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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기 Apr 24. 2023

호주 가을 숲엔 무엇이 있을까?

숲 속에서 하는 잡생각들.

부활절을 맞아 학교는 2주간 방학을 했다. 사람들은 짐을 꾸려 여기저기 여행을 떠나고 캠핑을 간다. 나도 떠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발목을 붙잡았다. 못 떠날 바에야 남이나 돕자. 지인 가족이 여행을 떠나며 개를 맡길 곳을 찾기에 아들이 나섰다. 2주간 개를 먹이고 재우고 산책시키고 놀아준다. 약간의 수고비도 받기로 했다.

어느 볕 좋은 날, 뒷좌석에 켈리를 태우고 집에서 1시간쯤 떨어진 단데농 에머럴드 호숫가로 드라이브를 갔다. 그래도 가을이니 붉게 노랗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보고 싶었다. 너무 좋아 방정을 떨며 헉헉대는 개를 진정시키며 숲길을 걷는데 바닥에 밤송이가 가득했다. 밤이 떨어지는 계절이구나. 다람쥐는 좋겠네..

습기를 머금은 숲 속엔 독특한 버섯들이 자라고 있었다. 모양도 색깔도 예쁜 걸 보니 조심해야겠다. 그럴수록 독을 품은 거라 들었다. 그래도 생명의 힘으로 목을 빳빳이 세우고 큰 머리를 지탱하며 자기 삶을 주장한다. 너의 존재도 아름답구나.

아들의 뒷모습을 밟으며 되는대로 잡생각을 하며 걷는 숲길은 싱그럽고 촉촉하다.

조금은 이른 듯했지만 가을은 벌써 와 있었다. 붉은 단풍은 이미 고왔다.

어느 열매 속의 붉은 씨앗은 너무 선명해 공장에서 염료를 뿌려놓은 듯했다. 단단하고 새콤한 불량 사탕 같아 보였다. 아마도 그런 사탕들이 자연의 색을 따라 한 것일 텐데 내 사고의 순서에 오류가 있다. 어린 시절을 콘크리트 도시에서 보내 인공의 것들이 기준으로 저장된 것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한 바퀴 숲길을 돌아 다시 호수로 왔다. 뱃놀이를 하는 이들이 즐거워보다. 어느 홀로 탄 청년은 페달을 돌리는 와중에도 핸드폰 삼매경에 빠져있다. 우리는 그를 제임스로 부르기로 했다. '제임스, 눈을 들어 주변을 보시오. 지금을 즐기시오' '제임스, 가상의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시오. 당신의 다리가 뛰고 있는 현재를 사시오.'

아들이 산책을 하다 폰을 꺼낼 때도 농담은 이어졌다. '제임스, 하늘을 보시오. 너무 푸르다오.' '제임스, 올해 가을은 한번 오고 가는 거라고. 다시 오지 않아. 고개를 들어 맑은 공기를 마셔보시오'...

그렇게 우리는 소중한 가을 하루를 낄낄대며 행복하게 보냈다. 한 줌 주어온 밤은 에어 프라이어에 구워 먹었다. 식량을 나눠줘서 고맙구나. 다람쥐들아...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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