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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16. 2021

호주, 개인 저택의 정원이 놀라워.

바농길 정원을 걸으며.

바농길 가든(Banongil Garden)에서 수선화가 가득 핀 정원을 대중에게 공개한다는 광고를 지역신문에서 읽었다. 집에서 가깝기도 하고 몇 년에 한 번씩만 드물게 공개하는 개인 정원이라는 설명에 호기심이 생겨 찾아갔다. 호주는 정부 차원에서 공공 혹은 개인 소유의 대저택과 정원을 일반에게 개방하는 것을 장려하는 프로그램(National Open Garden Scheme)이 있다. 가드닝을 홍보하려는 건지, 작은 관광자원을 활용해 지역경제를 격려하려는 건지 목적은 잘 모르겠지만 이들이 해마다 발간하는 책자를 보면 올해 전국의 크고 작은 정원이 언제 어떤 식으로 개방되니 이렇게 찾아가서 저렇게 즐기라는 식으로 홍보가 상세히 되어 있다. 규모 있는 개인 소유의 정원이 전국에 수도 없이 많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바농길 가든도 이를 통해 전국적으로 홍보가 되어서인지, 혹은 정원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또 부지런히 이런 기회를 찾아다니는 지라, 조용하고 외진 시골 마을이지만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줄을 이었다.   

수십 에이커에 달하는 넓은 땅에 수영장 테니스장을 갖춘 대저택은 물론이고 온갖 꽃과 나무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정원은 여유롭고 부유했고 평화로웠다. 내내 돌아다니며 든 생각은 이만큼 관리하려면 얼만큼의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 걸까 라는 것. 우리 집 작은 마당 잡초 뽑는 일도 이리 벅찬데 말이다. 물론 이 사람들은 무수한 정원사를 고용하고 있지만서도.;;

놀라웠던 건 이리 좋은 집과 정원을 공들여 가꿔 놓고는 정작 주인이 딴 데서 산다는 것이었다. 이 집은 대부분 빈 채로 있으며 가끔씩 할러데이 하우스로만 쓰인다고 했다. 그냥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함께 간 지인들과 집과 정원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한가롭게 거닐면서, 부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한국과는 참 다르다는 걸 느꼈다.  

개인 소유의 땅을 공개해서 여러 사람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해 주고, 입장료 등 수익금을 기부해서 지역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점등을 얘기하며 고마워했다. 이 마을에서 성장한 이 집 주인은 어릴 때 난독증이 있을 만큼 학업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인물인데, 이후 부동산 업에 손을 대 크게 성공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런 이야기들 조차도 부끄러운 과거를 들춰내거나 질투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았고, 잔잔한 미담 내지 인간 승리의 야야기로 들렸다. 나도 내 주변의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더 배웠거나 덜 배웠거나 하는 이들을 시기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고 싶어졌다.   

로열 보타닉 등 공공 가든은 여러 군데를 다녀봤지만 이런 규모의 개인 정원은 처음 가봤다. 아기자기함이나 오목조목함과는 거리가 있는 자연스러움과 텅 빈 벌판 등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수선화 축제라고는 했지만 이 꽃들로 뒤덮여 있지도 않았다. 어떤 구석은 잔디를 짧게 깎은 것 외에는 사람 손이 닫지도 않은 듯 평범하고 수수했다. 

정원을 돌아본 뒤, 임시 설치된 야외 카페테리아에서 차가운 음료수로 목을 축이다. 토요일 오후, 따뜻한 봄햇살 맞으며 지인들과 별 얘기 나누며 거닐 수 있음에 감사했다.  (2009/03/23씀)

집에 돌아 와 뒷마당에 꽃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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