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골 작은 마을 스킵튼엔, 할리웃 유명 여배우의 저택이 있다. 해마다 밸런타인데이 즈음엔 이 저택을 대중에게 공개한다고 하는데 우리 사는 집에서 멀지 않아 구경하러 갔다.
저택으로 들어가는 길. 비포장 도로를 달려 대문을 지난 뒤 다시 한참을 지나면 주차장이 나온다. 거기다 차를 세우고 또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현관이 나온다..
할리우드 스타 클레어 아담스의 사랑
1920년대 무성 영화 시절 인기를 몰던 할리웃의 대스타 클레어 아담스. 그녀는 런던의 어느 파티에서 호주 출신의 부호 목축업자 스코비 매키논을 만난다. 첫눈에 사랑에 빠져 3주 만에 전격 결혼을 한 뒤 애마 더비 밴틀리를 타고 유럽과 미국 등지를 돌며 1년간 달콤한 허니문을 마친 커플은 남편의 목장이 있는 호주 시골 스킵튼에 정착하기로 한다. 1937년의 일이다. 호사가들은 할리우드 물먹은 여자가 이 한적한 시골 깡촌에서 얼마나 견딜까를 궁금해했다.
근 10년간 46편의 무성영화에서 맹렬히 활동했던 여배우는 그러나 결혼 뒤 단 한 번도 할리웃 영화판을 기웃대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전형적인 호주 시골 저택(무라몽)을 당시 최신 할리웃 스타일로 화려하게 멋들어지게 꾸미고는 온갖 유명한 국내외 인사들을 불러들여 파티를 열고 삶을 즐겼다. 그녀는 이 저택에서의 시간들을 16밀리 필름으로 직접 수십 년간 찍었는데, 최근에 일부가 다큐멘터리로 공개되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직도 150여 통의 필름이 개봉되지 않은 채 그녀의 서재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당시의 호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화려하고도 특별했던 그들의 삶이 한 꺼풀씩 세상에 공개될 예정이란다.
하지만 허공을 겉도는 유명세와 화려함이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2차 세계대전으로 세상이 신음할 때 이들의 목장은 산불과 가뭄으로 고통받았다. 대도시로 훌쩍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 이들은 저항하며 힘겹게 거친 땅을 지켰고 기부와 자선을 통해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관대하게 돌봤다고 한다. 이들은 자녀 없이 세상을 떠나며 수백억에 달하는 전재산을 사회에 헌납했고 커플의 유골은 저택이 바라보이는 수영장 옆에 지금도 함께 묻혀있다.
그녀는 멋을 알고 사랑을 진지하게 하고 인생을 즐기고 나눌 줄도 알았던 진정 아름다운 여자였기에 지금도 마을의 여러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 것이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서 내부를 직접 찍지 못하고 대신 에이지 신문에서 스크랩했던 기사(이미 차속에서 구겨져 있던 것을 다시 펴가며..)를 다시 찍어 올렸다.
저택 내부는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다소 소박함도 느껴진다. 이미 70년이 지난 시점이라 그럴 수도 있겠고, 그동안 종종 웅장한 저택들을 심심찮게 봐와 내 눈이 좀 높아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ㅎ
놀라왔던 건, 이 집이 70년대에 헌납된 상태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 여주인이 마지막까지 살았던 그 순간에서 시간이 정지한 것처럼 옷장엔 그녀의 옷들이 가득 걸려 있고 화장대엔 그녀가 쓰던 화장품들이 반 병 정도 남은 상태로 변질되어 그대로 있다. 욕실에 가면 비누거품 얼룩까지 바닥에 남아 있으니 어제까지 여기서 살았다 해도 믿을 정도로.
또 여배우답게 홈시어터 설비를 갖추고 있었는데 요즘의 그것과는 달리 커다란 필름 영사기와 두툼한 필름 꾸러미들이 잔뜩 쌓여있어 시대를 느끼게 했다. 고전적 가구와 책들로 가득 찬 거실 한쪽에서 이 영사기를 돌려 영화를 보며 자신의 전성기를 그리워했을게다.
그녀가 특별히 사랑했던 곳.
침실의 통창문으로 이곳이 훤히 내다보인다.
강아지를 데리고 구경온 관람객. 사람들은 기분을 내려고 클래식 차를 타고 오거나 할리웃 풍의 옷을 입고 관람을 했다.
저 지붕 아래서 재즈 악단은 연주를 하고 그녀는 최신의 수영복을 입고 사교계의 친구들과 풀파티를 즐겼다.
그런 영화의 한장면 같은 흑백 사진들이 저택 곳곳에 걸려있었다.
저택안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화려한 부분은 하나도 못찍고 하인들이 주로 일하는 허접한 외부의 별채들은 뭐라 하는 이가 없어 몇장 찍었다. 이곳은 세탁실
당시를 재연하듯, 수영장 옆에선 작은 악단이 50년대 재즈를 연주하며 분위기를 돋웠고, 이 저택 보전 후원자들이 참석하는 간단한 칵테일파티도 열렸다. 이 수영장은 당시 빅토리아 주에서 가장 큰 개인 수영장이었으며, 이 저택은 당시로선 보기 드물게 수세식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다는 설명도 들었다.
나이 드신 마을분들 중엔 이 배우를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너그럽고 관대했다는 게 평이었다. 그녀가 이 동네 초등학교에도 장학금을 기부해 지금까지도 수혜가 이어지고 있다는데, 전교 80명의 작은 시골 학교가 일 년에 한 번씩 캠프를 멀리 가는데 그 비용이 이 장학금에서 충당된다고 주변의 학부모들이 얘기를 했다. (나중에 아들이 그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정말로 수혜를 받았다.) 이 날의 모든 입장료와 수익금도 마을 발전을 위해 기부될 것이라 했다.
이런 아름다운 삶과 따뜻한 이야기... 명성과 화려함에 지배당하지 않은 한 여배우는 이곳에서 이렇게 행복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 2009/2/24 씀)
여행 트렁크등을 쌓아놓은 오두막. 유럽과 헐리웃의 뉴 트랜드를 엄청 실어다 날은 흔적. 그래서 이 저택을 호주 숲속의 헐리웃 오아시스라고 부른단다. 매우 단순한 일꾼들이 묵던 방.
유제품 방. 우유나 치즈를 만들어 주방에 공급했던 오두막. 이 농장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을 자급자족 했던듯. 고기를 다루는 도살장과 푸줏간도 별채로 한채씩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