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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Jul 27. 2022

호주, 디지털 아트 갤러리는 이렇더라.

고흐의 작품 속에 오감으로 빠지다.

지난 금요일 밤, 아들은 생일을 맞아 친구들과 멜번 시내에서 풋티를 보겠다고 했다. 대중교통으로는 오고 가기 힘든 거리라 운전을 해야 하는데 경기가 끝날 때까지 3시간 가량을 어디서 기다린단 말인가.. 이젠 사춘기라 부모가 경기장에 따라오는 걸 원하지는 않으니 남편과 둘이서 따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주말 저녁 이벤트 검색을 하다가 THE LUME Digital Art Gallery에서 반 고흐 전시를 한다길래, 그건 뭘까 호기심에 찾아가 봤다. 밤 10시까지 개장을 하기에 저녁을 먹고 8시로 예약을 해서 갔는데, 의외로 한산했다.

입구엔 고흐의 대표작 중 하나인 아를의 노란 방이 포토존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고흐가 이 그림을 좋아해 채색화로 3점 스케치로 2점을 그렸단다. 나도 이 그림을 좋아해 우리 집에 한 장 걸어놓고 있는데, 이렇게 여러 버전이 있는지 이 날 첨 알았다.ㅎ

입구를 지나면 여러 개의 대형 스크린이 사방에 설치된 초대형 디지털 전시실에 이르게 되고 느린 음악에 맞춰 고흐의 전작들이 스크린과 바닥을 천천히 흐른다.

비슷한 작품들끼리 모아서 보여주기도 하고 일부분을 확대해서 세밀한 붓터치까지 보여주기도 한다.

한쪽 스크린엔 적절한 설명이 게재되어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때로는 정물 속의 과일들이 또르르 굴러 바닥으로 흩어진다.

아를의 숲 속 풍경으로 천지가 덮이면 나도 프랑스 시골 마을 오솔길을 걷는 기분이 든다.

총천연색 꽃들이 화병마다 가득하니 그 향기에 취할 것도 같다.

어떤 꽃을 골라볼까 정신없이 눈은 돌아가고 대책 없이 고개도 분주하게 꺾인다.

조카가 태어난 걸 축하하려고 그렸다는 푸른 바탕의 아몬드 나무로 난 정했다.ㅎ

그러나 고흐의 꽃이라면 역시 해바라기지..

그는 해바라기 아닌 것도 노랗게 그릴만큼 노란색 마니아였다. ^^

숲길 꽃길 걷다가 농장 길도 걷는다.

밀일까 보리일까.. 노랗게 익어가는 곡물은 풍성한데 고흐는 어찌 그리 가난했단 말인가.

작품이 팔리지 않아 감자 몇 개로 끼니를 때워야만 했던 가난한 고흐.

물감 살 돈이 없어 감자 먹기를 주저해야 했던 불행했던 아티스트.

 초라한 그의 방엔 때에 찌든 작은 침대, 낡은 탁자와 의자, 다 떨어진 옷가지 두엇, 구멍 난 신발이 구석에서 뒹굴 뿐이다

그는 불면으로 고통스럽게 지새우며 밤하늘의 빛나는 별들을 광적으로 그려댔을까....

그의 감정이 무엇이었든 노란 별들이 빛나는 밤은 아름답기만 하다.

정신병으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자살을 한 뒤에야 그의 작품들은 날개돋친 듯 팔렸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가격으로...

스크린이 이끄는 대로 정신줄 놓고 그의 작품과 생애에 푹 빠져 걷다가 앉으며 감상을 하다 보니 목이 탄다. 갤러리 구석엔 그림 속의 노란 천막 카페가 재연되어 있다. 작은 원탁을 두고 앉아 목을 축이며 안타깝고 가련했던 천재 화가의 아이러니한 삶을 다시 한번 따라가 봤다.


기존의 전시와는 다른 디지털 아트의 매력에 빠졌다. 화가가 살던 시대상도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주고 이제는 너무 유명하고 비싸 한자리에 모으기도 불가능한 그의 모든 작품들을 섬세하게 큐레이팅 해서 보여주니 그의 전 인생과 작품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에 좋았다.

게다가 이 널직한 공간을 늦은 밤 마음껏 활보하니 내가 지금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 있는지도 헷갈렸다. 타임머신을 타고 살아있는 고흐를 만나고 온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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