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결혼을 일주일 앞둔 주말, 신부의 여자 가족들이(엄마와 언니 여동생, 올케 등) 준비한 가든파티에 초대되어 갔다. 호주 결혼 풍습에는 신부가 친구들과 하는 핸스 파티(Hens party)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키친 티'라는 파티가 있어 신부 주변의 여러 연령대의 여성들이 주방에 모여 결혼에 대한 조언도 하고 부엌 용품 위주의 신혼살림을 선물도 하곤 한단다. 요즘 호주의 젊은이들은 결혼도 안 하고 사는 경우가 많아 이런 파티까지 챙기는 경우는 드물다고 하는데 이 가족들은 교회의 할머니들에서부터 엄마 친구들 신부 친구들 등 주변 여인들 3-40명을 불러 '키친 티' 대신 정원에서 파티를 열었다. 이름하여 '가든 티' (Garden Tea). 이 날은 여자들만을 위한 파티라 이 집 남편과 아들들은 모두 외출을 했다.
일단 사방이 탁 트인 목장 한가운데 담장 치고 사는 이 분들의 집이 어찌나 목가적이던지.... 사방 10킬로 이내에는 이웃이 없는 듯하고 이런 거리가 이곳에선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예전엔 이렇게 뚝 떨어져 인적 없는 곳에 사는 게 무섭고 외롭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이런 삶에 대한 동경이 조금씩 생긴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샌드위치 등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엄마와 딸이 앞에 나와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게임을 했다. 한 손으로 남편 아침 준비하고(토스트에 버터 바르기) 빨래 널고 아기 기저귀 갈고 등등의 살림을 누가 빨리 잘하는가 같은 것들. 게임을 지켜보는 이들은 이런저런 훈수를 던지고 엄마와 딸은 주부의 잡다한 집안일을 서로 크득이며 하는데, 신부수업을 한다기보다는 지나간 과거의 주부의 역할을 재미 삼아 게임으로 해보며 노는 정도로 봐야 할 듯했다. 주변을 보면 살림은 호주 남자들이 더 잘하는 듯하다.
초대된 손님들은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을 방명록 같은 노트에 돌아가며 적어 신부에게 주기도 했다. 80대 할머니부터 20대 친구들까지 저마다 결혼생활의 지혜를 한 마디씩 해주는 것이다. 세대를 막론하고 여성이란 동질감으로 묶여 다 같이 편하게 한자리에서 웃고 즐길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참으로 느리게 여유 있게 한나절을 보내면서 결혼을 이렇게 재미있게 여유 있게 의미 있게 준비할 수 있다는 게 부러웠다.
초대장에는 신부가 신혼집 정원을 꾸미는데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어차피 결혼 선물 한 가지씩은 들고 올 터인데 필요한 것을 편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현실적이면서도 소박하다고 생각했다. 게임을 마치고 난 뒤 예비신부는 자리를 잡고 앉아 받은 선물을 하나하나 풀며 기쁨을 나누고 카드도 한 장씩 천천히 공들여 읽으며 각 사람과 눈을 맞추고 고마워했다. 그 속도가 너무 느려서 좀 놀라기도 했다.
갖가지 정원 용품들이 결혼 선물답게 예쁘게 포장되어 전달되는 것도 신선했다. 가령 땅을 팔 때 쓰는 커다랗고 무식한 삽자루도 잔잔한 꽃무늬 프린트가 든 분홍 포장지에 감싸여 리본을 손잡이에 매달고 있었다. 정원용 장갑이나 꽃씨 물뿌리개부터 화분 꽃나무 정원 장식품 등등.. 종류도 다양한 선물들이 주어졌다. 난 좀 뜬금없는 아시안풍 국사발 세트를 선물했는데 (시리얼 우유에 말아먹을 때 쓰라고..^^) '정원에서 아침 먹을 때 쓰겠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곳에 모인 거의 모든 여인들이 이구동성으로 정원일이 살림보다 훨씬 즐겁고 보람차다며 그 이유로 '살림은 해도 티가 안 나는데 정원 일은 하는 만큼 티가 팍팍 나기 때문이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살림의 특성은 동일하며,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인정받을 때 보람을 느끼는 존재란 생각을 했다. 살림과 육아가 얼마나 중요하고 값진 일인지를 사회적으로나 가족 구성원들이 정확히 인정해주고 사회로의 복귀를 지원해주면 상당수의 여성들이 바깥일을 일정 기간 접고 가정 일에 열심 내며 무지 행복해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다. (2009/3/3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