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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ug 31. 2021

호주 시골, 여인들의 ‘가든파티’에서 했던 단상들.

나눔과 기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주인장 집 앞마당에 그녀가 직접 키우고 만든 것들을 파는 작은 가게가 열렸다.

마을의 한 여인이 자신의 가든에서 ‘Plant Swap’ 파티를 열었다. 말 그대로 자기 정원에서 가꾸던 꽃이나 나무들을 잘라 혹은 파 가지고 와 서로 교환을 하자는 모임이었다. 가드닝에 취미가 있는 이들에게는 자기 마당의 남아도는 꽃들을 가져와 나누고 따로 돈을 들이지 않고도 다른 정원에 있는 예쁜 꽃들을 얻어 갈 수 있으니 구미가 당기는 제안 이리라.

몇 년간의 가뭄으로 꽃들이 말라죽어 텅 빈 공간을 뭐로 채우나 고민을 하던 차에, 잘 가꿨다는 그분 집과 정원도 구경할 겸 파티에 갔다. ‘레옹’에 나오는 마틸다처럼 제라늄 가지 꺾어 꽂은 화분 하나 옆에 끼고. (명색이 교환이니 나도 뭐 하나는 들고 가야 하지 않는가.) 가벼운 마음으로 가 즐겁게 놀면서도 마음속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뿌리 심어볼래요.

1.     자연을 보고 누리는 안목과 여유


나 같은 얼뜨기 초보자부터 노련한 전문가까지, 유모차 끌고 온 젊은 애엄마부터 80대 할머니까지 마을 안팎에서 모인 30여 명의 여인들이 한자리에 둘러 모여 커피 한잔 케이크 한 조각 먹으며 꽃과 나무를 얘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정원의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를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눈을 반짝일 줄 아는 여인들, 그 향을 즐거워하며 한 포기 얻어다 기꺼이 자기 손으로 삽질해서 심겠다는 여인들, 나이를 떠나 사랑스러웠다.

가방이나 신발 짝, 보석 나부랭이에 눈독을 들이며 제 육신의 아름다움과 부를 과시하려는 여인들에게서 풍기는 것과는 다른 향기들.. 아! 나도 이젠 이런 부류의 인간들과 섞이고 싶다. 내 오늘 기필코 내 손으로 흙을 파리라!! 부르르^^         

드넓은 대평원 같은 앞마당. 이렇게 활기있고 매력있는 중년의 여인이라니..

(은퇴한 고교 교사였던 그녀는 60을 넘긴 나이에도 당당하고 유쾌했다. 목장갑에 삼지창 들고 에너지가 하늘을 찌른다.)

"애기 엄마, 이건 이렇게 키워봐.." "네, 애 젖 한방 먹이고 삽질하겠습니다."

2.     풍요로움과 관대함


커피를 마시고 자리를 일어선 우리는 비닐봉지 하나씩 들고 주인장을 따라나섰다. 정원 곳곳에 있는 식물들에 대한 자세한 가이드가 술술 나온다. 줄기를 잘라 화분에 심었다가 뿌리가 내리면 어디에 심고 물은 어떻게 주고 하는 식이다. 개인적인 사연도 추가된다. 30년 전에 우리 아버지가 결혼기념일에 심은 무슨 나무 어쩌고 하는 이야기다. 얘기만 듣고 따라다녀도 재미있는데, 누군가가 불쑥 손들고 ‘나도 한 뿌리 줘봐요. 우리 집 앞마당에 심어볼래요’ 하면 바로 삽을 들어 뿌리도 캐주고 줄기도 잘라준다.

게다가 농장에서 직접 키운 사과 배 무화과 레몬 라임 무화과 모과 포도 등등의 과일을 직접 따다 팔기도 하고 그걸로 잼과 소스를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그 풍요로움과 신선함에 벌레 먹은 사과를 한 상자나 사들었다. (그 자리만 도려내고 주스로 갈아먹었다.)

꽃밭 사이를 다니며 '우리집 마당엔 무엇을 심을까..' 궁리하는 여인들.
'할머니, 포도가 달아요.'  빗물을 받아 포도밭과 정원에 물을 준다.
친정 어머니가 사시는 뒷채.  그 집 거실에서 내다본 정원.
할머니 댁 마당엔 자기 아들과 손자가 가지고 놀던 50년도 더 된 장난감들이 반질반질 녹슨 채 정겹게 있었다.

3.     나눔과 기여


넓은 정원을 이리도 열심히 잘 가꾼 여인의 고된 노동과 땀의 흔적이 곳곳에서 느껴졌는데, 이 여인은 또 한 번 나를 감동시켰다. 오늘 이 파티를 주최한 이유는, 유방암과 이를 극복한 여인들을 후원하기 위한 자선행사였던 거다. 그러니까 내가 열심히 가꾼 꽃들을 그냥 나눠 줄 테니 대신 이 단체에 기부 좀 해달라는 친절한 부탁인 것이었다.

사다리 놓고 어깻죽지 빠지도록 사과를 따고 그걸 또 잼으로 만들어 팔고, 여러 가지 케이크를 직접 구워 차와 대접하고 하는 일련의 모든 일들을 해마다 두 번씩 수 십 년째 해오고 있었다. 집안에 특별히 암에 얽힌 내력이 있나 했는데, 이모가 유방암을 가볍게 앓다 극복한 것 외엔 개인적인 한이 서린 것도 아니었다.

순수한 동기로 남의 어려움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 평생토록 꾸준히 즐겁게 나누고 기여하는 이런 이들로 인해 세상의 한구석은 여전히 따뜻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모과와 무화과까지 잔뜩 사들었다.         

마당 곳곳에 즐비한 과일들..
잔뜩 얻어 와  오종종 심은 꽃과 허브들. 팜트리는 그늘에 심으면 잘 자란다는데 잎이 무성해지면 분위기가 사뭇 다를 것이다.

4.      ‘꽃밭’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


집에 돌아와 점심을 먹고, 얻어 온 것들을 마당 한쪽에 심었다. 라벤더 타임 세이지 버베나 등의 허브와 듣고 까먹어 이름도 모르는 온갖 꽃들을 오종종 가까이 심었다. 뿌리를 내리고 튼튼해질 때까지 옆에 두고 집중관리를 해준 뒤 마당 곳곳에 옮겨 심을 작정이다.


흙을 파고 꽃을 심고 물을 주며 ‘왜 꽃밭을 가꾸는지’ 생각해봤다. 흙 마당의 실질적인 꽃밭이건 마음속의 꽃밭이건 그것이 없는 삶은 행복할 수 없다는 엄청난 의미와 절박한 가치로 다가왔다. 내 마음에 안식을 주는 곳, 애정을 기울일 수 있는 곳, 대화하고 호흡하고 사랑 주고 기쁨 누릴 수 있는 곳, 세상이 다 변해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그것이 종교가 됐든 사람이 됐든 취미가 됐든 모든 인간에게는 그런 꽃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밭을 수시로 돌아보고 가꾸며 각자 인생을 스스로 보듬어 보는 시간을 놓치면 안 된다.     

 (2010/04/01씀)


잔뜩 사고 얻어 온 모과와 레몬 라임을 납작하게 썰어 꿀과 설탕으로 재다. 내 손으로 모과차를 담다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이런 일들로 시골생활은 바쁘고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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