 이런 크기의 불꽃놀이는 또 처음이다. 어쨌거나 소음도 불꽃도 환상 그 자체였다. 눈앞은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잠시 사진을 찍으려 플래시를 터뜨렸더니 아이들이 모두 바닥에 배를 깔고 있었다.  저 질척대고 차가운 땅에 엎드려 밤하늘의 불빛을, 별빛을 바라보다가 또 별안간 일어나 괴성을 지르고 춤을 추고 야광스틱을 흔들며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즐거움을 누리는 듯 보였다.      


나는 이 동네의 멀쩡한 아이들이 왜 맨날 구멍 난 옷을 입고 거지꼴을 하며 다니는지 이제는 이해한다. 시골 아이들은 옷이 작아져서 못 입는 게 아니고 떨어져서 못 입는다. 무릎이고 팔꿈치고 아무리 덧대도 이틀을 못 넘기니 그냥 구멍 난 채로 입고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날 일정이 있어 캠핑은 사양하고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날씨가 너무 추워 좀 꺼려졌고

아직은 아들만 맡기기엔 너무 어리단 생각도 한편에 있었다. 그런데 몇몇 꼬마들은 부모의 품을 벗어나 이곳에서 캠핑을 했단다. 대담한 부모들인지, 아이들인지..^^   


이날 들었던 생각들 중 하나는,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멋지게 등산복 갖춰 입고 온갖 캠핑 장비 다 챙기는 그런 것 말고 가장 걸레 같은 행색으로 산에 들어가

자연이 주는 유익을 온몸으로 다 누리다가 땀과 진흙으로 범벅이 되어 거지꼴로 하산하는... 그런 삶의 부분은 여유나 사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건강과 행복을 위해 필수적으로 확보되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좋은 부모에 대한 고민이었다.

Spending time with children is more important than spening money on children.

아이에게 돈을 쏟아붓지 말고 시간을 같이 보내라는 그 흔한 명언이 가슴에 사무치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눈빛이, 호흡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확인한 이상 이런 즐거움을 뺏아가는 잔인한 어른이 이제는 차마 될 수 없는 것이다.(2013/06/23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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