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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May 16. 2023

싱가폴, 하녀에 관한 단상들.

한국은 동남아 육아 도우미가 필요한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자 ‘필리핀 육아 도우미’ 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지난 20여 년간 내가 체험했던 외국 도우미들의 실상에 관해 적었던 글과 사견을 나눠 볼까 한다.


애처로운, 싱가폴 ‘하녀’ 이야기 ( 2010/07/18씀)


나는 하녀를 두고 산적이 없다. 그저 시댁이 있는 싱가폴을 몇 주간 방문할 때 머물거나 만나는 여러 가정마다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등 제3세계에서 온 소녀들이 하녀로 있어 그 시스템이나 문화를 조금 이해하고 있는 정도이다. 싱가폴을 예로 들면 주로 아이가 있는 맞벌이 부부나 환자가 있는 가정에서 하녀를 흔하게 고용하는데 온갖 가사와 육아를 다 떠맡기고도 지불하는 월급은 50만 원 남짓이었다. (지금은 좀 올랐겠지만) 초반에 에이전트와 계약할 때 보험비나 비행기 삯을 추가로 지불하지만 그리 큰 비용도 아니다.


어린 하녀들의 하루하루는 힘겹다. 대부분의 주부가 힘겨워하듯 살림과 육아가 간단한 일만은 아닌데, 내 소유가 아닌 주인집 살림과 주인집 아이 돌보기를 주인의 명령 아래 잘 해내야 하니 얼마나 어렵겠는가! 게다가 그들은 십 대 중후반의 가냘픈 소녀들이고 영어든(필리핀 제외) 중국어든 언어를 이해 못하는 데다 종교나 문화가 다른 경우가 많고 주인 가족들 속에서 혼자 외롭게 이민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하기에 이중 삼중고를 겪는다.


노동 시간제한도 없고 노동 분담(Job Descriptions)도 없어 이른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보이는 데로 시키는 데로 일이 생기는 데로 혼자서 다한다. 주인가족이 친구 집에 놀러 가면 하녀는 따라가서 그곳에서 부엌일을 거들거나 아이를 본다. 하녀의 삶은 말할 수 없이 불쌍하고 비참한데, 그래도 싱가폴로 일을 찾아오는 소녀들이 끊이지 않는 건 고향에서의 삶도 이보다 나을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 몇 년 죽도록 고생하면 제법 큰돈을 모아 고향에 삶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기도 할 테고.


하녀들 중엔 정말 운이 좋은 경우도 있다. 시동생 가정은 하녀를 친구처럼 대하며 한 상에 둘러앉아 밥도 같이 먹고 여러 배울 기회를 마련해 주는 등 후진국에서 온 소녀를 배려했다. 사실 상당수의 하녀들은 세탁기나 에어컨을 본 적도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언어나 기타의 것들을 가르치며 자신들도 보람을 느꼈다. 한 친구 가정은 필리핀 하녀와 12년을 동고동락 하다가 고국으로 돌려보냈는데, 아이들이 아직도 유모라 부르며 연락을 하고 지낼 정도로 사이가 돈독하기도 했다. 또 싱가폴에 주재원으로 나와 있는 호주가정의 인도네시아 하녀는 해마다 주인가족과 호주로 같이 여행을 다니며 여유만만한 일상을 즐기는 경우도 봤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보편적이고 흔할 것이다. 일에 치이고 구박받고 남은 음식을 거둬먹는 등 대책 없고 눈물겨운 상황들. 그런데도 주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또 억장 무너지는 일들이 있는 것이다. (한국여자들은 수다를 떨다가 시댁 욕으로 방향을 잡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싱가폴 여인들은 하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 부부가 출근하고 나면 여주인의 화장품과 향수를 찍어 바르고 외출하는 하녀, 외간 남자를 집 안으로 불러들이는 하녀, 잘 감시했는데도 어느 날 임신을 해서 결국 돌려보내야 했던 일들, 이슬람이라 돼지고기 요리는 못하겠다는 하녀, 아이를 맡기기가 미심쩍은 하녀, 한번 외출하면 연락이 안 되는 하녀, 게으르거나 몸이 약해 도움은 안되고 병시중 들어야 하는 하녀, 도벽과 거짓말하는 하녀, 말귀도 못 알아듣는 걸 겨우 일 가르쳐놨더니 집 떠나는 하녀 등등… 내가 들은 속 터지는 사연들은 다 열거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저런 경우를 다 살피고 들어도 불쌍한 마음은 하녀 쪽으로 기운다. 어쨌든 그들이 약자이고 지배를 받는 쪽이라 그런가 보다. 사실 하녀 제도는 싱가폴 경제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경제가 한창 호황이고 일자리가 넘치던 지난 십 수년간, 애엄마들까지 사회에 나와 일할 수 있었던 건, 빈국출신의 하녀들이 육아와 가사를 돌봤기 때문이다. (삼복 찜통더위에 낮밤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저임금의 건설 노동자나 기타의 남자 노동자도 물론이고.) 그래서인지 싱가폴 정부차원에서도 이들의 인권과 복지에 대한 제도를 강화하고 언어도 순화시켜 하녀(maid) 대신 가정 도우미(domestic helper)라고 칭하는 등 발전하는 부분도 있기는 하다. 그래도 개개 가정 안에 있는 하녀들의 삶을 어찌 제도로 다 돌볼 수 있겠는가. 쉽지 않은 일이다.


빈국 여인들의 빈곤한 삶이 보호받는 세상이 어서 오면 좋겠다. 거창한 제도나 법적 시스템을 정비하기에 앞서 내 주변에 있는 이주 여인들의 고단한 삶에 약간의 관심과 애정을 쏟는 따뜻하고 양심 있는 인간들이 세상엔 더 필요하다.


한국은 동남아 하녀가 필요한가? (2012년 2월 28일 씀)


시누이 집은 그동안 몇 차례 하녀가 바뀌었다. 갈등이 있어 계약이 파기된 적도 있고 하녀가 개인사정으로 본국에 돌아간 경우도 있고 사연은 여러 가지다. 지난번 여행 때는 인도네시아에서 온 30대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는 마침 영어가 통하고 붙임성이 있어 자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전의 소녀들은 일을 부탁하기도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어려워 한 지붕 아래 살아도 교류가 거의 없었다.) 맞벌이인 시누이 부부가 정신없이 출근을 하고 나면 그 뒤에 부스스 일어난 우리 가족은 그녀가 차려 준 아침을 느긋하게 먹으며 같이 수다를 떨었다. 그녀의 이름은 노야였다.


<노야 이야기>


노야는 인도네시아의 작은 시골 깜뽕에서 태어나 어렵게 살았다. 열다섯 살 때쯤 일을 찾아 자카르타로 떠났는데 처음 면접을 본 곳은 다름 아닌 한국 회사였단다. 사장인 미스터 김은 나이가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불합격시켰는데 노야는 일을 시켜만 보라고 매달려 간신히 일을 시작하게 됐단다. 플라스틱 컵이나 용기를 만들어 미국이나 호주로 수출하는 공장이었는데 야무지고 성실하게 일 잘하는 그녀를 사장은 맘에 들어했고 대우도 꽤 좋았단다. 그런데 잘 나가던 공장은 IMF로 문을 닫게 됐고 사장은, ‘공장문을 다시 열면 꼭 부르겠노라’고 약속을 했지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와 결혼을 했고 딸과 아들을 낳았다. 부모님이 작은 땅을 물려주었는데 그 위에 집을 짓자는 계획을 세웠다. 요리사인 남편은 자카르타로 떠나 식당 주방에서 하루 종일 나시고랭을 볶았다. (식당 이름은 카사블랑카란다.^^) 그러나 돈은 모이지 않았고 먹고살기도 빠듯했다. 노야는 해외취업에 눈을 돌렸다. 눈 딱 감고 몇 년만 나가 고생하면 집 한 채 지을 목돈이 손에 쥐어진다. 두 자녀를 할머니께 맡기고 에이전시를 들락였다.

주로 사우디 아라비아등 중동 국가나 홍콩 싱가폴 등으로 나갔는데 싱가폴을 선택했다. 중동국가들은 집들이 3-4층씩 되는 저택 수준이라 노동량이 워낙 많고 주인이 폭력을 쓰는 경우도 흔하단다. 홍콩은 월급도 상대적으로 많고 일주일에 한 번씩 휴가도 주는 등 조건이 좋은데, 휴일 날 기분 한번 내다가는 월급이 달랑거릴 판이라 오히려 돈을 모으기가 어렵단다. 성실한 노야는 홍콩보다 월급도 작고 휴무일도 한 달에 하루인 싱가폴로 날아왔다. 독한 맘먹고 왔지만 자식이 어른거려 몇 달 동안은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는데 한 달에 한번 국제전화로 아들 목소리를 듣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기 가정을 꾸려왔던 30대의 그녀는 살림도 잘했고 요리 솜씨도 좋았다. 노야는 마른 새우와 양파 고추 마늘등을 잘게 썰어 작은 절구에 찧어 맛나게 칠리소스를 만들었는데, 고기나 야채를 먹을 때 조금씩 찍어 입에 넣으면 그 감칠맛에 식욕이 마구 솟을 정도였다. 가끔 부엌에서 나는 토닥토닥 작은 절구질 소리를 들을 때마다 입에서 침이 고이며 곧 차려질 한 상이 기대가 되곤 했다.


그녀는 조카들을 학교에 데려가거나 데려올 때 가끔씩 내 아들을 데리고 나갔다. 자기 아들과 동갑이라며 귀여워해주고 챙기는 모습을 보며 몇 번씩 마음이 아팠고 미안했다. 꿋꿋한 그녀는 몇 년의 이 생활이 바람같이 지나가기를 바랄 뿐이다. 얼른 고향에 작은 집을 짓고 흩어져 사는 가족을 모아 따뜻한 밥상을 차려 먹으며 살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현실은 맞벌이 부부에게나 하녀에게나 녹녹지 않다. 자식을 하녀 손에 맡겨 키우는 시누이 주인네는 일상이 바쁘기 짝이 없고 남의 자식 키우기에 바쁜 하녀는 올망졸랑 제 자식이 한참 재롱 피울 시기를 다 놓치며 그리움에 가슴이 뻥 뚫려 산다.


<영화 Helper를 보고>


호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헬퍼’를 봤다. 인종차별이 심했던 1960년대 미국 남부 지방에서 일어난 흑인 하녀들의 실화를 다룬 영화인데, 그 영화 속 백인 가정의 흑인 하녀들이나, 싱가폴 가정의 동남아 하녀들이나 그들의 일상과 받는 대접이 너무도 비슷해서 눈물 낫다. 그동안 봐왔던 백인들 시각으로 만든 영화 속에는 흑인 하녀들은 단순하고 충성스러우며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는데, 그건 그야말로 백인들의 시각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으며 노야 생각이 많이 났다. 그녀가 베푼 노동에 비하면 대가도 되지 않는 몇 푼의 팁에 너무도 고마워하며 ‘칠리소스’ 한 병 만들어 줄 테니 호주로 들고 가라던 노야가 오버랩 됐다. 동남아 하녀들이 끼니 걱정 없이 그들 가족과 모여 살 수 있는 날은 언제쯤 오려나…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무거웠다.




10여 년 전(2000년) 싱가폴에 처음 갔을 때 맥도널드나 극장 매표소의 직원들이 백발의 노인들 이어서 놀랐다. 일자리는 남아돌고 인력은 모자라니 먹고살만한 노인들도 몇 시간씩 파트타임으로 감자를 튀기고 영화 표를 파는 것이었다. 운동도 되고 손자 과자 값도 벌자는 생각으로 노인들은 기쁘게 일했다. 사회는 주부들을 끊임없이 불러냈다. 저렴한 하녀를 공급할 테니 육아도 살림도 다 맡기고 어서 좀 나와달라는 식이었다. 수년간 살림만 하던 주부도 이력서만 들고나가면 번듯한 일을 잡던 시기였다.


한국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고 인력이 남아도는 마당에 당장 조금 저렴하다는 이유로 외국인력을 불러들이면 위험하다. 싱가폴의 경우도 인권 등 여러 사회적 문제로 하녀 공급 시스템을 끊임없이 개선하고 있지만 각 가정 안의 하녀들의 일상이란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그나마 같은 동남아 국가라 문화차이는 오히려 작을 수도 있다. 동남아 하녀들이 느끼고 일으킬 수 있는 문화적 갈등요소는 한국 사회 안에 훨씬 많다.


이런 외형적 이유만은 아니다. 당신이 일하는 사이 당신의 작은 집에서 하루 종일 웅크리고 앉아 어두운 얼굴로 깊은 한숨을 뽑아내며 집안 공기를 덥히는 낯선 외국 여자가 거주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안채와 별채를 구별해서 사는 정도가 아니라면 외국 도우미의 상주란 양쪽 모두에게 매우 불편한 일이 될 것이다. 국내의 남아도는 인력을 활용하는 시스템을 우선 찾아야 한다.


2023년 5월에 하는 생각은?


흠.. 여기까지가 지난 10여 년 전 썼던 글이고 나는 요즘 생각이 좀 바뀌었다. 저출산 문제가 워낙 심각해져 이것저것 가릴 여유 없이 무슨 수라도 써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이유일 수 있겠다. 또 지난해 싱가폴 여행에선 내가 중년이 되어서인지 노약자를 돌보는 도우미들이 부쩍 눈에 들어온 것도 이유일게다. 이젠 육아뿐만 아니라 노인들을 돌보는 간병인의 수요도 대폭 늘어날 것이다.


몇 년 전 보았던 하녀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생각이 난다. 남미 여인들이 북미로, 동유럽 여인들이 서유럽으로, 동남아 여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이동하여 낯선 가정 안에서 가사 도우미로 살며 겪는 일들을 사회적 문제로 다루었다. 주인집 자식들 치다꺼리하며 고생고생하다 몇 년 만에 고국에 돌아가 만난 제자식들은 오히려 사이가 멀어져 다가가지 못하는 등 그녀들의 삶은 늘 고단하고 행복하지 못했다.


외국 노동자를 유입해야 한다면 단순히 월급을 올리는 것으로 외형적 대우를 포장 하기보다는 노동의 조건과 복지 인권보호에 대한 제도를 치밀하게 마련해 그들이 착취당하고 유린당하지 않도록 보호하는 나라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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