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며 우리는 그럭저럭 살아가니 인생은 아름답다.
얼결에 마리나 베이 샌즈 전망대에 오르게 됐다. 주말에 개최하는 F1 카레이싱 경기를 경기장 아닌 높은 건물 어드매에서 대략 조망해보고 싶다고 아들이 말했는데(우리는 흔한 동네 아파트 옥상쯤을 기대했던거였다.) 시댁 식구들이 이런저런 의논을 하다가 이곳 티켓을 구해준 것이었다. 대회 개최 하루 전이라 대회는 못 보고
ㅜㅜ (어차피 비행기 출국 시간이 촉박해서 보기도 어려웠고 대회 당일엔 이 전망대에서 VIP들의 파티가 있어 일반인들은 입장을 못한단다.)
싱가폴을 올 때마다 이 언저리를 돌아 낯설지는 않았지만 야경을 보러 전망대에 오른 것은 처음이라 나름 설레었다. 시누이가 구해준 입장권은 약간의 특혜가 있어 긴 줄도 서지 않았다.^^ 사실 싱가폴인들에겐 이런 티켓을 구하는 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있어도 안 가기도 한다.(사촌도 무슨 멤버쉽 카드로 공짜표를 구해주겠다고 제안을 했었다.) 이곳을 다녀온 뒤 찍은 사진을 주변인들에게 보여줬더니, 하나같이 '나도 한번 가봐야겠다'는 반응이었다. 때마다 해외로 휴가도 잘 다니면서 코 앞의 전망대를 안 간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또 이해도 간다. 서울 사람은 남산타워를 굳이 오르지 않고 파리지앵은 에펠 타워에 별 흥미가 없다. (그러고 보니 비행기 안에서 건축가 에펠의 일생을 다룬 영화를 봤다.ㅎㅎ)
야경은 화려하고 깔끔하고 한 장의 파노라마처럼 360도를 돌며 조화롭게 잘 이어졌다.
세계 유일의 야밤 카레이싱 대회란다. (더우니까 밤에 게임을^^, 싱가폴엔 심야 마라톤 대회도 있다. 어느해인가 퇴근을 하고 돌아온 애가 둘인 시누이가 마라톤을 한다고 나가더니 밤새 달려 완주하고 새벽 6시에 기어서 돌아왔다.^^) 유럽의 소국 모나코가 몬테카를로 수도의 도심을 가로지르는(경기장을 도는 것이 아닌) 레이싱 대회를 개최하는 걸로 유명한데 싱가폴도 이를 모델 삼아 도심의 일반 도로를 막아 레이싱을 한단다. 어쨌든 코로나로 인해 3년 만에 개최를 하는 데다 엄청난 국가적 비즈니스인 듯 꽤 떠들썩했다.
연꽃 모양의 아트 사이언스 뮤지엄.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며 열심히 사진을 찍기도 하고 유리벽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넋을 놓고 아래 세상을 구경한다.
높이 오르니 멀리 보인다.^^
Gardens by the Bay (다음 기회에 소개하겠다. )
한국 관광객들도 많은지 곳곳에 한국어 설명이 있었다.
싱가폴에서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보냈다. 3주간의 한국 싱가폴 방문을 마치고 다시 호주로 돌아갈 시간이다.
10여 년 전 이곳을 방문하고 썼던 글을 같이 올려본다. 세월은 잘도 흐르고 나의 어떤 생각들은 변하거나 여전함을 느낀다. 세상도 변하고 시대도 변하는데 나도 주변 사람들도 그럭저럭 자기 자리에서 어떻케든 살아나간다. 그러니 인생은 아름답다.
쌍용이 짓는 싱가폴 최고 빌딩 '마리나 베이 샌즈'를 가보니. (2010/07/05씀)
싱가폴은 한국 못지않게 급변하는 도시다. 1,2년을 사이에 두고 갈 때마다 엄청난 규모의 호텔이나 쇼핑센터 빌딩이 여기저기 턱턱 들어서 있는데, 이번엔 '마리니 베이 샌즈(Marina Bay Sands)라는 복합 리조트 빌딩의 개장으로 어수선했다.
설계 단계부터 한국은 물론 세계로부터 여러 면에서 주목과 논란을 끌었던 빌딩이다.
첫째, 도덕과 청렴 비즈니스를 기치로 세웠던 싱가폴 정부가 카지노 사업에 손을 댔다는 것.
둘째, 바다를 매운 57만㎡의 매립지 위에 대형 호텔과 컨벤션센터, 쇼핑몰 등이 어우러진 복합리조트를 세우는 것으로 인한 주변 환경 관련 문제들.
셋째, 싱가폴 정부가 차세대 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2006년부터 35억 달러(약 4조 5000억 원)를 들여 개발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라는 점.
넷째, 한국의 쌍용건설이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기술을 선보이며 52도 경사진 상태로 세워진 6개의 빌딩을 入자 모양으로 세워 57층짜리로 짓는다는 것 등등이다. 이밖에도 이 빌딩을 두고 할 말들은 저마다 너무 많은 것 같다.
아주 멀리서부터 저 빌딩의 맨꼭대기는 눈에 띄었다. 허공에 떠있는 우주선 같기도 하다.
세 개의 빌딩을 잇는 꼭대기엔 하늘 공원(SKY PARK)이 조성되는데 축구장 2배의 크기라 한다. 일반인에게 공개되는 전망대등이 있고 호텔 고객만 출입하는 레스토랑, 세계에서 가장 큰 야외 수영장이 지상 200미터 위에 있단다. 실은 저 공원의 모습이 궁금해서 찾아간 건데, 입구를 한참 찾다가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았다나.;; 마지막 손질이 한창이었고 호텔만 부분 영업 중이었다.
객실만 2600개가 된다는 초대형 특급호텔의 입구는 인상적이었다. 커다랗고 육중한 유리문이 10개는 족히 넘는 것 같았는데, 문마다 도어맨들이 서서 수동으로 문을 열어주었다.
첫째, 훤칠한 백인 남자, 똥똥한 중년의 중국 여인 등등 인종과 나이 성별을 달리하는 이들이 죽서서 사람들이 들어설 때마다 일일이 무거운 문을 열어주는 모습이 내겐 매우 독특했다. (하루 종일 서서 무거운 문만 열고 닫자면 얼마나 재미없고 힘들까.)
둘째, 젊고 예쁜 여자들이 배꼽인사를 하며 '어서 오십시오'하는 정형화된 인사가 아니라 자기 집을 찾아온 친구를 대하듯 활짝 문을 제껴 열며 '어서 들어와' 하는 식이었다. 내 느낌엔. 도어맨이 어찌나 문을 팍 열던지 유니폼으로 입던 그들의 양복이 그 바람에 펄럭일 정도였다. (이런 스타일의 인사를 연습한 건가?)
셋째, 자동문 회전문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 웬 복고적 서비스인가 말이다. 세상은 날로 기계화 자동화되어, 인간을 잡다한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사실이지만, 결국 고상하고 돈 많이 쓰고자 하는 부류들은 인간의 손맛을 알기에 기계화된 서비스를 거부하고 인간을 다시 이 단순한 노동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인가.. 약간의 비용을 더 주는 보상을 하고 말이다. 문 하나를 거치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행사성으로 며칠간 도어맨을 세운 것 일수도 있을 텐데.
어쨌든 호텔 안은 이랬다. 아직도 건물 주변은 공사 중이라 어수선했는데, 영업은 잘되는지 객실 상당 부분은 불이 밝혀 있었다. 사람도 북적였다. 호텔 안에 세워진 설계모형을 봤을 때에야, 주변에서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감이 잡혔다. 공사장을 지나쳐도 규모가 너무 커서 뭘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호텔 맞은편에는 카지노와 쇼핑센터가 세워진다. 카지노 입구는 황금 빛깔로 번쩍였다. 내국인은 100불, 외국인은 입장료가 무료였다. 그 안이 별로 궁금하지 않아 들어가지 않았지만, 손목을 자르기 전엔 멈추지 못한다는 도박의 유혹을 이 카지노는 100불로 막아 보겠다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멜번에도 대규모의 크라운 카지노가 있는데, 어찌나 장사가 잘되는지 빅토리아주를 통틀어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기업 1위에 항상 꼽힌다. 탈세를 안 하는 정직한 기업이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카지노 안엔 중국계 베트남계 한국계등 아시안들이 넘쳐난다. 삶이 팍팍해서 그런가, 아시안들이 도박을 더 사랑하는 것 같다.
그 깨끗하다던 싱가폴이 이 사업 아니면 먹고살게 없었던가 매우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계획이었다. 이제 세계의 도박사들을 죄다 끌어모아 합법적 사기를 치며 떼돈을 긁어모을게다.
쇼핑센터 또한 웅장했다. 세계 최고의 명품회사들이 최대 규모의 매장을 확보하고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알아주는 유명한 요리사들이 이름을 내걸고 레스토랑을 연단다. 돈이 많은데, 못써서 안달 난 사람이 있다면, 이곳을 강추!!
이제 이곳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흥청댈까. 돈과 욕망의 노예가 될까. 화려하고 현란하고 모던한 빌딩 안에서 난 냉기와 혼란을 느꼈다.
늦은 밤이었건만 대낮처럼 밝았다. 구경 나온 사람들, 공사판에서 일하는 외국 노동자들, 공사는 24시간 진행 중인 것 같았다. 휘황찬란한 조명을 보며 또 걱정했다. '이 전기세는 누가 다내지..' 이 나라에 세금 내지 않는 관광객일 뿐이지만 난 지구인으로써 지구 한쪽의 일을 염려 할 의무가 있다.ㅎ
도시인들은 잠도 참 안 잔다. 해가 뜨면 일어나 일터에 나가고 해 떨어지면 집에 돌아와 먹고 자는 원초적이고 단순한 일상이 얼마나 훌륭하고 이상적이고 아름다운가 생각해봤다. 다음에 오면 공사도 마무리 짓고 좀 더 안정된 모습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덥고 훅한 동남아의 밤, 야자수와 열대의 꽃들이 어우러진 정원길은 그래도 예뻤다.
그런데 재밌었던 건, 그날부터 어디를 가건 이 건물이 창밖으로 보였다는 것이다. 싱가폴이 정말 작은 나라라 그런 건지, 아님 빌딩이 너무 높아서 그런 건지. 이 사진은 싱가폴의 예술의 전당쯤 되는 '에스트라나다' 건물 안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다 찍은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