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밭에서 낙엽을 밟으며...
호주는 4월이면 텀 1을 끝내고 2-3주간 부활절 방학을 맞는다. 멜번 시내에서 한두 시간 떨어진 야라밸리(Yarra Valley) 동네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이 동네는 언덕진 지형과 쨍하고 건조한 날씨 덕에 포도가 잘 자란다. 포도로 와인을 만드는 이름난 와이너리들이 즐비한데 한때는 유명 셰프를 모셔 레스토랑을 겸하는 것이 유행인 듯하더니 요즘은 미술관과 야외조각 공원을 겸하는 것이 대세인 듯하다.
인간이 추구하는 행복의 끝엔 와인과 예술이 있다고 누군가는 말했다.
타라와라 미술관(Tarrawarra Museum of Art)은 포도밭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에 자리 잡았다. 원주민 말로 '느리게 흐르는 물'이란 뜻이라는데, 그 이름에 맞게 천천히 포도원을 걸어 보았다. 수확을 끝내고 남은 포도잎들이 노랗게 말라가며 가을의 (남반구의 호주는 한국과 계절이 반대다) 운치를 더했다. 그 사이로 이런저런 조각들이 덩그러니 있다.
사람들은 초원에 앉아 와인 한잔 마시기도 하고
바스락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나무 숲길을 걷기도 한다. 나도 걷다가 시 한수 지었다.
가을이라
가을바람 부니
낙엽이 진다.
전시 중인 사진전은 내키지 않아 건너뛰고
포도원만 내내 두 바퀴를 돌았다.
초기 유럽 이민자들은 피땀 흘려 황무지를 개간하고 몇 세대에 걸쳐 포도밭을 일구어 왔다. 그렇케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자기 가문만의 소박하지만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어 온 와이너리들이 이 곳에 많다.
그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한가로이 가을 오후를 즐기다.
* 와이너리는 입장료를 받는 곳도 있고 (이곳은 미술관만 입장료가 있다) 포도밭을 공원처럼 시민에게 개방하는 곳도 많다. 다양한 가격대의 와인을 판매하기도 하고 한잔씩 마실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